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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티 구구 Jan 15. 2021

구멍은 비어있어야 신비롭다

영화는 두 번 시작된다      ☆ 이동진    ★ 위즈덤 하우스

 <버닝>은 나도 봤다. 극장에서 본 건 아니지만, 스트리밍 서비스를 이용해서 두 시간이 넘게 푹 빠져서 보았다. 이동진 영화 평론가는 구멍 이야기를 꺼내며 영화를 풀어나간다. 아주 세세하게 짚어가며-내가 놓친 장면들도 꽤 있을 정도-구멍, 귤, 고양이 '보일', 벤과 해미가 말하는 '재미', 무라카미 하루키와 윌리엄 포크너의 소설, 그리고 마일즈 데이비스의 트럼펫 음악, 등등 까지. 영화에 나오는 소재를 꼼꼼히 말해준다. 그런데... 뭐랄까, 정말 재미있게 영화를 보았나 싶게-아무리 영화평론가이지만 감정이 쏙 빠져서-감흥이 없다. 그게 당연한 걸까, 왜냐 일로 하는 영화 감상이니까. 그렇다면 그건 정말 일일 뿐. 영감과 감성을 충전하는 행위는 아닌 것 같다. 솔직히 좀 별로다.


 그래도 이 영화 평론을 세 번 읽었다. 촘촘히 얽힌 영화 속 인물과 소재와 대화를 내가 본 영화감상과 비교해 보고 싶었다. 나는 해미에게 초점이 맞춰졌던 것-진종서라는 배우가 매력이 있다는 사실-같다. 남자 두 명과 여자 한 명이면 삼각관계를 그리게 되어있다. 이 영화도 그렇다. 보통의 로맨스 영화와는 달리 세 사람의 로맨스가 아니라 세 사람의 인생 방식이라는 점에서 <버닝>이 갖고 있는 특별함이 있다. <버닝>은 젊은 사람들이 서로의 삶 속에 침투해 가는 과정을 그린다. 그러니 이 영화는 소재보다 영화배우의 연기가 더 압권이지 않을까. 그래서 아마도 이동진 영화 평론가의 글이 내게는 생경하기도 하지만 그레서 읽고 또 읽었다.



 유아인(종수), 전종서(해미), 스티븐 연(벤), 세 배우의 연기에서 보이는 다른 상황에 놓인 젊은이의 삶이 이 영화를 보게 하는 에너지였다. 내 기억이 맞다면 영화 시작은 북적대는 시장이다. 종수는 어슬렁거리며 걷다가 누군가가 부르는 소리에 첫 대사를 뱉는다. 인사말이었다. 해미와 종수는 만나서 고기를 먹고 해미는 종수를 홀리는 것 같은 말을 한다. 그 부분에서 꽤 흡인력이 있다. 해미가 말하는 얘기는 여행, 고양이 보일, 그리고 팬터마임을 하는 이야기이다. 귤을 상상하면 그 순간 입 안에 침이 고인다고 말한다. 그에 비해 종수는 잘 상상이 안 가는 눈치이다. 그는 무뚝뚝한 표정으로 앉아있을 뿐. 둘은 금세 친해지는데, 정말 해미가 종수를 좋아했던 것 같다. 그렇게 빠른 시간에 침대로 불러들이는 것을 보면. 누가 누구를 더 빠르게 좋아하는지 영화는 슬쩍 돌려 보여준다. 종수는 해미를 좋아하지만 해미만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해미가 벤의 차에 타서 다니기 시작한 걸 보면 휑한 마음을 그녀는  자신과 반대 지점에서 삶을 사는 벤에게 기대어 본다.


 벤이 의도적으로 접근했다거나, 이상한 관계를 만드려고 한다거나, 해미를 해코지하려거나 그런 식의 접근은 하나도 비쳐주지 않았다. 오히려 벤은 해미도 종수도 수용하는 사람으로 등장한다. 그 정도로 개방적인 상류층 자제를 나는 영화에서도 드라마에서도 본 적이 없다. 어떤 면에서 개방적이냐 하면 해미에게서 꿈을 끌어낼 정도로 대화를 잘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나도 영화가 진행될 때, 벤이 혹시나 해미를 살해했을까 조마조마하기도 했지만 그건 종수가 갖고 있는 편견에서 프레임이 돌아갈 때뿐이다. 벤은 우아하고, 정중하고, 말재간이 좋다. 이동진 평론가가 말한 대로 영화에 나온 여러 가지 소재 중에 분홍색 시계를 종수가 찾았을 때 오히려 그 물건을 보관하고 있는 벤의 배려심 혹은 상류층 자제의 정이라고 생각했다.


 해미는 어떤 인물로 연기를 하느냐 하면 종수와 벤이 파주에서 서로에 대해 깊이를 갖고 대화를 나누게 하는 역할을 충실히 해낸다. 꿈을 일깨우는 벤, 그리고 해미가 보여준 칼리하리 사막에서 추는 그레이트 헝거의 모습은 -영화에서 이 장면이 나는 너무 멋졌다 노을이 지는 가운데 해미의 몸이 실루엣으로 보이기에- 종수에게 글을 쓰고 싶게 하는 영감을 넣어주는 것이다. 그리고 종수는 배경음악-이동진 영화평론가가 짚어준 마일즈 데이비스의 트럼펫 연주곡-을 모르고 있다. 즉 그는 벤이 감상하는 것과는 다르게 본다. 노을과 반나신의 아름다움을 보지 않고, 두 남자 앞에서 춤을 추는 해미로 보는 점은 내게 실망을 가져다주었다. 그것이 아마 영화감독 이창동이 보여주고 싶은 계층 간의 차이일지도 모른다. 해미는 꿈을 보여주었는데, 벤은 그걸 이해했고, 종수는 해미에게 있는 예술의 영역을 부정한다. 해미에게 찬물을 끼얹는 말 한마디는 그녀가 종수를 향한 마음을 접게 만든다. 종수에게 자신을 보여준 해미는-고깃집에서 말한 자신의 이야기와 침대에서 보여준 자신의 몸, 그리고 꿈- 얼마나 마음 아파했을지 종수는 알지 못한다.


 그리고 영화는 마지막에 종수의 입장에서 벤을 죽인다. 벤은 오히려 싱글거리며 그를 만나러 왔지만 그는 젊음의 패기로 자신과 다른 세계에 사는 벤을 죽임으로써 종수 스스로를 지킨다. 이 마지막 씬이 종수가 쓰는 소설이라는 점에서 해미와 벤은 그에게  창작을 위한 영감이 되어준다.  



 영화는 어느 누구에게도 도덕적인 잣대를 드리우지 않았다. 행방이 묘연한 해미, 그녀 자리에 다른 여성을 데려온 벤, 소설을 통해 벤을 죽이는 종수. 그것이 소설이기에 잔인한 살인은 카타르시스로 예술의 탄생을 가져온다. 영화의 어느 지점에서 관객은 카타르시스를 얻었을까. 관객은 벤에게, 혹은 종수에게, 혹은 해미에게 이입해서 감상을 할 것이고 각각을 연기한 배우들에게 자신과 비슷한 상황을 맞춰가며 영화에 몸담을 것이다. 영화가 캐릭터를 설정한다는 점에서 인생과는 다르지만, 예술이란, 이야기란,  바로 그런 점에서 미덕이 는 것이니까.  

 



이야기가 지닌 영원한 구멍의 신비.

                


전종서 ★★★ - 몸으로 하는 일을 좋아하는데도 똑 부러지는 대화를 꺼내는 매력 있는 역할 성공
스티븐 연 ★★☆ - 말투는 좀 비아냥거리는 듯 하지만 역할에서 정중함과 우아함을 보여주는데 성공
유아인 ★★☆ ☆ - 벤 앞에서는 좀 어리석게 구는 것도 같지만 소설에서 본때를 보여주는 패기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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