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에 치우쳐 프레임을 만들어내고야 마는 힘
올해의 절반은 사람에게 받은 상처와 지침의 연속으로 지쳤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실패의 연속이 나를 너무 무르게 만든 것은 아닐까 싶었고, 이런 나의 삶에 누군가를 들일 공간이 부족하다는 것을 인지한 후로는 연애하기를 거절했다. 소개팅은 받지만, 마음을 쉽게 주지 않는 사람이 되었고, 어떤 이유든 안 되는 이유들을 먼저 찾았다. 이 사람과는 이래서 안돼, 저 사람과는 공적인 자리니까 안돼 하며 환경을 밀어냈다. 또는 소개팅인데 말이 잘 통하지 않는다며 사람을 밀어냈다. 가끔은 내가 먼저 좋아하게 되더라도, 저 사람이 나를 좋아할 리 없고, 저 사람이랑 설령 잘 되더라도 언젠가 상처 주고 떠날 거라며 내 마음 자체를 밀어냈다. 마음이 몽글몽글 피어오르기라도 하는 순간들마다 내 마음을 자꾸 깎아냈다. 그런데도 커지기만 하는 마음은 어쩔 수가 없었겠지.
아닌 걸 알면서도 시작하는 용기는 30대가 되고 나서 자연스레 사라졌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의를 보인다면 적극적인 사랑의 형태를 행동해보려 애썼다. 그 사람의 호의가 그린라이트였는데 칼같이 끊어낸 것은 아닐까 싶어 져서 애매모호할 땐 더 적극적으로 행동했다. 적어도 내가 받은 저 사람의 마음에 대한 예의는 보여야 할 것 같았으니까. 어떨 땐 물질적으로, 어떨 땐 행위적으로 그렇게 기브 앤 테이크의 형식으로 건넸다. 주기만 한 사랑에 익숙해 받기만 할 땐 어쩔 줄 몰라서 헤매기도 하고, 사랑을 알아가고 익숙해질 시간도 필요했음에도 역시 나는 안 되는 것 아닐까 싶어 져서 금세 식어버렸다. 내가 이렇게 혹은 저렇게 행동하면 곧 사라질 것만 같은 불안감에 휩싸였고, 그 덕에 쉽사리 행동으로 옮기지 못했던 지난날의 내가 상처받지 않았으면 했다.
그래서 올해만큼은 사랑하는 일에 인색해지자 생각했다. 무의미하고 불필요한 감정이라면 왜 많은 이들이 사랑을 화두에 올리는 것인가. 그렇다면 사랑은 더 많이 해봐야 하고 경험치를 쌓아야 하는 것 아니던가. 그런데 왜 자발적으로 모두 바쁘다는 핑계로 이 좋은 시간을 거부할까. 결국 나와 같은 사람들이겠지. 상처받고 회복하는 그 시간들이 너무 자기가 못나 보일 때가 많아서라는 결론에 이른다. 모두가 고민하고 어려워하는 게 사랑이라면, 사랑이란 감정만으로도 화제성이 있으니 드라마로 영화로 어떤 형태로든 인간 종족 번식을 위한 행위가 아닌 사람대 사람으로 사랑한다는 말들을 나눌 게다.
어느덧 시간이 흐르고 6개월이 지난 지금엔 작은 관심에도 목말라하고, 저 사람이 나를 좋아하는 건 아닐까 하는 착각에 빠진다. 어떻게 보면 망상일 수 있겠지만, "만약에~"라는 가정하에 벌어지는 수많은 상상들이 진실이 되지 않을 것이란 걸 너무 잘 알고 있으면서도 또 그 사람이 날 좋아해 줬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말하기도 했다. 사람의 마음은 내 맘 같지 않으니 저 사람이 나에게 친구로서의 호감은 있어도 (혹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사회생활을 하고 있을지도) 여자로서 혹은 남자로서의 호감이 없을 수도 있는 건데, 나는 그 사실을 자꾸 망각한다. 그저 내 마음이 그렇다는 이유로 상대방에게 폐가 되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