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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티 구구 Feb 11. 2021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왜 이런 제목? 왜 이런 이야기?

 떠나지 않았고, 슬퍼했지만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이건 한 사람이 두 세계에서 각각 선택한 마지막이다. 이름이 없는 이 남자는 동시에 두 세계에서 존재한다. 세상의 끝.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일지도 모를 도쿄. 몽땅 거짓말이지만-허구니까-조용한 사랑, 유쾌한 미래가 남아있는 것 같다. 조용한 사랑은 세계의 끝에서 선택한 그의 미래이고, 유쾌한 미래는 도쿄에서 현실의 '나'가 오동통한 그녀와 통화하면서 긍정한 세상이다. 한 곳은 게임 시뮬레이션에 나올 법한 공간인데 도서관에서 오래된 꿈을 읽는다는 설정은 게임 같지 않고, 현실의 도쿄는 정말 게임처럼 해프닝이 벌어지더니 오동통한 여자, 도서관 여자, 렌터카 여자를 만난 후 항구에 도착하더니 잠이 든다-내 눈에는 잠 같다, 사라지기는 커녕...-는 설정이다. 물론 이 단순한 이야기 진행은 명료하다. 그게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의 백미 같다. 그러니까 그의 소설은 이야기의 핵심이 아니라 그 핵심을 향해 가는 문장들의 정렬이랄까. 이 두꺼운 소설을 뭐라고 얘기하지.라고 고민해본다면 결국 사랑 찾기이다. 이 점은 1Q84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빙빙 돌아갔지만 결국은 사랑이야기라는 점은 나름 괜찮은 천작인 것 같다. 뭐, 이런 연애소설도 있어야지.

남자 주인공이 요리를 하고, 옷을 잘 사서 패션 연출을 하고, 섹스까지 잘 해내는 걸 보며,

현대 여성으로서 으흠... 남성 독자가 읽으면 어떻게 생각할까 싶다.


 이 단순 명료한 이미지가 각 챕터에 소제목과 함께 있다. 이렇게 두꺼운 책이 되게 문장을 지으며 오랜 시간 집중을 해서 썼다는 점은 참 독특한 글쓰기 방식 같다. 대부분 이런 두께라면 등장인물이 더 많거나, 더 복잡하게 얽혀있거나, 더 있어 보이는 주제를 선택하기가 더 쉽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무라카미 작가는 난 오직 '연애, 섹스, 그래서 사랑'을 하드보일드에 담았다고 못을 박는다. 설정? 배경? 진행? 모두 분석을 해봐도 중요한 것은 남자와 여자의 만남이다. 물론 설정, 분위기, 아우라 이런 것은 있다. 좀 혼자서 다 해내는 남성이든지, 오동통하지만 매력 있는 17세 아가씨-소녀보다 아가씨에 가까운 ^^::, 도서관에서 일하지만 정말 잘 먹는-하지만 날씬한 ㅡ,.ㅡ-여성, 잠깐 만났지만 표현이 분명한 렌터카 직원-마찬가지로 여성-. 남자 한 명과 여자 셋, 그리고 천재 할아버지를 빼면 다른 캐릭터는 지나가는 행인 같다. 세상의 끝에서 그림자는 사람이라기보다 주인공의 무의식이랄까.

독백을 둘로 나눌 수 없으니까 그림자로 설정했달까. 무라카미 작가는 프로이트도 읽었나보다.


 다시 생각해봐도 이렇게 분명하고 고르게 이야기를 진행시키려면 머릿속이
어떻게 작동되어야 할지 잘 모르겠다.
텅 빈 이미지를 문장으로 쌓아 올리면 이렇게 이야기가 조립될까?

 예전에 문학사상사에서 나온 번역본으로 읽었는데, 그때는 문장이 좀 질질 끌리는 기분이었고, 보다 더 신비한 분위기를 풍겼는데, 어느덧 10 + 10이 지났더니 이야기가 한층 가볍게 느껴진다. 반쯤 읽었을 때, 이렇게 길 필요가 있을까 하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뻥과자처럼 많이 먹어도 문제없는 소설이다. 하지만 만약 이 소설을 10대 시절에 읽었다면 등장인물에게 어떤 영향을 받았을 것 같다. 적어도 옷을 벗는 행위에서 오는 묘한 충격 또는 오동통하지만 귀걸이를 달고 있는 점, 친절하고 똑똑한 렌터카 여직원은 멋질까고 이런저런 인상을 받을 것 같다. 그러나 지금은 내가 봐온 세상이 닳고 닳아서 그저 이야기 속 세계구나 싶다.

그렇다면 무라카미의 요즘 작품은 달라졌을까.


 굳이 달라질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이건 무라카미 작가만의 세계이니, 이 분위기, 이런 캐릭터들이 그의 머릿속에서 텅 빈 이미지로 시작되어 굵은 책 한 권을 가득 채운다는 점은 다른 작가가 할 수 없는 것이고, 한다고 해도 이미 무라카미 작가가 버티고 있으니 말이다. 정말 무라카미 작가의 소설을 허심탄회하게 읽고 나면 아마 이런 글은 무라카미 작가 하나만으로도 충분해라고 인정할 것이다. 뭐 굳이...


 제목이 '세상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이다. 항상 소설을 읽으면, 제목을 먼저 생각할까 이야기를 먼저 완성할까 생각해보는데 '세상의 끝'은 무라카미 작가가 품은 이상향 같다. 이 넓은 지구별 어딘가에 그런 곳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상상하며 지내는 게 무라카미 작가의 일상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하드보일드는 장르이다.

그러니 그가 어떤 소설을 섭렵했는지 알 수 있다. 어쨌든, 이 소설 제목은 꽤 멋지다는 점이다.


 소설에는 영화 몇 편, 팝송 몇 곡이 BGM처럼 깔린다. 무슨 영화인지 모르고, 노래도 모르지만,

분명 이 소설과 어딘가 닮았을 것 같다.


도쿄 GINZA


 나는 무라카미 작가의 ' 1973년 핀볼'을 좋아한다. 너무 두껍지 않고, 적당한 두께에 내용도 적당히 차분하면서 묘하게 고독하다, 그리고 자기 고백을 하는 것 같다-네 여기에도 섹스는 있습니다...-. 그렇지만 나중에 계속 두껍게 소설책을 내서 이제는 초기 작품이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나름 추천을 한다. 난 도서관에서 낡은 책으로 읽고, 음... 무라카미 작가는 이런 느낌을 주는군하고 새삼 알게 됐다.

그의 나중 작품은 너무 두꺼워서 자칫 무료해질 수도 있는데 이 소설은 앉은자리에서 한 번에 다 읽을 수 있다.


 다시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로 돌아와서 이야기는 무라카미 작가가 세상에 나름 저항? 대항? 반항? 하는 주인공을 내세워서 보여준다. 마초 같은 면은 없다. -맞아 그래서 매력이 있지- 권위적이지도 않다. 그런데 참 단정하고 신사적인 것-사실 신사적인 것은 키다리 아저씨에서나 읽고 알았지 잘 모른다-도 같다. 그리고 그 남성의 취향이 슥슥 그려져 있다. 무라카미 작가님은 묘사를 하는 것 같지는 않고, 슥슥 보여주기만 한다.

그것도 무라카미만의 글쓰기 비법 같다.


 아... 이 글을 염두에 두고 지은 소제목이 '하루키는 왜 이런 제목을 짓고 이런 이야기를 썼을까'였는데, 두리뭉실한 얘기만 쓰고있다. 내가 좋아하는 라디오 DJ는 대충이 좋다고 해서 나도 '대충' 이 정도로 이 소설을 얘기하련다.-이봐요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님, 그래도 다 읽었어요- 소설을 분석하고, 해석하고, 플롯을 파헤치는 것을 좋아한다면 독자들은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소제목을 짓고 이 소설이 왜 두 갈래로 이야기 진행이 되는지 나름 분석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그럴 필요가 없네. 왜냐? 말했다시피 이건 연애 소설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초로의 남자가 선택한 세계의 끝, 30대 프리랜서가 선택한 미래의 하드보일드 원더랜드가 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하루키 씨, 현실에서 세계적인 작가의 길을 일본땅 너머에서 찾아낸 것 마음에 드시나요?라고 물어보고싶다.

으흠... 대답은? -'일인칭 단수'에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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