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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은비 Feb 02. 2023

당신은 나의 "다정"입니다.

공동체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다수의 사람들 앞에서 나는 때때로 어려운 마음이 든다. 아마도 성향상 대규모 인원보다 소규모의 인원을 선호하기 때문이겠다. 그런데 그런 나조차도 자연스럽게 공동체(혹은 모임, 무리, 집단 등등)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가게 되어 "너 역시도 구성원의 일부야"라고 친절히 말해주고 챙겨주는 사람들이 있다. 자기만 생각하기 바쁜 현대사회에 그런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굉장히 신기하고 놀라운 일이다. 오늘은 내가 속한 동호회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아무래도 오늘의 주제는 "다정"이니까. 나의 다정에 대해서, 그리고 나에게 베푼 다정에 대해서 말해보고 싶다.


정이 많아 내적친밀감이 꽤나 높은 사람이지만, 막상 사람들이랑 친밀하게 교제를 하고 나누기엔 어쩐지 나의 성향이 좀 아쉽다. 그래서 좋아하는 마음을 담아 갑작스러운 선물을 건넨다거나, 오늘의 약속이 나는 너무 기대되고 행복했던지라 만나기 전에 작은 선물을 건네기도 한다. 작은 손편지지만 마음을 한가득 담은 것들을 건네기도 하고, 큰 마음처럼 보이도록 한두 송이의 꽃을 건네기도 한다. 그것은 나의 내적 친밀감이 당신을 향해 있다는 뜻이기도 하고, 갑작스레 만날 수 없는 나를 이해해 줘서 고맙다는 뜻이기도 하고, 나에게 당신이 귀한 사람이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어서 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나의 다정한 마음을 당신이 알아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며칠 전, 차곡차곡 쌓아 올리는 다정들을 마주했다. 그것은 나와 다른 형태의 다정이었다. 소소하게 모일 때마다 "밥 먹었니, 우리 밥 먹을 건데 같이 먹을래?"라고 물어봐준다. 나는 당연히 참석하지 않는 사람 쪽에 속하는데도 변함없이 한결같이 물어봐준다. 뒤풀이를 갈 때도, 수업에 올 때도, 같이 무언가를 먹거나 마실 때도 어김없이 챙겨준다. 한 번은 집에 초대도 해주셨는데, 한 사람의 일면이 다 보이는 게 집일진대, 쓱 둘러만 봐도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이구나 하는 걸 파악할 수 있는 게 집일 텐데도 편한 마음으로 머물다 가라는 그 말에 마음을 두게 했다. 이미 함께해 오던 사람들은 차곡차곡 또 서로의 관계를 쌓아 올려둔 상태라 마치 제집처럼 행동하시는 것에 또 한 번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내가 가지지 못할 만큼 커다란 친절을 가진 한 사람의 일면을 마주하고, 또 그 사람들의 배려에 감사하고, 나는 너무 이기적인 사람이지 않았나 싶었고, 친절하고 섬세한 다정 앞에서 할 말을 잃었다.


혹자는 별것 아닌 일에 굳이 이렇게 호들갑인가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내적친밀감을 잘 표현해내지 못하는 나로서는 이런 작은 관심에 크게 감동하고 마음을 여는 편이다. 내게 관심을 두고 말해주고 챙겨주는 것만으로도 위로와 사랑을 얻는 사람이라 더 그렇다. 반대로 내가 받은 다정의 영역을 시도하려고 하면, 이 무해한 다정의 행위들이 어쩐지 상대방에겐 유해한 다정, 그러니까 괜한 오지랖 따위로 혹은 지나친 관심으로 보이게 될까 봐 주저하게 된다. 나에게는 관심을 표현하는 일이 꽤나 어려운 다정의 영역이다. 행여 '내가 말을 걸면, 이걸 물어보면, 불편해하진 않을까?'라는 생각과, 사람의 마음은 생각과 표면이 달라서 '앞에서는 웃고 있지만 뒤에서는 나를 불편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에 선뜻 다가가 "밥 먹자, 차마 시자."라고 건네지 못한다. 겨우 그걸 왜 하질 못하냐고 물어보면, 내가 상대방의 호의에 악의를 가졌던 적이 있기 때문이고, 그 악의를 못 알아차리는 상대방의 무신경함에 진절머리가 났던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렇게 무해하고 친숙함을 담은 "편안한 다정"들 앞에선 내가 할 수 없는 영역을 해내니 당연하게도 그들 앞에서 겸허해지고 그들을 존경하게 되며, 어쩐지 큰 어른들 같이 보일 수밖에 없다. 차곡차곡 쌓아 올린 다정의 향연들이 내게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하고 행복했던 다정의 순간이었다.



다시 또 그리 모인다면, 주저하지 않고 당신들의 다정의 영역에 발을 들일 게다. 배우고 싶은 것들이 많은 사람의 습관들이 좋았고, 술과 별개로 사람이 좋아 행복한 날이었다. 2023년이 오고 가장 잘한 일이면서 동시에 가장 행복했던 일을 꼽자면, 그날을 꼽겠다. 함께 모여 소소하게 각자의 음식들을 먹고, 누군가 직접 만들어준 칵테일을 마시면서, 따뜻한 집에서 온기를 나누던 날. 별것 하지 않아도, 우리가 모여 웃고 떠드는 것만 해도 얼마나 좋은지 알려주고 싶었던 사람들의 마음. 그들이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 할지라도, 내게는 그렇게 다가왔던 날이었다. 나는 이렇게 풍성한 다정을 받았는데, 나는 그들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을지 고민하지만, 답이 잘 나오지 않는다. 같이해서 소중해졌는데, 소중함을 전할 길이 없다.


세상에 가장 쉬우면서 어려운 표현이 물질로 표현하는 것이란다. 가볍게 빠르게 건넬 수 있는 마음이 물질이기도 하지만, 때때로 없는 형편에서 무언가를 별도로 준비해서 물질로 건넨다는 건 어렵고 어렵게 건넨 것이기 때문이다. 고작 커피쿠폰이나 홍삼 등의 기프트콘으로 이 마음을 전달하기엔, 내가 받은 마음들이 너무 커서 턱없이 부족하다. 손 편지 하나에 담아내기엔 내 마음이 너무 작게 보이진 않을까 염려되기도 한다. 그날의 그 풍성한 다정이 한 해를 살도록 만들어 주었다는 걸 그들은 알까. 마음이 담긴 다정함을 나는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내가 받은 다정을 합당한 크기만큼 아름답게 타인에게 건넬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란다.


임진아 작가님의 <2023 오늘을 채우는 일력>에서 매일 제시되는 단어로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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