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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티 구구 Jan 18. 2021

언니는 죄 없다

     경애의 마음        ☆ 김금희    ★ 문학동네

 경애가 울었던가. 아니다. 경애는 춥다고 했다. 상수는 그에 비하면 울보다. 어쩌면 상수는 집에서 아버지, 어머니, 형에게 좋은 피드백을 받지 못해서 조울이 드러나는지도 모른다. 주로 울증이 나타나지만 '언니는 죄 없다'를 운영하며 여성들의 연애 고민, 그리고 그에 대한 상담을 통해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며 지냈는지도 모른다. 경애는 주로 분노라는 감정에 휩싸이는데, 그래서인지 나긋나긋하기보다 무뚝뚝한 표정과 말투를 지녔다. 둘 다 그 나이에 비해 감정 표출이 잘 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잘 찾아보면 사람마다 감정 표출을 건강하게 하는 경우가 별로 없다. 그런 사람이 있다면 아마 그 감정받이를 하는 누군가가 있을 것이다. 감정표출자는 그 감정받이가 어떤 힘든 감정인지 파악을 못한 채 말이다. 그래서 경애는 상수와 E에 대해 얘기 나눌 수 있었던 것 같다. 둘이 갖고 있는 감정의 테두리는 견딘 자와 듣는 자로서 선이 그어진다. 경애는 견뎠고, 상수는 '언죄다'로 들었다. 둘이 만난 것은 꼭 미싱 회사 반도 때문이 아닌 것 같다. 상수는 아버지의 기대를 포기했고, 경애는 산주와 헤어져서 우울의 시기를 또 지났기 때문에 반도에서 만난 것이다. 그런 감정의 홍수 상태를 건너기 위해 사람들은 홍수 못지않은 눈물을 뿌리기도 하고, 홍수 깊이만큼 깊게 잠수하기도 한다. 이 소설은 그런 눈물과 깊이를 상수와 경애라는 인물로 보여주는 감정이 가득 찬 소설이다. 가득 찬 감정을 어떻게 말로 그려낼 수 있을까. 그게 그려지기나 할까 싶지만, 다행히 경애는 마음이 깊고, 상수는 남자지만 눈물을 흘리고는 했기에 이야기가 나온다.


 경애는 반도 미싱에서 노조 시위를 할 때 머리카락을 밀었다. 경애는 사실 노동자 측이 아니었다. 사무원이었다. 그런데 그 시위를 지켜만 볼 수 없었다. 지켜보고, 비켜갈 수 없는 마음은 뭘까. 그것도 분노를 표출하는 방식이었나. 머리카락 한 번 시원하게 밀면 마음이 뻥 뚫릴 거라고 속단했을까. 경애가 E를 떠나보내고 지내온 고등학교 시절을 분노라는 단어로 매듭짓는 것으로 충분할까. 상수는 E의 핸드폰 음성사서함을 듣고, 메시지에 남겨진 '미안해'라는 낮은 목소리의 여학생을 대신해 펑펑 운다. 그 목소리는 분노가 아니라 앞으로 견뎌야 할 시간의 무게를 담은 슬픔일 것이다. 상수는 그 여학생이 E가 말한 여자 친구라는 것을 짐작한다. 


 상수와 경애가 회사에서 같은 팀이 되었을 때, 오히려 침착한 업무를 하는 것은 상수가 아니라 경애이다. 한국 본사에서도 그렇고 베트남 해외 지사에서도 그렇다. 하지만 경애는 알아챈다. 상수가 영리하게 사업권을 따내지 못하는 것은 상수가 갖고 있는 순정 때문이라고 말이다. 상수는 지켜야 할 선이 있고, 그것을 믿고 사람을 대하고, 일을 한다. 혹자는 그런 사람을 고문관이라고 할 테지만 그렇기에 반도 미싱에서 아웃사이더인 경애와 조 선생을 팀원으로 얻게 된다.  

 상수와 경애가 사무실에서 보낸 시간보다 더 많이 소설에 묘사되는 이야기는 함께 하는 식사시간이다. 처음 팀원 축하 회식을 할 때-팀원은 상수와 경애 두 명- 고기를 먹었다. 상수는 삐치는 것도 잘하지만, 삐친 티 안 내려고 노력하는 것도 잘한다. 경애는 무덤덤히, 함께 먹고 있잖아요라는 말풍선을 단 채 열심히 먹는다. 상수는 고기를 뒤집어주며 맛있게 먹으라고 챙겨주지만 둘은 아직 서먹해서 상수가 자꾸 울컥한다. 만약 상수가-그는 상사이다- 일방적이거나 권위적이라면 경애는 말없이 먹는 것조차 잘 못할 것이다. 급체라도 한 것처럼 불편할 것이다. 두 사람이 베트남에 갔을 때, 경애는 상수에게 떡볶이를 해준다. 상수는 맵고 달달한 떡볶이를 먹으며 또 욱한다. 상수는 그런 사람이다. 상대가 하는 말에 심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그만큼 상대를 자신의 마음 한 켠을 비우고 받아들이기 때문. 


 상수는 언니다.


 한편으로는 상수는 언죄다가 해킹당하고 깊은 수렁에 빠지는데, 그걸 차마 도와달라고 경애에게 고백하지도 못하는, SOS를 치지 못하는 어른이이다. 어른이지만 순정이 있고, 어른이지만 어린이처럼 상대에게 공감하는 그는 사업에는 신경도 못 쓰고 언죄다 때문에 몸과 마음을 소진한다. 상수는 조 선생과 함께 지내는 창식 씨가 나중에 자신의 모습일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늙어서 업무를 맏겨주지도 않고, 갈팡질팡 뭘 해야 하는지 모르는 창식 씨. 상수는 누군가로부터 진정한 인정을 못 받았다. 언죄다에서 그나마 상담 메일을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지켰는데, 그마저 무너지니 상수는 어딘가에 정착을 못하는 것이다. 

 

 상수와 경애는 그러나 연대를 한다. 먼저 간 친구 E가 둘에게 마음을 터놓는 계기가 된다. 경애는 몸집이 크고 얼굴에 붕대를 칭칭 감은 상수를 기억해내고, 상수는 경애가  언죄다에 산주를 향한 마음을 내비치는 걸 보며 경애에게 E가 어떤 존재인지도 어렴풋이 알게 된다. 경애는 상수가 운영하는 '언죄다'로 고민을 여러 차례 올린다. 하지만 상수는 경애가 기억하는 바로는 E가 찍은 영화에서 어깨만 비치는 수다쟁이 고딩일 뿐이다. 그 영화를 경애는 보았고, 독자인 나는 보지 못했으니, 경애가 얼마나 상수에 대해 공감하는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수다쟁이 고딩이라니 생각만 해도 즐겁다. 그 수다가 차마 일본에서 엄마를 보낸 슬픔을 희석시키려는 작용 반작용의 법칙일지 몰라도 나는 왠지 즐겁다. 상수가 말을 한다니. 그건 아마 먼저 간 E 덕분이겠지.


 그럼 E는 상수와 경애를 어떻게 대했을까. E는 굉장히 쿨하다. 정말 쿨하다. 경애가 얘기해도 쿨. 상수에게도 쿨.

쿨해서 그런가 일찍 세상을 등진다. 데이비드 린치라는 공통분모를 경애와 상수에게 남기고 무지개다리를 건넌다. 이쁜 표현일지 모르겠다. 쿨하지만 너무 핫하게  죽는다. (--:: 어떻게 표현해야 E의 죽음을 얘기할 수 있을까.)

 경애도 상수도 해가 쨍 뜬 날이 왔다고 말하지 않는다. 소설 '경애의 마음'은, '언니는 죄 없다'라는 말로 내게 상징이 된다. 경애라는 언니도 상수라는 언니도 둘 다 언니의 마음을 갖고 살아가기에. 언니는 아마 그래서 더 많은 것을 내포할지도 모른다. 언니... 잘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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