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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티 구구 Dec 23. 2020

그것은 시간이라는 편집이  더해져야 한다

에디톨로지  창조는 편집이다    ☆김정운  ★21세기북스



 지난달, 2단계 거리두기가 시작되기 전에 내가 자주 가는 작은 책방에서 책 교환 이벤트가 있었다. 나는 소설을 좋아해서 따끈따끈한 신간 소설 '복자에게'를 갖고 갔다. 서점 주인은 모두 여섯 명이 모여서 책을 소개하고 이야기 나눠서 경매 형식으로 책을 교환한다고 말했다. 책 소개를 잘해야 모인 분들이 손을 번쩍 들고 그들 각자가 그 책을 왜 갖고 싶은지 책 주인의 책 소개로 어림잡아 말해야 한다고 했다. 책 주인은 책 제목, 저자 등등 구체적인 사실은 비밀로 하고, 책을 에두르며 자신이 왜 이 책을 갖고 왔는지 말할 수 있어야 했다. 책은 포장되어서 다른 사람은 사이즈로나 무슨 책일까 가늠해볼 수 있었다. 나의 책은 서울에서 춘천까지 여행을 온 대학생에게 전달되었다. 우선 그분이 가장 먼저 왜 이 책을 갖고 싶은지 말하기 시작했기에 나는 속으로 후한 점수를 준 터였다. 게다가 무엇보다 그분은 자신이 소설을 좋아한다고 했다. 그 말이면 충분했다. 나는 다른 두 분의 이야기를 더 들었지만, 내 결정은 이미 내려졌다. '복자에게'는 주인을 잘 찾아갔다. 그렇다면 나는 무슨 책을 선택했을까.


  나는 주인장이 갖고 온 깍뚜기 책을 선택했다. 왜 깍뚜기냐 하면 그 책이 유일하게 포장이 안 된 책이었고, 가장 먼저 책 소개를 한 후, 나만 그 책을 갖겠다고 손을 번쩍 들었기 때문이다. 주인장은 그 책을 아는 형에게 받아서 읽기 시작했다. 현재 나온 판본보다 먼저 나온 판본이어서 아재 개그도 많았다며 나중 판본은 그런 개그가 많이 빠져서 아쉽다고 했다. 주인장이 갖고 온 판본은 나중 판본이었고, 덧붙여 설명하기로 그 책을 읽고 자신은 편집에 대해 알게 되었고, 그를 통해 시청에서 진행한 프로젝트에 기획안을 쓸 때 영감을 얻고 노하우를 발휘해 당선되었다고 했다. 난 제목이 마음에 들었다. '에디톨로지 창조는 편집이다' 이 책을 통해 나도 이번에 세 번째로 도전하는 브런치 작가 신청에서 큰 틀을 잡고자 했다. 글이라면 나도 나름 엉덩이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소설가가 되고 싶어서 몇 차례 단편 소설로 공모전에 도전했다. 당선되지 않았지만, 글쓰기가 가진 창조의 힘. 창조를 할 때 떠야 하는 편집의 눈이 분명히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동시에 창조와 편집이 동격이라는 것을 이해한다면 무의식에서 끌어올린 내 창작의 영감들은 이미 내가 살아온 인생 깊은 곳에서 편집이 되어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 책을 읽는 것인가. 나는 비소설이든지, 소설이든지 일단 재미가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마다 재미를 느끼는 것이 취향대로일 것이다. 어려운 철학서를 읽고 재미를 느끼는 독자는 분명 그 분야를 많이 알고 읽어왔기 때문일 것이고, 나처럼 문학 분야를 좋아하는 사람은 전자와 마찬가지로 오랜 시간에 걸쳐 소설을 읽어왔기 때문이다.


 


 Edit+ology 합성어를 창조한 김정운 교수님은 사변이 뛰어난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하나의 이론과 하나의 학문을 접했을 때 그것을 글로 풀어내는 솜씨가 유쾌하다. 그 유쾌함을 리듬으로 깔고, 얕은 물에서 깊은 물까지 자유자재로 유영한다. 가령 '04 누구나 천재가 될 수 있다, 쥐 때문이다'를 보면 마우스(Mouse)를 굳이 '쥐'라고 원래 의미의 뉘앙스를 갖는 단어를 선택한 이유는 내게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을 연상시킨다. 장서실에 불이 나서 오도 가도 못하는 윌리엄 수사와 아드소는 쥐 한 마리가 꼬리를 치며 벽 모서리를 따라가는 것을 쫓아서 탈출한다. 그런 이미지를 심어준 '쥐'가 바로 클릭을 할 수 있는 마우스가 되었다. 김정운 교수는 마우스를 통해 인터넷을 돌아다니며 각종 지식을 넘나들어서 한 공간에서 마치 다른 공간으로 이동하는 것처럼, 혹은 한 시대에서 다른 시대를 살아가는 것처럼 경험을 하고 배울 수 있는 현대인들을 보고 '천재'가 될 수 있다고 한다. 윌리엄 수사와 아드소는 장서실이라는 오래된 보고에서 화마 때문에 지식이 소멸하는 공간을 Mouse(쥐)를 따라 피해 갈 수 있었다. 지금 반대를 의미한다고 생각한다면 한 번 더 생각해보라. 김정운 교수가 독일 자유대학에서 그 넓은 도서관에서 유유자적하며 책을 읽고, 책을 벗 삼아 낮잠을 자는 청년이었는데, 현대인이 인터넷으로 찾아내는 지식의 향연에 갈채를 보낸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문장을 하나의 의미로 밖에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나는 누구나 천재라는 것은 결국 누구나 바보가 될 수 있다로 이해한다. 그만큼 천재 인양 지식을 떠벌리지만, 오랫동안 숙성시킨 사고, 사변, 생각을 갖지 못하는 것을 저자는 비웃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김정운 교수가 이 책을 쓰며 유쾌함을 잃지 않는 것은 바로 그런 식으로 탈을 쓴 이야기들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조금만 주의를 가지면 이 책이 가진 여러 가지 비판의 시선에 독자는 깨어나야 한다.



 하지만 동시에 지식권력이 더 이상 대학에 있지 않다는 주장을 미네르바 사건을 통해 말한다. 김정운 교수가 말하는 바는 분명하다. 결국 지식은 장서실에만 있어서도 안 되고, 마우스를 클릭하며 쉽게 찾고 쉽게 읽은 후 쉽게 폐기 처분하는 것도 틀린 셈이다. 지식은 김정운 교수가 이 책을 통틀어 갖고 가는 유쾌한 리듬과 같다. 작가의 리듬은 숨쉬기처럼 일정하다. 마치 지식인 줄 모르고 재미있게 책을 읽는 아이처럼 퐁당 빠져서 파도를 탄다. 좋은 편집 당하려고 달려드는 것이 아니라 무의식 속에서 이미 편집된 것을 온전히 내놓았을 때 작가는 문장의 리듬을 탈 것이다. 그렇게 온전히 내놓은 글이 편집자 눈에 띌 것이다. 자습서처럼 메뉴얼이 된 글이 아니라 활강하는 스키 선수처럼 스피드를 온몸으로 느끼며 설산을 내려오는 것처럼, 독자들은 그런 글이 지닌 깊이에 빠져드는 것이다. '창조는 편집이다 에디톨로지'라고 순서를 바꿔보면 '에디톨로지 창조는 편집이다'에서 가운데 있던 창조가 맨 처음이 된다. 결국 창조는 우선한다. 창조를 하기 위한 것은 편집 때문만이 아니다. 그것은 시간이라는 편집이 더해져야 한다. 김정운 교수의 인생을 뜻한다면 역시 독자의 인생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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