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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은비 Feb 03. 2023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고

사람이 그러는 데는 다 이유가 있지

콩이라니, 콩의 날이라서 콩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한다면 콩이야기를 해야겠지. 

심장이 콩콩거리던 이야기를 해볼까. 콩이니까. (?)


사람을 사랑하는데 이유가 있나 싶지만,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 일에도 또 이유가 없다. 그저 연이 닿으면 좋아하게 되고 사랑하게 되고 아끼게 되는 것일진대, 연이 닿지 않아 사랑이 무산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콩콩거리던 마음의 두근거림이 어느새 쿵쿵거리다가 쾅쾅거렸지만, 어째 이 사랑의 연은 그저 일방적이었던 것인가 싶은 날이었다. 그럼 이제 사랑하지 않는 일을 위해 노력해야 할 때인데, (내가 할 수 있을까 싶다가도 또 하면 하겠지만) 괜히 그간의 내 마음들이 못내 아쉽다. 말 한마디 붙여보지 못할 거라면 왜 그리도 힘겹게 앓고만 있었는가. 


나는 금방 사랑에 빠지는 사람인지라 어떤 사람의 좋은 점을 보고 금세 마음이 가곤 한다. 꼭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가끔은 이런 내가 참 부질없어 보이기도 하고 어렵다. 안 그래야지 하다가도 어김없이 다시금 또 금방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는 걸 보고 있자니 가끔은 이런 내가 한심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게 당하고 데고 했으면서도 또 좋아하는 사람들은 비슷한 양상을 가지고 있고, 그게 또 나쁘지 않아 보이니까 열렬하게 사랑하다가 피슉하고 식어버리는 행태들. 결국 마음은 잔뜩 가지고 있으면서도 행동력이 콩알만 해서 상대방에게 좋아한다고 고백도 지르지도 못하면서 혼자만 앓다가 끝나버린 사랑이 얼마나 많던가.


언제부터 나는 이렇게 금방 사랑에 빠졌던가 살펴봐도 꽤 오래전부터.. 자그마치 초등학생 때부터 이런 양상을 가지고 있었다. 옆반 남학생이 수학여행 때 신화의 와일드아이즈를 기갈나게 춰서 좋아했고, 짝꿍이 지우개를 빌려줘서 좋아했고, 중학교 땐 농구하는 모습이 멋있어 보여서 좋아했고, 고등학교 땐 잘생긴 오빠가 처음으로 말을 걸어줘서 좋아했다. 처음 사귄 남자친구는 처음 소개팅을 받은지라 무조건 사귀어야 하는 줄 알았고, 복학생의 관심이 너무 당연했을 텐데 복학생이라는 이유로 멋있어 보였고, 사수가 잘해주는 건 너무 당연한 건데 그게 남녀 간의 애정인 줄 오해하기도 하고 등등의 말도 안 되는 이유들로 마음을 열었고, 마음을 주었고, 왜 너는 그렇지 않냐고 의아해했더랬다. 지금에서야 내가 금방 사랑에 빠지는 성향의 사람이란 걸 알게 되었지만, 그 당시의 나는 모든 사랑의 형태가 이렇게 두근거린 감정이 생기면 자연스레 바로 진척이 생겨서 연애를 하게 되는 줄 알았다. 그러니 배워온 사랑의 모습이 이런 모습들이라 지금도 여전히 마음의 동요가 생기면 이게 사랑인가 보다 하고 오해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여태 그렇게 별 시답지 않은 이유로 사랑에 빠지며 살아왔으니 당연한 결괏값이다. 하찮은 크기의 콩이었다 할지라도 콩을 심어서 콩이 나왔고, 팥을 심어서 팥이 나왔다. 심은걸 잘 가꾸고 키워내는 것은 개인의 몫이니까 나는 사랑을 심었고 사랑을 키웠고, 사랑을 주었다. 간혹 사랑의 단물만 쏙 빼먹고 사라지는 사람이 있었다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나는 나의 마음에 최선을 다하고 싶다. 그러다 결혼 못한다, 그러다가 호되게 덴다 등등 많은 이야기를 들었지만, 콩을 심었는데 팥이 나올 수는 없다. 사랑을 심었다면, 충분히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 나 스스로도 사랑하고, 남도 사랑해 줄 줄 알아야 한다. 그러면서 차근차근 나를 만들고 다듬어가면 되니까. 


그렇게 보면, 어쩌면 그 많은 금사빠 중에 사랑했던 건, 

조심스럽던 마음의 두근거림을 가득 채우려 애쓴 나 자신 스스로이지 않았을까.


임진아 작가님의 <2023 오늘을 채우는 일력>에서 매일 제시되는 단어로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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