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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티 구구 Jan 06. 2021

PARASITE, 그 후 이야기

영화는 두 번 시작된다    ☆이동진    ★WISDOM HOUSE

-피고는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습니까?

- 냄새가 나쁘다는 말을 했다고 목숨까지 빼앗기는 것은 억울합니다.

  피고는 제가 아니고 저 사람이죠. 창조주님. 어떻게 저를 두 번 죽이십니까?


 건너편에 백발이 된 노인이 앉아있다.  노인은 장수를 한 듯 보이지만, 빛을 본 적이 없다는 듯이 실눈을 뜨고 있다.

그가 입고 있는 옷은 비쩍 마른 노인에게 너무 헐렁하고 느슨해 보인다. 옷에는 투명한 냄새가 베여있다. 옆에 있는 천사들은 냄새가 고약하다는 듯이 얼굴을 찡그리고 있다. 노인은 오래 살았지만, 고목처럼  자리만 지키고 있다. 재퍈관은 그 노인의 표정이 인생무상인지 고진감래인지 분간을 못한다. 고진감래라면 피고는 이제 아랫 세상에서 사라져야 할 계급이 될 것이다. 이 사건은 매우 중요한 역할이 될 것이다. 윗세상에서 모두가 똑같이 사는 것처럼 아랫 세상도 천국 시스템이 도입될 것이다. 헌데 인생무상이라면... 이거 참 곤란하다. 왜 인간이 인생무상이라는 고차원에 이른단 말인가. 이건 창조주를 벗어난 행위이다. 창조주 즉, 재판관은 무엇이든지 옳고 그름을 가르는 존재이다. 옳고 그름의 경계에 선 저 노인은 오랫동안 회자된 이번 사건을 무마시킬지도 모른다. 창조주 재판관은  노인의 입에서 고진감래를 인정하는 대답이 나오길 기대한다. 하지만 노인은 말을 잃고 멍한 눈빛으로 앉아있다. 창조주 재판관은 괘씸한 표정이라고 생각한다. 이 사건은 피고의 말대로 겨우 냄새 때문이라는 말처럼 어이없는 한마디에 건너편 노인이 아랫 세상에서 운전기사였을 때 피고를 죽였다. 피고는 당시 대저택의 주인이었고 노인은 그의 운전기사였다. 천사들은 노인이 오랫동안 대저택 지하실에서 연명하며 한없는 고독과 투쟁하여 개과천선했다고 변호했다. 한창 때  CEO였던 피고는 아내와 두 자식을 남기고 윗세상에 왔지만 여전히 잘잘못을 모른다. 천사들은 이 사건으로 평화와 평등인간 세상에 뿌리내려 퍼져서  더 이상 인간사회에 계급이라는 것이 없어질 것이라고 창조주 재판관에게 보고한 바가 있다.



 배심원으로 앉아있는 여러 나라의 성인들이 노인의 얼굴을 보고 연민과 위로를 건네고 싶어 한다. 성 프란체스코는 그가 오랜 굶주림으로 겨우 숨만 쉬며 삶을 연명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고, 성녀 테레사는 그 역시 감금되다시피 한 지하에서 가족을 만나지 못한 외로움이 그를 목석으로 만들었음을 알았고, 성 패트릭은 노인이 결정적으로 칼을 들어 올려 피고를 죽인 것에 솔직히 당연하다고 생각이 들었고, 산티아고는 노인이 감금되었던 시간이 오히려 피고가 젊은 날 살해되어 저세상으로 온 것보다 더 큰 순례임을 간파했고, 해골물을 마시고 득도한 원효 스님은 노인의 타는 목마름을 자신의 것인 양 마음 아파했고, 중국에서 병자를 치료했던 화타는 노인의 인생이 참으로 기구하다는 것을 가늘게 뜬 눈을 보고 알 수 있었고, 소크라테스는 독배를 마시고 일찌감치 세상을 뜬 것이 참으로 다행이라고 혀를 끌끌 찼다. 원고에 앉아있는 노인은 영원한 카오스 상태처럼 인생무상을 아우라로 쏟아내고 있었다. 천사들은 그런 노인을 이 재판에서 승소시키고 싶어 했다. 창조주 재판관이 노인에게 손을 들어준다면 아래 세상의 모든 모호함-가난, 질병, 전쟁, 기아, 온갖 자잘한 욕망들-이 사라질 터였다.


 노인은 여전히 말없이 혼돈을 바라보고 있다. 혼돈을 바라보면서 마음속으로 염불을 외우듯이 독도는 우리 땅을 부르고 있다. 재판 관람석에 앉아있는 수잔 콜린스가 노인을 보며 다음 소설에 저런 인물을 그려봐야겠다고 중얼거리고 있고, 움베르토 에코는 장미의 이름에 나온 윌리엄 수도사가 나중에 저런 표정을 지으며 다른 소설에 등장한다면 장서실을 불태우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무릎을 탁 쳤으며, 존 스타인벡은 저런 인물상이 있는 한국은 대체 어떤 나라일까라고 옆에 앉은 이에게 물어보고 있었고, 얼마 전에 독일 추리 문학상을 받은 K 작가는 자신이 쓴 소설 속 살인자를 노인이 읽었나 싶었고, 배캠 DJ는 오호라 저 눈빛 마음에 들어라고 호탕하게 웃을 뻔했다.



 그런데 문제는 창조주 재판관이었다. 그는 이런 표정을 짓는 노인이 세상에 많으면 어떡하나라며 고민을 하고 있다. 인간이 자신이 지을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기에 몹시 거북했다. 노인이 승소하지 못하면 노인은 혼령이 되고 윗세상에 올라올 수 없다. 오직 피고인만이 윗세상에서 개과천선할 때까지 천사들에게 교육을 받을 것이다. 그렇기에 천사들 측은 난감한 상태이다. 노인이 장수하는 동안에 피고인은 자신의 잘못을 전혀 깨닫지 못했다. 계속 자신은 억울하고, 자신은 잘못이 없다며 천사들에게 하소연만 해왔다. 천사들은 이런 사람은 아랫 세상에서 고생 좀 해봐야 다른 계급의 인간들이 사는 삶의 고충을 알 수 있는데, 꼭 단명해서 이렇게 골치 아픈 재판을 떠맡긴다며 수군거렸다.


 이 사건은 봉 감독이 만든 'PARASITE'라는 제목으로 서구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켜서 미국의 LOCAL 상을 받았고, 이 영화를 낱낱이 분석해서 글로 쓴 영화평론가이자 작가인 LEE에 의해 영화는 두 번 시작되고 있다. 여전히 윗세상과 아랫 세상은 큰 간극을 좁히지 못하며-창조주는 노인의 표정을 여전히 읽지 못하는 상황이라- 천사들은 미궁에 빠졌다. 천사들은 아랫 세상의 영화관에 앉아서, 혹은 책을 읽으며 보다 나은 윗세상의 상태를 만들고자 분투 중이다.


Ending Credit:  배캠의 타이틀 뮤직이 흘러나오며, 이 재판은 무한대로 휴정에 들어간다. 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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