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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티 구구 Dec 30. 2020

창조와 편집의 순환

에디톨로지 창조는 편집이다   ☆ 김정운   ★ 21세기북스

                                                                                                                                                                                     

 편집은 Edit-글을 쓸 때 초고를 편집하는 것, 편집자는 Editor-책과 잡지를 만드는 과정에서 영향는 사람. 영화에서 편집 기술은 찍어 온 필름을 다시 탄생시킬 수 있다. 그런데 이런 편집이 일상에서 적지 않게 발견된다. 또한 일상에서 쉽게 그 기능을 잃게 된다. 김정운 교수는 백화점과 편집숍이 서로 정반대에 있음을 서술한다. 상품을 분류별로 집합시켜서 진열해 놓은 백화점. 근대 이후에 사람들은 그런 백화점에 매혹되었다. 어마어마한 양의 물건들이 구획되어있는 장소에서 사람들은 아이쇼핑을 하는 것을 즐기기 시작했다. 이것은 아마 소비자에게 자신이 진정 원하는 상품을 욕구하는 편집(?)본능을  소멸시켰을 것이다. 하지만 편집숍은 그와 다르다. 밑도 끝도 없이 여러 가지 물건이 마치 끝말잇기처럼 한 장소에 진열되어 있다. 일본에서 김정운 교수가 좋아한 곳이 이런 편집숍이었고, 그곳은 주인 머릿속을 들여다볼 수 있는 작은 전시회 같은 장소가 되었다고 한다.


 서양 미술 회화에서 중요한 테크닉 중에 하나인 원근법은 한 예술가, 한 과학자에 의해 새롭게 해석되기도 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수태고지'이다. 그림을 보니, 나도 어릴 적에 이 그림을 유심히 봤던 기억이 난다. 그때의 내 시선은 지금의 내 시선보다 더 정확하고 예리했다. 벽돌이 마치 방금 전에 움직여서 그림 속에 들어간 것 같고, 살찐 천사는 금방이라도 부풀어 올라서 하늘로 풍선처럼 두둥실 올라갈 것 같고, 성모 마리아는 긴 팔로 천사의 옷자락을 움켜쥘 것 같은 이 그림. 아마 그 이후로 이 그림을 다시 보지 못한 것 같다. 김정운 교수의 서양 미술에 대한 관심은 이 책 <에디톨로지 창조는 편집이다>에서 보는 사람의 위치에 따른 새로운 원근법을 추구한 레오나르도를 언급하며 저자 스스로도 자신의 책을 통해 새로운 시각으로 인문을 접하기  바라는 것 같다.


 프로이트에 대한 견해는 또 어떠한가. 프로이트의 학설이 순 베껴온 이론임을 그 당시 '벨 에포크'라는 시대를 들먹이며 해부하는데 다음 장에 가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로이트의 개념이 다양한 편집 이야기를 불러온다는 주장을 서슴지 않고 한다. 이드-자아-초자아,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등등은 서양문명의 근원까지 파헤쳐 들어가는 개념이다. '벨 에포크' 시대를 살아간 프로이트가 영리하게 당시 사람들이 즐겨 말한 무의식을 자신의 학설에 갖고 왔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더 발전시킨 이드와 초자아 개념을 생각해 낸 것은 틀림없는 프로이트의 능력이고 창조이다. 또한 개인적으로 프로이트가 당시 여성의 내면을 매우 밀도 있게 연구한 것만 봐도 여성의 무의식 내지 자아와 초자아를 끄집어 냄으로써 근대를 넘어 현대의 여성관을 성립시켰을 것이다. 그런 서양의 문화는 현대의 아시아에까지 미쳐서 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훨씬 나아졌고, 많은 분야에서 여성이 활약하는 데 프로이트의 학설이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편집 가능한 개념은 이 책 '07 편집 가능성이 있어야 좋은 지식이다'와 이어진다.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을 공부한 정신과 의사, 프로이트의 저서 '꿈의 이론'을 읽은 작가, 프로이트 이론이 바탕이 된 영화를 본 관객에게도 새로운 상상력을 부여한다. 정신과 의사는 환자와 상담을 통해 환자의 이드-자아-초자아를 그려보며 이드에 있는 무의식을 꺼내려고 할 테고, '꿈의 이론'을 흥미롭게 읽은 작가는 자신의 주인공이 어떠한 성장기를 거쳤는지 매우 드라마틱하게 그려낼 테고, 영화를 본 관객은 그 이상한 행동과 말을 하는 캐릭터를 통해 알게 모르게 카타르시스를 느낄지도 모른다. 새로운 스토리를 만들 때 어딘가 닮아있지만 인간의 욕망과 그늘을 해부하는 정신분석학은 여전히 예술활동에 영감을 불어넣어준다.



 천재 모차르트에 대해서 그 시대상이 반영한 도제와 예술가의 과도기라는 편집이 천재를 탄생시켰다고 말한다. 당시 즉흥연주가 가능한 음악가는 수두룩했는데, 모차르트의 능력이 그 정도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모차르트의 아버지 레오폴트는 모차르트에게 당대 최고의 가정교사-이 부분이 참 중요하지 않을까  바로크에서, 로코코를 거쳐 클래식 시대를 이어가는 시대-를 붙여주면서 모차르트가 계속 최고의 수준을 끌어올리도록 물리적인 에너지를 쏟았고, 모차르트 역시 그에 부응하여 아버지의 사랑과 인정을 받으려고 노력을 했다는 것이다. 천재가 되는 요인에 시대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설명인데 분명 일리가 있는 말이다.


 편집숍,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수태고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이 갖고 있는 편집 가능한 개념,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를 편집 가능하게 하는 시대상, 모두 창조는 편집이다를 품고 있다. 하지만 역시 모든 창조에는 일단 빨간 줄을 긋고 봐야 한다. 편집이 갖고 있는 에너지와 창조성을 무시한다는 게 아니라 주체가 되는 창작자가 하얀 캔버스에 빨간 줄을 일단 긋고 봐야지 작품이 시작되고 완성된다는 것이다.



  책의 마지막에 김정운 교수는 자신의 서재가 편집된 공간이라고 한다. 책장 곳곳에 서로 연관된 메타 지식으로 책들이 집합-편집-되어 있고 그 책들을 보기만 해도 자신의 두뇌가 상상과 구상으로 펼쳐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그런 메타 지식을 독서를 통해 서재에 시각화한 것도 김정운 교수 자신이다. 그렇게 모아놓은 책들은 그 순간부터 서재를 창조한 것이나 다름없다.-요즘 서재는 앱 안에서도 얼마든지 편집 가능하다- 마치 닭과 달걀을 두고 무엇이 먼저인지 따져보는 것처럼, 창조와 편집의 순위는 동시다발적인 것도 같다. 이 책을 두 개의 리뷰로 남기기에는 뭔가 부족한 것 같다. 메타 지식이라는 것처럼, 이 책의 제목과 책 안의 콘텐츠는 포함된 것도 같고 포함시키는 것도 같다. 창조를 하는 과정에 편집이 있다는 것일까. 편집을 함으로써 진정한 창조가 가능하다는 걸까. 말장난 같기도 한 결론이지만, 한 번 펼쳐보면 책의 처음과 책의 끝이 에디톨로지라는 제목 아래에서 순환하는 것이다. 아마 저자 김정운 교수의 머릿속 편집숍(=서재)이 글을 통해 형상화되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리뷰를 마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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