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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티 구구 Jan 31. 2021

 책방에 다녀와서

    

 이번 겨울이 시작되면서 책을 많이 샀다. 좋아하는 책방에서 사고, 서울에 있는 헌책방에서도 샀다. 인터넷 서점에서도 물론이다. 책을 사는 속도가 책을 읽는 속도보다 워낙 빨라서 내 방 책꽂이 옆에 책이 두 줄이나 쌓여있다. 그런데도 책 구매 욕구가 줄지 않는다. 마치 지금이 아니면 이 책이 당장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촉이 생긴 듯이 마음에 들면 몇 권이든지 산다. 책으로 징검다리를 만들면  서울 한강을 건너갈 수 있을 것 같다.- 어떤 이들은 독도까지 이어지는 징검다리를 책장에 만들고 있을지도 모른다- 책이 나를 선택하는 걸까.


 책을 처음 샀던 어릴 적이 생각난다. 엄마, 오빠, 나 셋이 서점에 들어가서 오빠는 애니메이션이 만화책으로 나온 걸 고르고, 나는 한참을 책등을 보며 고르다가 '수수께끼' 책을 골랐다. 그때까지 수수께끼가 뭔지 몰랐던 나이였다. 그 책을 고르고 엄마는 정말 그걸로 정한 거냐고 물으셨다. 아마 내가 워낙 오랫동안 고르고 골라서 좀 지치셨던 것도 같다. 하지만 그 책은 금방 친척 동생 손으로 넘어갔다. 동생은 내게 그 책이 갖고 싶다고 해서 나는 덥석 건네주었다. 아마 그 책이 나에게 있었더라도 지금까지 갖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책을 좋아하지만 누구를 빌려주거나 주는 것도 무척 좋아한다.


 하지만 작가의 책, 작가의 에세이를 읽으면서 책을 빌려주지 말아야겠다는 조금 힘든 다짐이 생겼다. 그 다짐은 얼마 전에야 생긴 마음이다. 내가 책을 고른 게 아니라, 책이 나에게 와준 거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렇담 나는 그 어여쁜 책들을 내가 지켜야 하는구나 싶었다. 대학시절에 고등학교 때부터 사서 모은 책들을 들여다보다가 머리가 너무 아프고, 마음이 무거워서 대방출을 했다. 그때 마침 손님으로 오신 분이 그 책들을 가져도 되냐고 해서 잘됐다 싶어서 가져가라고 했더니, 한 권도 빼놓지 않고 내가 방출한 책을 몽땅 가져갔다. 책들이 그렇게 떠난 후, 책들은 돌아오지 못했다.


 이상하겠지만 책은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사놓고 꽂아두기만 해도 책은 변함없이 그 자리에서 묵묵히 기다려준다. 먼지가 쌓이고, 햇빛에 바래져도 한치의 움직임도 없이 서있다. 그때 매몰차게 쫓아낸 나는 어쩔 수 없었다. 그때는 책들이 버거웠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책으로 얻은 앎이 도대체 인생에 적용이 안 되는 것이었다. 누군가와 책에 대한 얘기를 나눌 수도 없었고, 20대 시절이 너무 괴로웠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책장에 있는 책들을 랜덤으로 빼서 읽다가 나는 속이 부글부글 끓었고, 내가 단순하게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 책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더 복잡하게 생각해야 했을지도 모른다. 책을 더 많이 읽고, 더 가까이해서 의심도 하고, 추측도 하고, 결단한 후 말과 행동으로 보여줘야 했을지도 모른다. 난 그저 이상적이 꿈만 꾸었던 것이다. 아직도 나는 그 버릇을 못 버렸다. 이것이 요즘 유행하는 MBTI로 다 설명이 될 수 있을까.


 그리고 세월이 흘러 지금의 나는 다시 책을 산다. 다시 달팽이 놀이의 정가운데로 온 것 같다. 하지만 뭐랄까. 이번에는 혼자서도 잘 놀 수 있는 방법이 생겼다. 바로 글을 쓰는 것으로 해결이 된 것이다. 참 이상하지만, 혼자 노는 것이 결국 내게는 정답이었던 것이다. 현실에서 그토록 사람 관계를 힘들어했던 나는 결국 혼자서 뭔가를 만들고, 즐기고, 표현하는 사람이었다. 옛말에 친구가 중요하다고 했지만, 친구는 나부터 세우고 나서 만나는 것이 진정 우정인 것 같다. 좌충우돌 힘든 시간을 견디고 나자 이제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그 강남이 험난한 젊은 시절임을 알겠다.


 누군가는 좁은 공간에서, 작은 도시에서 반평생을 보낸다. 그리고 세상을 더 넓게 갖기 위해서 책과 영화와 음악을 가까이한다. 내게 기회가 온다면 꼭 세상을 더 넓게 갖고 싶다. 그것이 직접 경험이 될지, 간접경험이 될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이제는 직접 경험을 한답시고, 종이 위에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이야기를 적는다. 소설을 짓는 것이다. 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그 창작의 시간이 얼마나 즐거운지 말이다. 거기서부터 시작이 아닐까. 나부터 즐거운 이야기를 만드는 것.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고 하고, 게 파려면 게 파야한다고 했다. 굳이 창공과 대지를 빗대어 얘기하지 않아도,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내가 즐기는 것을 일로 하는 것이 좋다는 점. 늦은 거 아닐까 싶어도, 그 시간 동안 나라는 사람을 좀 더 조절할 수 있게 된 점은 정말 다행이다. 여기까지 오기 위해 꽤 큰 일을 치르기도 했다. 건강이 문제였고, 그로 인해 30대는 계속 아팠다. 손에 잡히는 것은 하나도 없이 마음이 병들고, 몸이 쓰러졌다. 그래도 살아있다는 것을 느낄 때마다 잘했다는 생각도 든다. 실패도 잘했고, 상처도 받아서 견뎠고, 치료도 놓치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곁에 책이 있었다.



내 인생의 책이 몇 권쯤 될까 싶다. 한 번 적어볼까.


데미안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새의 선물

장미의 이름

외딴방

바이올렛

깊은 숨을 쉴 때마다

킬리만자로의 눈

눈에 대한 스밀라의 감각 -정영목 번역

홍등

황무지

앨리스의 생활방식

안나의 테이블

우국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

세계화의 덫

사람의 아들

권태로운 자들 소파씨 아파트에 모이다 - 장편소설

악기들의 도서관

옥수수와 나

산책하는 이들의 다섯가지 즐거움

개선문

당신의 나무

소피의 세계

호흡법

시지프스의 신화

...


생각만큼 많지는 않네.

나는 단편소설도 무척 좋아한다.

적어놓고 보니, 비문학은 단 한 권.



혼자서 책 읽고, 글쓰는 것. 그렇다하더라도 책을 읽고 있을 때, 책을 통해 연결이 되어 있음을 여전히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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