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검사결과 이야기
상담을 하면서 객관적인 시선이 필요했던지라, 센터에서 활용이 가능한 심리검사들을 요청했다. 직업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나의 내면이 어떤 상태인지는 알고 있지만, 이것이 단순히 나만의 착각일지를 고민했고, 생각했다. 그래서 요청하게 된 심리검사였다. 모든 걸 다 맞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나의 현 상황을 나타내 줄 수 있는 지표가 되어줄 것이라 믿었다. 과거 상담심리를 공부할 때 배웠던 여러 가지 디테일한 세분화된 어떤 검사의 지표들이 새록새록 떠오르기도 하고, 그새 까먹었던 부분도 있어서 굉장히 놀랍기도 했다. 아, 맞아 이런 걸 배웠었지 하면서, 풀었던 검사지가 내심 반가웠다. 아침나절 혹은 회사에서 틈틈이 빠르게 풀기도 조금 벅찬 정도의 바쁜 나절을 보내면서, 애초에 검사지를 풀고 있는 이 시간이 힐링이구나, 나는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 사람이구나를 좀 애틋하게 알아가는 기분이기도 했다.
심리검사 결과를 토대로 앞으로의 상담들을 이어가겠지만, 해석되는 것들을 듣고 있으면서 나는 나를 잘 아는 사람이라는 마음이 들었다. MBTI 역시 늘 우스갯소리로 하던 결과와 동일했다.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도 좋아하지만, 사람들이 없을 때 회복하는 경향이 짙고 그래서 더더욱 가끔 동굴에 들어가곤 하는데, 그 동굴에서 나를 구제해 줄 누군가를 필요로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때때로 나의 손을 잡아주는 건 주변의 친구들이었고, 가족이었고, 사랑이었다.
검사지를 작성하면서도 느낀 부분이기도 하고, 어쩌면 누군가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 수 있지만, MBTI에 스스로를 가두고 옭아매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마냥 맹신하는 쪽에는 가깝지 않다. 나도 상황에 따라 E의 성향이 튀어나오기도 하고 일할 때만큼은 되도록 T가 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나처럼 상황에 따라 사람들은 각자 적절한 성향을 나타내며 살아가고 있을 테니까 이것이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나의 성향이나 생각들을 대변해 줄 수 있는 것은 MBTI 가 가장 탁월하지 않나 라는 생각을 한다. 완벽히 이것은 나를 말하는구나 했다.
INFJ가 상담에 어울리는 사람이긴 하다. 통찰력, 직관력이 있고, 사람에 대한 이해와 사람을 위하는 마음들로 상담을 하는 쪽이 더 좋다. 여기서 말하는 F는 보편적 인류애, 더 큰 쪽의 감정들, 사람에 대한 공감능력, 인류애 등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된 부분도 있다. 조금 더 빠르게 사람을 캐치하는 부분도 있고, 상대방의 니즈를 더 많이 파악하기도 하고, 스스로도 너무 복잡하고, 어떤 일에도 최선을 다하고, 갈등을 피하고 싶어 하고, 사람의 가치를 생각하고, 인문계열, 사람들과 상호작용할 수 있는 곳이 자기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곳이다. 글쓰기에 매력을 느끼고, 상상력과 직관력으로 언어를 사용하는 일이 잘 어울린다는데, 글 쓰고 사람 만나는 일에 최적이라고 생각하고.. 혼자 하는 일이 좀 더 맞을 수도 있다. 등등의 이야기들을 들었는데, 결국 나인 것 같다. 결국 나다. 뭐 지금 업무는 나와 맞는 업무는 아니지만, 혼자 하는 일이라서 잘하고 있는 부분이겠거니 판단하고 만다.
다른 검사들도 토대로 본다면, 내가 지금 주 호소하는 것과 굉장히 잘 걸맞는다. 나는 사람을 만날 때 저 사람이 내 생각과 다른 마음의 상태이면 어떻게 하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들어서 사람에게 다가가기가 어려워진 부분이 있다. 차라리 연인의 관계 혹은 그런 감정의 상태라면, 그래 나의 마음과 저 사람의 마음이 다를 수 있지 하고 깨끗하게 물러서면 된다. 그러나, 친구나 지인일 경우 자주 보지는 않아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은데 그럴 수 없는 상황들이 몰려와서 더 버거웠다. 처음 만나는 사람 혹은 자주 보는 직장동료와의 관계들이 버거웠기 때문에 시작한 상담이었으니까. 심리검사 결과에 따르면 나는 사회적 민감성이 높은 사람이면서, 동시에 자기 자신을 잘 믿지 못해서 생기는 불안함이 이런 주 호소의 요인들을 만들어낸다고 한다.
나 스스로가 나를 잘 믿어주는 방향성을 찾아가야 할까, 아니면 또 다른 방향이 있을까. 이번 회기의 상담은 구체적으로 나눈 것들이 심리검사에 관한 결과 이야기가 많았는데, 그 결과들을 다루면서 하나씩 풀어가는 과정들이 무척 좋았다. 내속에 들어있는 나를 좀 더 많이 발견할 수 있다면 심리검사를 추천하고 싶다. 문장완성검사는 특히 더, 나에 대해 알아가기 좋은 검사이지 않을까 싶다. 개인 스스로를 파악하고 싶다면 시중에 나와있는 질문지들에 하나씩 답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나는 나를 얼마나 잘 아는가를 초점을 두고 알아가는 방법들이 꽤 괜찮은 방법들이구나. 연인들이 서로에게 하는 Q&A 노트도 굉장히 좋은 영향을 미치겠구나 싶었다.
회기의 시간이 짧아 찰나 가족이야기를 했다. 어쩐지 우리 엄마아빠를 참 좋아하면서도, 엄마와 아빠가 살아온 환경들을 이해하다 보니 또 응어리졌던 감정들이 올라왔다. 왜 그렇게 아빠랑 엄마가 짠하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추후에 가족 이야기를 다시 해보기로 했다. 나는 원가족과 어떤 관계를 가진 사람인지 깨닫는 일들이 개인의 삶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대화를 하다 보니, 말을 하면서 어떤 식으로든 나 스스로의 의견을 피력해야 할 때, 혹은 나의 생각을 말해야 할 때, 억울한 상황이 올 때 등등 목소리가 많이 떨리는 것들을 고쳐낼 수 있을까를 말하기도 했다. 인지는 되는 건데 초등학생 때 이후로 이것을 고쳐가는 중이긴 하나 여전히 그 자리 그대로 제자리걸음 중인 것 같기도 한 불편감 중에 하나이기에, 이참에 이 부분도 고쳐보고 나눠보고 싶었다.
그 외에, 이번주는 어떻게 지냈냐는 이야기가 내심 반가웠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하고 싶은 말을 들어줄 사람이 필요했던 것 같다. 연하남이 두 명의 여자와 썸을 탔고, 그 여자 중 하나가 나였는데, 내가 아닌 다른 여자와 잘 된 이야기를 하며 분노가 일어났는데, 이 분노를 어떻게 잠재워야 할까를 집에 오는 내내 한참 고민했다. 그래도 웃으며 가볍게 이야기한 일이지만, 난 정말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이 짜증이 났다. 더군다나 학과 사람이었고, 다 같이 있는 대화방에서 그 사람이 아무렇지 않은 척, 사귀지 않는 척, 그렇게 조용히 존재하는 것 자체가 너무 화가 났고, 그 두 사람이 나를 가지고 이용한 거 아닌가라는 생각을 지워낼 수가 없다. 그사이 나는 무리해서 부산에 다녀왔고, 부산에 다녀왔던 그 시간이 얼마나 힐링이 되었는지 너무 기분 좋았다.
한편으로, 상담을 따로 녹음해서 다시 녹취본을 타이핑하면서 다시 듣고 있자니 생각보다 나는 말을 잘하는 사람이구나, 듣기 싫을 줄 알았던 내 말이 비교적 좀 명확하고 구체적인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실감한다. 다만, 대화를 하면서 줄임말을 사용하는 모습이 내 나이 때에는 썩 좋은 모습이 아니구나, 내가 이제는 젊지 않기 때문에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겠구나, 나이가 들어가면서 더 고급스럽고 멋진 사람이고 싶고, 꼬꼬 장한 귀여운 할머니가 되려면 언행을 조금 더 다듬어야겠구나 하는 마음들이 들었다.
겨우 2회기이지만, 이 시간이 다시 오지 않으리라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다. 귀한 시간이다. 누군가가 내 말을 들어주고 귀 기울여준다는 사실만으로도 벅찬 감정들이 올라온다. 속이 시원해지는 마음이다. 아마 사람이 죽으려고 마음먹었을 때, 내 말에 귀 기울 여준 그 한 사람 때문에 살게 된다는 마음이 이런 마음이겠다. 나는 죽을 생각은 없다. 인생이 너무 즐겁고 행복하다.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는 인생을 살아내고 있지만, 당장 죽고 싶지는 않다. 비교적 불안이나 불편함을 대하는 역치가 낮은 사람일 뿐이지, 이것으로 인해 삶을 마감하고 싶지는 않다. 조금 더 건강한 방법으로 해결하고 싶어서 시작한 상담이다.
<더 글로리> 속의 문동은은 어떤 마음으로 버텼겠나 하는 걱정이 앞선다. 아무도 내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의 힘을 기른 방향성이 그저 복수로 귀결된 것뿐이다. <더 글로리> 속의 주여정은 상담을 받고 있다가, 결국 선생님은 저를 바꿔내지 못했다며 마음속으로 말을 하고 상담을 종결했다. 그 어떤 것도 말하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음을 나타내기도 하고, 괜찮다고 숨기는 것 역시 충분히 가능한 게 성인이니까. 되도록 이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면 나는 더 많은 것들을 선생님과 나누고 나 스스로 소화해 내려고 애를 쓰고 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한 번만 더 생각해 보자. 나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너무너무 아름답고 존귀한 사람이니까. 그럼 다른 사람들 역시 그렇게 존중받아야 마땅하니까. 사람으로서 스스로로서 더 잘 알아가는 사람의 형상을 가져보자. 내가 가장 잘하는 것은 기록하는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