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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은비 Feb 16. 2022

펄펄 끓여 내리는 사이폰 커피

일단 서로의 사랑이 시작되면, 펄펄 끓었다가 식어도 사랑이었다.

요즘처럼 날이 추울 때면 펄펄 끓는 물로 힘차게 내린 따뜻한 사이폰 커피 한잔이 생각난다. 처음부터 끝까지 고급스럽다는 느낌을 가지고 천천히 식혀가며 향을 음미하며 마시는 사이폰 커피의 매력은 알고 있는 사람들만 아는 맑고 깨끗함이다. 불순물이 정돈된 차분한 맛에 서두르지 않음을 겸비해야만 최상의 커피를 음미하며 마실 수 있다. 원두가 가진 향을 배로 증폭시켜주는 아름다운 향연이 바로 이 사이폰 커피이다. 뜨거울 땐 향으로 한번 먹고, 서서히 식었을 때 맛을 음미하고, 설탕을 살짝 넣고 휴지로 가볍게 덮어뒀다가 식혀먹으면 또 다른 커피의 맛을 느낄 수 있다. 커피 한잔을 이렇게나 다양하게 음미할 수 있다.


원두마다 다른 향을 가지고, 어떻게 볶느냐 어떻게 섞이느냐에 따라 서로 다른 매력을 내비치는 커피에 매료되고 나면 정말 맛있는 커피집들을 찾아다닌다. 내리는 방법에 따라서도 내리는 사람에 따라서도 맛의 변화가 미묘하게 다르고 담아내는 커피잔에 따라서도 향마저 달라지므로 커피는 다양성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여행을 가면 가급적 정해져 있는 프랜차이즈보다는 지역마다 특색 있는 커피집들을 찾아다닌다. 가기 전부터 다양한 정보들을 접하지만 실제로 우리가 감탄하는 순간은 그 모든 정보를 가지고 내 입에 넣었을 때다. 내가 직접, 음미하고 내입으로 이 맛을 표현할 때, 입안에서 혀를 굴릴 때 가장 행복하다. 가장 소중한 한 시절을 얻은 기분이다. 그 모든 한입이 처음 만나는 맛이다.






모두에게나 처음은 참 중요하다. 어딘가 이 사람과 잘 맞는다는 느낌 역시 첫 만남에서 대부분 이루어진다. 만나기 전에 이런저런 정보들을 제공받고, 그 사람의 직업 학업 능력 그 모든 상황과 환경이 나의 이상형에 부합하며 다 맞아떨어진다 해도 직접 만나 이야기해보고 알아가는 순간이 필요하다. 첫 만남은 그랬다. 무엇을 할지 어떤 말들을 할지들을 생각하며 서로의 온도를 끌어올린다. 서로 다른 물질인 물과 원두가 만나 섞이듯 서로 다른 사람 둘이 만나 대화를 나눈다.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인지, 커피 몇 잔을 마셔도 끄떡없는 사람인지, 차를 즐기는 사람인지 등등 서로의 취향과 니즈를 파악하며 소통의 간극을 좁혀나간다.


특히 서로의 니즈가 충족된 그 시점부터는 누가 커피고 누가 물이었는지 중요치 않다. 다양한 방면으로 자신을 드러내려 하고, 상대에게 나를 어필한다. 나는 너에게 참 잘 맞는 사람이라고 설명하는 일에 스스럼이 없다. 나는 어떤 향을 가진 사람이고, 묵직한 바디감을 가지고 있지만, 때때로 맑고 순수한 맛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는 것을 말하면서도, 상대방이 어떤 향을 가졌던가 상상하게 되고, 또 만나 또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느 순간 섞이고 섞여 새로운 결과를 내놓지만 본질이 변하지는 않는다. 그저 두 물질이 섞여 서로 비슷해진 것뿐이다. 그 모든 상황에 물도 원두의 흔적도 남아있다.




서로의 본질을 해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융화되는 일에 사랑이 있었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만나 시너지를 내고 차이를 순응하며 이해하려고 애쓰는 그 시간이 겹겹이 쌓여, 행여 온도가 식더라도 또 다른 추억으로 덧입혀지는 순간들 모두가 사랑이었다. 추측하건대, 커피를 내리는 주인의 마음도 커피를 향한 사랑이었을 게다. 처음부터 조심스레 하나씩 천천히 알아가는 마음도, 불붙은 성냥처럼 눈에 불을 켜고 탐닉하는 순간들도, 따뜻함을 유지하며 서로를 챙기는 일상도 커피와 사랑은 꽤나 닮았다. 경건한 마음으로 커피가 내려지길 기다렸던 것처럼 Like가 Love가 되고 그 진심 어린 마음의 온도가 일정 온도로 유지되기까지, 사람이 사랑으로 물드는 시간은 꼭 필요하다. 그저 각자가 가지고 있는 맛과 향이 각기 다를 뿐, 우리가 사람이고 사랑을 할 수밖에 없는 멋진 존재라는 것을 기억하자.




곧,

사랑하기 좋은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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