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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티 구구 Oct 25. 2024

힐데가르트

마지막 소설입니다.

 별들이 부서지며 환한 빛을 뿜어낸다. 별이 부서지며 조각이 되어버렸지만 빛은 더 멀리까지 빛났고 그래서 별이 더 커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어떤 빛은 푸르스름했고 어떤 빛은 붉은빛과 푸른빛이 섞이며 검은빛으로 변했다. 별은 각각 다르게 빛나보였지만 서로를 비춰주었기 때문인지 따스한 톤이 되었다.

*


 


 힐데가르트는 중세시대 수녀이다. 그녀는 나중에 수녀가 머물 수 있는 수녀원을 처음으로 지은, 오늘날로 말하자면 페미니스트 수녀라고 해도 모자람이 없다. 그녀는 또한 신비롭게도 여러 가지 학문에 소질이 많았는데, 천문학, 식물학, 음악 등등에도 뛰어난 재능이 있었다. 그녀는 음악에서 성가곡을 많이 남겼고, 참이 바로 촉을 곤두세운 음악이기도 하다. 수도사와 수녀는 세속의 상징일 수 있는 보석에 관심이 많았고 욕심도 많았다. 아마도 자연에서 찾은 영롱하게 빛나는 보석의 색깔 때문일 것이다. 순례자들은 산과 들에서 꽃과 새를 통해 빛깔의 신비를 보았겠지만, 어둡고 칙칙한 수도원과 수녀원에서는 하느님이 보여주신 약속의 상징인 무지개를 보석에서 보았음이 틀림없다. 절대 지지 않을 꽃과 같은 보석들을 통해 아름다움을 만끽했을 것이다. 참은 시각을 통해 세상을 인식했다. 소리를 통해 이해했고, 다른 감각들은 그 두 가지 감각 아래에서 조용했다. 하지만 마치 몸속 장기처럼 피가 흐르고 헐떡거리는 감각은 바로 마음이고 느낌이었다. 그건 총체적인 것이었다. 감각들이 각자의 역할을 하고 나면 심장의 두근거림처럼 마음에 새겨졌다.


 


 참에게 숨 쉬며 살아있는 시간들은 그녀 안에 축적되어서 어떤 부분이 지질 구조처럼 겹을 이루었는데 그 부분은 단단하고 동시에 탄력을 갖추어갔다. 단단함은 반복되는 시간과 그 속에서 이루어지는 일상 덕분이었고, 탄력은 나비를 그리며 색깔을 조합하는 표현 덕분이었다. 어쩌면 참은 따스한 감정을 느껴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온기는 다른 아이들의 것이었다. 그녀의 오감이 그래서 더 촉을 곤두세우고 튼튼해졌다. 그녀는 조용했고 넘치는 요구와 감정은 말할 줄 몰랐다. 다만 질문을 해서 알고 싶었다. 그렇게 인식과 이해를 하는 방식은 타인과 거리감을 갖게 했다. 참은 따스한 오감이 어두운 베일에 싸여서 가까이하기 어려운 사람이 되었다. 그녀가 사람과 관계를 맺는 것은 절대 대화가 아니었다. 수다를 나누는 건 그녀의 방식이 아니었다. 그녀는 느낌표보다 물음표에 가까웠고 누군가가 느낌표로 말을 걸면, 그녀는 저도 모르게 마침표가 되었다. 물론 그전에 그녀는 물음표를 내비쳤지만 말이다. 이건 그녀가 사람이되 어떤 무생물의 존재로 현현되는 인간이 되고 만 것일지도 모른다. 어떤 창작자라면 그녀를 유심히 관찰하고 작품 속 캐릭터로 영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일상은, 지루하기 짝이 없는 일상은 그녀를 비껴가고 있었다. 참은 말 그대로 매력이지만 소수의 눈에만 빛나 보였다. 그 점을 참은 점차 알아갔다. 그녀가 왜 혼자서 무얼 하는지. 그건 작품이 되려는 그녀의 본능이었다. 살아 숨 쉬는 무생물 말이다.


 


 어느 날 지인은 자신이 쓴 일기를 읽고 생각을 했을 때, ‘참’이라는 이름을 자신에게 선물로 주었다. 우연히 영어사전을 뒤적이다가 CHARM이라는 단어를 보고, 뜻이 ‘매력 있는’이라는 걸 알고 나서였다. 참이 일하는 곳에서는 클래식 음악만 나왔다. 어두운 갈색톤으로 인테리어가 된 공간 안에서 클래식 음악은 공기 밀도를 높여주었다. 탁자도 의자도 고동색 톤에 맞춰서 어두웠다. 실내조명은 백열등으로 어둑어둑한 공간을 은은하게 비춰주었다. 바닥도 나무로 깔려 있어서 구두를 신은 손님들이 들어오면 뚜벅뚜벅 소리가 울렸다. 음악소리와 조명 불빛과 전체 분위기 빛깔이 하나로 섞여서 그곳에 들어온 사람들은 분위기에 맞춰 목소리가 낮아졌다. 문을 열기 전에 깔깔대던 손님들도 문을 열어 공간에 들어온 순간 어떤 무거운 공기가 그들에게 스며들어 ‘흡’하고 숨을 들이마시고는 소리를 죽이는 것이다. 오후 늦게 오픈을 하는 사장은 오전에 참을 불렀다. 창문 너머로 싱그러운 나무들이 있고, 나무 위에는 새들이 지저귀고 있었다. 오전에는 온전히 사장이 시간을 쓰는 공간이라고 했다. 사장은 나이가 50대로 보이는 중년 여성이었다. 화장을 했다면 10년은 더 젊어 보일 것 같았지만, 얼굴에는 주근깨와 기미가 있고 주름이 조금씩 쳐져 있었다. 참은 이력서를 썼는데 컴퓨터가 없어서 이력서 용지에 손글씨로 작성했고, 자기소개서를 두 장 썼다. 정확히 한 장을 쓰고 남은 한 장은 나비 그림을 그렸다. 참은 자신이 일하는 시간 외에는 나비를 그린다. 사장은 나비를 보더니, “색깔을 잘 쓰네.”라고 말하며 사뭇 진지하게 그 그림을 보았다. 참은 그곳 음악에 익숙해지는데 별로 힘들지 않았다. 그냥 음악에 몸을 맡기면 되는 것이었다. 꼭 파도 소리를 듣는 것처럼. 사장은 주로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음반을 틀고는 했는데, 참은 관악기인 오보에, 클라리넷, 호른 음반을 틀었고, 더 나아가 성악곡도 종종 틀었다. 음반은 다양했다. 참이 오자, 사장은 그 넉넉한 음반들이 균형 있게 감상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 참은 그중에 힐데가르트의 음반을 좋아했다. 음반의 겉표지를 보면 새 형상을 한 얼굴이 그려져 있었다. 그녀는 이 음반에서 종소리를 듣기 좋아했다. 그 소리를 듣고 있으면, 그녀가 어릴 적 성당 근처에 살며 일요일 아침에 들었던 종소리가 떠올랐다. 그녀는 그 종소리를 들으면 낮잠이 잘 오고는 했다. 창밖에 해가 환한데, 그녀는 종소리에 맞춰서 눈을 깜빡이다가 이불 위에 엎드려 잤다. 그 시절에는 부모님이 아직 함께 살고 있었다.


 


 “지인아 점심 먹어.”


아침 종소리에 맞추어 잠이 들었던 지인은 엄마가 부르는 소리에 잠을 깼다. 언니와 지인, 그리고 엄마가 함께 점심을 먹었다. 어린 지인은 언니와 엄마가 말없이 밥을 떠먹을 때 꼭 아빠는 어디 갔어라고 물었다. 아빠는 밖에 나가고 없었다. 아빠는 일하는 날이 대중없었다. 아빠는 막노동을 했는데, 몸을 다친 이후로는 몸값이 떨어져서 일하는 일당도 적었고, 일하는 요일도 스스로 선택할 수 없었다. 지인은 엄마도 언니도 그 물음에 대답이 없다는 걸 잘 알았지만 그건 맛있게 먹겠습니다라고 하는 것처럼 항상 말하는 인사치레와 같았다. 엄마도 언니도 조용했지만 지인은 그보다 더 고요하게 음식을 삼켰다. 들리는 소리는 젓가락과 숟가락이 이에 부딪히는 소리뿐이었다. 지인은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깊게 잠수한 사람처럼 몸이 무겁게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엄마도 언니도 마찬가지로 자맥질하는 해녀처럼 숨을 멈춘 것 같이 조용했지만, 그 무게만큼은 어린 지인보다 덜했다. 지인이 언제부터 그랬는지 기억할 수 없지만, 어느 날 밥상머리에서 울음을 참고 눈물만 흘린 후로는 식사 시간은 그처럼 조용했다. 아빠가 있었다면 텔레비전을 틀어놓고 먹었을 것이지만, 아빠가 없는 밥상에서는 셋 다 식사 시간에 고요했다.  아빠는 그래서 계속 그 일을 했던 걸까. 엄마는 뜯어말렸지만, 아빠가 마음 편히 일할 곳은 그곳 밖에 없음을 엄마도 잘 알았다. 그때에는 그래도 아빠가 벌어오는 돈으로 살고 있었지만, 지인이 중학생이 되었을 때 아빠는 더 이상 일하기가 힘들어졌고, 술을 마시고 집에서 행패를 부리기 일쑤였다. 엄마와 아빠가 말을 섞지 않고, 집 안이 냉랭해져 갈수록 언니와 지인은 밥을 굶기 시작했다.


 


 지인은 상 위에 계란 프라이가 있으면 마음이 따뜻해졌다. 동그란 노른자와 매끄러운 흰자가 있는 것을 보면 다른 반찬들보다 두 배는 더 힘을 주는 것 같았다. 귀여운 병아리가 지인 뱃속으로 들어오는 기분을 상상하면 지인은 로봇 변신 합체처럼 새로 태어나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엄마가 밖에서 시간을 보내는 횟수가 잦았고, 아빠는 술 때문에 인사불성이었다. 지인은 계란 프라이가 점점 상에 올라오지 않게 될 즈음 중학생이 되었다. 지인은 크레파스로 노란 병아리도 그리고 노랗고 하얀 계란 프라이도 그렸다. 그걸 그릴 때마다 뱃속에서 꼬르륵 거리는 허기가 채워지기라도 하듯이 규칙적으로 그렸다. 그림으로 그리는 계란 프라이는 크기가 다양했다. 500원 동전 크기로 그린 계란 프라이를 스티커처럼 가방에 붙이고 학교에 간 날, 급식으로 계란장아찌가 나왔다. 지인은 이건 누군가가 내게 계란 프라이를 선물한 거라고 생각하고 나지막이 읊조렸다. “배고픈 아이들에게 계란 프라이를 보내주세요. “ 지인에게 배고픔은 어딘가에 몰두하게 하는 힘이 되었다.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고, 무언가에 자신을 쏟아붓는 것이다. 배고픔은 어린 지인을 외롭게 했지만 한편으로는 항상 깨어있게 했다. 현실이 가지고 있는 고통에는 배고픔이 있다는 것을 어린 지인은 같은 반 다른 아이들보다 일찍 알게 되었다. 지인은 조용하고 차분하게 학교 생활을 했다. 운동장에서 놀 때도 흥겹게 뛰거나 소리를 지르기보다는 어딘가에 앉아서 햇살을 쬐거나 종이에 그림을 그렸다.


 


 지인은 언니가 집 밖으로 나가기 시작할 때, 혼자서 시간을 보내는 방법을 자꾸 만들었다. 종소리를 듣고 낮잠 자는 시간 35분, 낮잠에서 깨어 방청소 하는 시간 45분, 엄마가 없는 집에서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주로 백과사전이나 여행책으로 사진을 보았다-을 보는 시간 55분,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리는 시간 1시간. 지인은 그 모든 것을 일요일에 했다. 다행히도 낮시간에 아빠는 피곤에 절어서 잠을 잤다. 지인 언니 지영은 화장을 하고 남자친구들과 어울릴 때, 지인은 홀로 시간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수련 생활을 했다. 지영은 지인에게 아르바이트비로 벌은 용돈으로 문구류를 사다 주고는 했다. 지영은 지인이 방청소를 깔끔하게 하고 화장실도 청결하게 해 놓는 것을 알게 된 후로 동생이 자신보다 잘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러자 부모님에게 얻지 못하는 관심, 사랑이 동생을 통해 해소되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오히려 그런 날에 남자친구와 술을 마시고 잤다. 지영은 지인보다 머리가 더 좋았다. 공부를 별로 안 해도 영어를 빼고는 시험점수가 잘 나왔다. 지인은 언니처럼 수학을 잘하지 못했다. 지인은 학교에서 조용하고 다소 모범적인 행동거지를 가졌을 뿐, 지영 언니처럼 집이 못 사는 주제에 공부는 잘하네라는 시기 어린 질투를 일으키지 않았다. 지영은 전산회계 공부를 하는 고등학교를 나와서 졸업과 동시에 경리로 취업을 했고, 남자 친구와는 헤어졌다. 지영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집을 나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동생에게는 비밀로 하고 말이다.


 


 지인은 언니 졸업식날 카드 한 장을 받았다. 10만 원어치 도서상품권과 함께, 언니는 동생에게 마지막 인사를 남겼다. 아주 짧은 글이었다. ‘너 그림 좋아.‘ 지인은 그 후 다시는 언니를 보지 못했다. 아무도 언니 졸업식에 꽃다발을 주지 못했다. 지인은 방 안에서 그 카드를 보고 나비 그림을 한 장 그렸다. 크레파스로 그린 마지막 그림이었다. 언니가 이 나비처럼 훌훌 날아가기를 소망했다. 지인은 도서상품권으로 색연필 세트를 샀다. 그 후로 계속 색연필로 나비를 그렸다. 나비는 항상 한 마리씩 종이에서 날았다. 사람들이 조금씩 닮은 부분이 있듯이 나비도 조금씩 닮았지만 색깔과 무늬는 조금씩 다 달랐다. 지인은 색깔을 쓸 때, 어울리지 않는 색들을 친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태어난 나비는 다들 조금씩 매력 있었다. 최소한 지인 스스로가 그렇게 믿었다. 나비가 종이 위에 존재한 순간 지인은 이 세상에 그 나비 빛깔 같은 사람이 분명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리고는 숨쉬기를 했다. 숨은 나비 날갯짓처럼 너울너울거리며 어떤 파장이 되어서 마치 눈을 감고 종이 위에 존재하는 나비를 지인 머릿속 우주에서 날아다니게 하는 작업이 되었다. 첫 번째 나비에게 “지영이 너야.”라며 지인은 언니를 너라고 불러봤다.


 


 아버지는 지인이 고등학교 2학년이 되었을 때, 급성 간암으로 죽었다. 병원 응급실에 가서 진단을 받고 하루 만에 일어난 일이다. 응급실에 갈 때는 엄마가 아버지를 모시고 갔고, 학교가 끝나고 병실에 도착한 지인은 아버지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안타까웠다. 엄마는 병원비를 구하기 위해 친척들에게 연락을 했지만 별로 얻어낸 것은 없었다. 오히려 병원비는 아버지가 가족들 모르게 들어놓은 보험료에서 나왔다. 보험료는 3년 동안 중단이 되어 있었지만 하루 병원 입원비와 진료비는 되었다. 작은 위로금도 나왔다. 엄마는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살던 집을 나와서 지인이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가게 옆 방에서 혼자 지냈고, 지인은 고등학교 기숙사를 이용하게 되었다. 엄마도 오랫동안 힘든 일을 하고 쉬지를 못해서 몸이 많이 쇠약해져 있었다. 지인은 어서 빨리 졸업해서 성인이 되고 싶었다. 고등학교 졸업식날 엄마와 찍은 마지막 사진으로 지인은 혼자가 되었다. 엄마마저 지인을 떠난 것이다. 엄마는 지인에게 고향으로 내려간다는 짧은 편지와 함께 50만 원을 남겼다. 엄마 고향은 작은 바닷가 마을이었다. 지인은 졸업식 다음날 아침 깨어나 가게로 가보았지만, 엄마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지인은 50만 원으로는 방 계약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지인은 숙식이 제공되는 곳을 찾아야 했지만, 이제 막 졸업을 했으니 아는 것도 없고 경험도 없었다. 벼룩시장과 교차로를 찾아서 숙식이 제공되는 아르바이트를 찾아보았다. 지인은 닭갈비 집에서 숙식이 제공된다는 것을 알아냈고, 그곳에서 1년 동안 일했다. 지인과 함께 머무는 사람은 중국에서 온 조선족 아가씨였다. 지인은 그 아가씨에게 한국어와 바디랭귀지로 말했고, 조선족 아가씨는 뭐든지 “알겠습니다.”로 대답했다. 고깃집에서 조선족 아가씨와 다람쥐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매일매일 쉴 틈이 없었다. 손님이 오면 주문을 받고 서빙을 하고 고기를 구워줘야 했고 손님이 없는 시간에는 야채를 손질하고 바닥을 닦고 주방도 청결히 청소해야 했다. 두 사람은 잠들기 전까지 떠들었다. 참은 조선족 아가씨에게 한국어로 떠들고, 조선족 아가씨는 연변어로 떠들고, 그러다가 한 명이 흥얼거리면 한 명은 잠들고 그랬다. 일은 고돼도 두 사람의 마음은 변함없는 1년을 지냈다. 연변 아가씨는 일을 고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한국인 손님들이 요구하는 사항을 한 번에 이해하지 못해서 우왕좌왕할 뿐이었는데, 그럴 때마다 지인이 눈치껏 일을 처리해 주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부엌 쪽 일을 주로 연변 아가씨가 했고, 서빙이나 손님맞이는 지인이 했다. 지인이 1년을 일하고 모은 돈은 600만 원이 조금 안되었다. 그 돈으로 작은 방 보증금이 되어서 고깃집을 나왔고, 집을 구하고 나서 오게 된 곳이 이 카페이다.


 


 지인이 방을 구할 때, 종소리를 듣고 집을 찾았다. 종소리는 낙원동에 있는 성당에서 나는 소리였다. 종소리가 들렸던 예전 집을 찾아 걸어와보니 예전 건물은 없어지고 새 주택이 들어와 있었다 지인은 빵집에서 달콤한 카스텔라를 사서 입에 물고 천천히 걸었다. 종소리가 울리기 시작했을 때, 그 자리에 방이 나와있다는 푯말을 보았다. 맨 꼭대기 4층이었고, 방 하나지만 욕실이 있고, 통로 끝에는 세탁기도 있는 곳이었다. 계약을 마치고 주인집 아저씨가 나간 후, 지인은 잠시 벽에 기대어 잠이 들었다. 꿈도 꾸었다. 풀밭이었는데, 바람이 살랑살랑 불고 나비가 날아다니는 꿈이었다. 벽에 기대어 꿈을 꾸며 어렴풋이 종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지인에게 종소리는 해먹에 누운 채로 좌우로 왔다 갔다 움직이는 것처럼 편안했다. 종소리가 따스한 봄 햇볕처럼 지인을 스르르 눈 감게 했다. 깨어났을 때 성당을 빠져나오는 사람들의 말소리가 수런수런 들렸다. 지인은 아주 오랜만에 사람들 사이에서 편안함을 느꼈다. 비록 혼자 방 안에 있지만 밖에서 들려오는 인기척이 지인을 따뜻하게 감싸주었다. 지인은 집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세 든 방에 갖고 있던 물건들을 정리해 보니  물건 중 반이 문구류였다. 색연필 세트와 스케치용 연습장 몇 권이었다.


 


 참은 음반을 들으며 규칙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부드러운 고악기 소리가 다소 발랄하게 템포를 타고 흘러갔다. 참이 일하게 된 곳은 시외에 위치했다. 버스가 도착한 정류장에서 20분을 걸어서 가는 곳이었다. 버스 정류장에서 걸어가면, 복숭아나무를 심은 벌판에 카페가 있다. 싱그러운 나무가 있는 이유는 그래서였다. 카페에서는 커피와 식사를 대접했다. 출근 시간 동안 참은 CD플레이어에 음반을 넣고 들었다. 참이 닭갈비 식당에서 1년 동안 매달 2만 원씩 따로 모아서 산 것은 CD플레이어였다. 버스기사가 틀어놓은 라디오에서 들은 클래식 음악을 듣고 세상에는 이런 소리도 다 있구나 싶었던 그녀였다. 참이 산 음반은 로코코 시대에 귀족들이 식사를 하며 들었다는 관악기 연주 음반이었다.


‘들으며 귀족들은 식사를 느긋하게 했겠지.’


참이 이 음반을 사러 클래식 음반 매장에 갔을 때, 음반에 나온 알파벳을 보고 한참을 헤맸다. 클래식 음반은 모두 알파벳으로 적혀 있지만, 영어로 읽을 수 없는 곡의 제목과 작곡가와 연주자가 나와있었다. Op.(opus)-작품 번호-는 서로 반복되는 숫자들이었다. 분명 작곡가의 이름이 다른데, 작품 번호도 있었고 동양인 연주자인데도 알파벳으로 적혀있었다. 큰 매장을 한 바퀴 돌자 음반 매장 매니저가 다가왔다.


“찾으시는 음반이 있나요?”


“버스 안에서 들었는데 나팔 소리 같았어요. 음… 그걸 들으니까 침착해지고, 마음이 편안해졌어요. 반복된달까, 뭔가 규칙적이기도 했고요.”


“고음악이네요.”


그는 참을 한 코너로 데려갔다. 음반이 천장에서 바닥까지 빼곡하게 채워져 있는데 감히 어떤 음반을 뽑아야 할지 모르겠으면서도 이 많은 음반이 다 음악을 지니고 있다는 것에 놀라웠다. 이건 별천지야라고 참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벅찬 기분과 묘한 기분이 뒤섞여서 잠시 멍하니 서있는데 클래식 음반 매니저가 자리를 피해 줬다. 참은 음반을 한 장씩 무작위로 뽑아봤다. 꽃들 사이에 귀족의 옷을 입고 한쪽 발을 비슴듬히하고 기대어 서있는 남자가 그려져 있는 회화가 나온 음반 앨범을 보며 성당이 생각났다. 성당의 엄숙함과 신비로움이 많은 앨범들 안에 음악으로 담겨있는 것이라고 짐작하며 참은 퍽 아름답다고 정말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참이 카페에 처음 들어섰을 때, 참은 그곳이 클래식 음악과 어울리는 색조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감각적으로 알 수 있었다. 나무로 바닥이 덮여있고 나무와 흙으로 지은 벽, 무거운 고동색 나무 의자들, 그리고 그 공간을 악기 소리로 가득 채운 것은 참에게 세상에서 볼 수 없는 조화를 불러일으켰다. 참이 거리를 걸으며 보는 수많은 건물과 간판과 바닥과 도로는 단단하지만 규칙이 없는 단단함이어서 위험했다. 간판은 다 다르고, 건물은 닮았지만 금방 지어서 허물어질 것처럼 위태롭고, 길바닥과 도로는 자주 엎어서 울퉁불퉁했다. 어떤 곳도 오랜 시간을 견뎌내지 않았기에 지혜와 노련함을 보여주지 못했다. 참이 이런 곳에서 기둥이 되어줄 수 있는 오래된 성당을 찾아 집을 구한 것은 본능에 가까웠다. 땅은 새로운 건물과 길과 도로 때문에 쉬지를 못했고, 사람들은 그래서 사는 곳에 애착이 없었다.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 주택을 지었다가 다시 허무는 사람들, 가게를 옮겨 다니는 사람들. 참은 그런 사람들과 달랐다. 참은 숨 쉬는 땅을 찾아다녔고, 집도 일터도 그런 곳을 찾아냈다. 참에게 언니와 다른 감각이 있다면 오감이 점점 성장한 점이었다. 참은 그림을 그리고, 숨쉬기를 하고, 마음을 단단하게 긴장시켰기 때문에 감각은 섬세하고 강했다.


 


 식당에서 1년을 일해 본 참은 주방 아줌마를 재깍재깍 도와주면서도 웨이트리스 일을 잘 해냈다. 사장은 참이 오면 3시간에서 4시간을 외출을 했다. 사장은 그 시간에 기타를 배우고 필라테스 개인 교습을 받는다고 참에게 말했다. 사장은 참을 이제야 만났다는 것에 한숨을 놓았다. 그동안 일했던 웨이트리스나 웨이터는 젊지만 출근 시간을 자꾸 어기거나, 주방 아주머니와 갈등이 생기거나, 사장이 외출할 수 있게끔 신뢰감을 주지 않았다 그런데 참은 첫인상부터 성실한 느낌이 배어 나왔다. 사장은 참에게 일에 대한 설명보다 사적인 질문을 몇 가지 했다. 가족관계와 참이 앞으로 하고 싶은 일에 대해서였다. 참은 짧게 말했다.


 


“우리 가족은 다 각자 갈 길을 갔어요. 저는 나중에 그림을 그리며 사장님처럼 자영업을 하고 싶어요.”


사장은 참에게 더 이상 질문은 하지 않았다. 사장은 참에게 최소임금과 출퇴근 앞뒤로 1시간씩 더 보태서 아르바이트비를 주겠다고 했다.


”여름에는 손님이 늦게까지 있으니 퇴근이 늦어질 거예요. 그 기간에는 주방 아주머니 차를 이용해서 퇴근을 할 수 있게 얘기를 해 놓겠어요. “


사장은 참에게 적어도 1년 이상 일해 달라는 부탁을 했다. 참은 자신도 오래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참이 이사 온 첫날밤 창문에서 밤하늘을 바라볼 때 유성을 보았다. 꽤 긴 꼬리를 끌고 빗금을 긋는 유성을 바라보며 그 유성도 소리가 난다면 아마 가장 높은 소리일 것이라고 여겼다. 참은 고개를 기울이고 왜 자꾸 비명을 생각하는지 스스로 되물었다. ‘우리 집은 대체로 말이 없었잖아. 아주 조용했다고, 찬 기운을 몰고 올 정도로. 그런데 왜 나는 비명소리를 찾고 싶을까.’ 참은 방 안에서 순간 성당 안으로 공간 이동을 한 것 같았다. 한 번도 성당에 가본 적이 없지만 참이 도서관에서 본 책에 나온 성당 내부 사진을 떠올리며 그 감흥을 연상시켰다. 높은 천장에 울려 퍼지는 소리는 대체 무엇일까? 참은 비명이면 좋을 거 같다고 생각했다. 너무나 아름다운 비명이며 마치 가장 높은 곳으로 쏘아 올린 화살이면 참이 원하는 곳에 다다를 것 같았다. 그러자 참이 카페에서 들은 클래식 곡이 생각났다. ‘오, 예루살렘’ 음반은 부드러운 음성으로 성악가들이 부르는 성가곡이 들어 있다. 높은 천장, 천장을 지탱하는 공룡 뼈처럼 보이는 아치형 기둥, 그 공간을 통과하는 소리가 가장 높은 곡조의 노래가 된다면 그건 분명 비명일 것이다. 참은 자신이 비명소리를 언제 들어봤더라 하고 고민했다. 머리가 조금 지끈거려 생각을 멈추고 참은 방 안을 걸으며 돌기 시작했다.


 


 참이 어릴 때, 방 안에서 낮잠을 자고 일어나면 방 문이 밖에서 걸려있고는 했다. 언니, 엄마라고 불러도 아무 대답은 없었다. 하지만 그런 날에는 참의 심장이 빨리 뛰게 만드는 소리가 들렸다. 참은 그런 소리는 어디에서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참은 갇혀있는 방 안에서 방 밖에 있는 소리를 벗어나려고 귀를 막았지만 오히려 그 소리는 더 낮은 소리로 심장에 박혔다. 참이 그 소리와 비슷한 소리를 알게 된 것은 고등학생이 되어서였다. 남녀 공학에 다니던 참은 청소를 하고 학교 건물 사이로 통과하는 좁은 길에 들어섰다. 앞동에서 뒷동으로 가려면 그 길을 거치면 빨랐다. 그때, 소리가 들렸다. 참은 멈춰서 그 소리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그건 참이 지나가는 좁은 길처럼 좁게 막힌 어떤 틈을 안간힘을 써서 나가려는 무언가를 떠올렸다. 참의 손에 들고 있던 마대걸레에서 물이 흥건히 떨어지고 있었고, 소리는 좁은 곳에 막혀서 계속 멈춘 것 같다가 무언가 억지로 그 틈을 닫은 것처럼 소리는 사라졌다. 참은 좀 더 기다리다가 좁은 길을 지나서 모퉁이를 돌았다. 그날 학교에서 오후 내내 참은 자신이 갇혀있던 방 밖에서 난 소리의 근원이 마치 도축장에서 나는 소리와 다르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창문을 통해 늦은 밤바람이 들어오는 것을 그대로 둔 채 참은 담요 속으로 들어갔다. 참은, ‘비명은 아플 때 내는 소리 내지 위험에 처해졌을 때 내는 소리잖아’라고 생각했다. 참은 그래도 황홀한 비명소리가 있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만약 소리가 아프게 들리지 않다면 기억도 아프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라고 또 생각했다. 창문으로 바람이 들어오며 참이 덮은 담요 위를 거느렸다. 순간 참이 누운 방이 밤하늘 위에 떠다니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켰고 참은 눈물이 났다. 아주 외로운 기분이면서 동시에 자유로웠다. 마치 별들이 쌕쌕거리며 숨 쉬는 소리 같은 환청마저 감지했다. 만약 비명마저 지르지 못한다면 아마 비명은 땅을 뚫고 가장 깊은 우물을 만들 것이다. ‘우물? 우물은 물을 긷는 곳이고 맑은 물이 땅에서 우러나오는 거잖아. 그렇다면 그 또한 황홀한 침묵일까. 아마, 아마, 가장 높은 비명이든, 가장 낮은 비명이든 둘 다 소리가 숨어있을 것 같아. 그 소리를 듣는다면 이 땅에서 낸 어떠한 소리든지 사람들은 다 들어야 할 테니. 내가 아프리카에서부터 소리를 듣는 것은 아니잖아. 지구 저쪽 어딘가에서 나는 소리를 듣는다면 그건 지옥일까.’


 


 참은 생각 끝에 잠이 달아났다. 방 불을 켜고 유일하게 갖고 있는 책을 펼쳤다. 제목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이야기>라는 책인데, 아동책이었다. 그 책을 갖게 된 계기는 이렇다. 참은 어릴 때 처음으로 서점에 갔다. 누구와 갔는지 기억이 정확하지 않다. 분명 엄마와 언니랑 들어갔는데, 책을 건네준 사람은 아빠로 기억된다. 책장에 수두룩하게 꽂혀 있는 책들 중에 무엇을 고를까 한참 찾다가 ‘가장  무서운’이라는 제목을 본 순간 참은 눈을 크게 뜨고 책을 가리켰다. 아동책이라서 무서운 이야기는 지금의 참에게 유치하게 읽히지만, 그 내용 중에 하나는 기억에 남았다. 그 이야기는 너무 슬퍼서 한참을 울던 한 소녀가 목소리를 잃는다는 내용이었다. 소녀는 어떤 이유로 슬퍼졌는지 기억을 못 하고 해가 뜨고, 해가 질 때까지 거리를 걸으며 계속 운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모두 그 소녀의 빨개진 눈동자를 피한다. 소녀는 해가 져서야 울음을 그치는데, 그제야 소녀는 자신이 길을 잃었다는 것을 알고 지나가는 사람에게 길을 묻는데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소녀는 어두컴컴한 길을 걸으며 슬픔을 지나 공포를 느끼며 이야기가 끝난다. 참은 그 이야기를 읽고 슬퍼하면 안 되겠구나 하고 어린 자신을 다독이고는 했다. 그 어둠을 뚫고 소녀가 해가 뜰 때까지 어떻게 됐을까 상상하기 무서웠다. 참은 슬퍼하는 것보다 화를 내고 소리를 지르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몰라라고 어렴풋이 추측해 보았다. 욕을 하고, 싸우고, 무언가를 부수는 행위가 오히려 말을 잃고 슬퍼하는 사람보다 덜 괴로울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을 하자 아버지가 떠올랐다. 아버지는 술을 마시지 않으면 도대체 묵묵부답이었다. 어느 날 엄마가 찢어지는 목소리로 침묵을 일관하는 아버지에게 화를 내던 일이 떠올랐다. 언니는 집에 없고, 지인 혼자 방 안에서 낮잠을 자다가 깼을 때였다. 그날 이후부터 일 것이다. 아버지는 술을 매일 마시기 시작했고, 엄마는 바깥일을 나가기 시작했다. 냉랭하고 조용한 집 안은 그렇게 해서 더욱더 무겁게 가라앉았다. 기억을 되짚던 참은 눈을 감았다.


 


 쉭쉭쉭 밤하늘에서 꼬리를 빛내며 별들이 떨어지는 것 같다고 참은 생각 한다. 그래서 바람이 분다고 생각한다. 별이 빛나며 계속 부딪히고 조각이 나고 조각들은 더 환하게 빛나고 한 가지로 덮인 우주를, 밤하늘을 여러 가지 빛깔로 빛내는 것이다. ‘매우 차가운 기운이 밤하늘을 덮었다면, 그래 얼음이야. 얼음같이 차가운 별, 그리고 깨진 별들은 바로 그 순간 서로를 조금씩 녹이기 위해 빛을 뿜어내는 거지. 차가운 얼음과 뜨거운 빛은 동시에 밤하늘에서 서로를 녹이고 비추면서 별빛이 되는 거야.’ 별빛 속에 호흡이 있다고 참은 마음대로 생각했다. 별들은 멀리 떨어져 있기에 서로를 만나기 위해 매우 빠르게 떨고 부딪히면서 반짝이는 것이다. 밤하늘은 어디가 더 어두운 지 알 수 없게 까맣다. 별들은 서로를 보지 못하기 때문에 스스로를 태운다. 별들이 스스로 타지 않으면 빛나지 않는다. ‘사람들은 스스로 살아가고 있을까. 누구나 곁에 누군가를 필요로 하고,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신호를 보내고 있지 않을까.’ 참도 그렇다. 일을 하면서, 그림을 그리며, 걸으며, 식사를 하며 혼자서 하고 있지만 눈앞에 있는 허공에 나를 바라보는 누군가가 있다고 종종 떠올렸다. 그것이 거짓이라면 참 자신이 누군가를 바라보고 있다고 믿었다. ‘나는 그 투명인간을 언젠가 얼음에서 녹여서 빛을 내뿜게 하겠어. 긴 꼬리를 가진 유성처럼 내게 빛을 그리며 나타나게 할 거야.’ 참은 그러고 보니 함께 살았던 가족들은 모두 어두운 빛이었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빛이 섞여서 모두 검은색으로 변해 버린 것이다. 참마저도 검은빛으로 휩싸여서 함께 있으면 냉랭하고 조용했다. 참은 일어나서 창문을 닫았다. 어둠이 방 안을 감싸자 참은 생각 했다. 어둠도 때로는 차갑고 고요한 평화일지도 모른다고. 가장 환한 빛을 내기 위해 충전을 하는 시간. 단단한 얼음으로 존재하다가 누군가를 만나 부딪혀 깨지고 그제야 빛을 내기 위해서 말이다.


 


 한밤중에 잠이 든 참은 다음 날 일찍 일어났다. 참은 계란 프라이와 고추장으로 비빈 밥을 먹고 집을 나섰다. 평소 같으면 출근 시간에 맞춰서 나왔겠지만, 오늘은 그전에 어디에 들리려고 한다. 참은 버스를 타고 갈까 하다가 꽃을 사서 택시를 탔다. 참은 아버지를 만나러 몇 년 만에 가는 것이다. 엄마는 아빠가 봉안당에 모셔지게 하려고 함께 살던 집을 나올 때 돈을 많이 썼다. 참에게 50만 원을 주고, 엄마 역시 그 정도밖에는 돈을 남기지 못했을 것이다. 봉안당은 환하고 따뜻한 조명이 켜져 있었다. 아버지 사진에는 우리 가족이 젊었을 때 갔던 소풍날이 찍혀 있었다. 언니와 참은 사진 속에서 만화 주인공 포즈를 취하고 있었고, 아빠와 엄마 두 분은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단지는 나무로 짜인 수납틀에 잘 모셔져 있었다. 지인은 흰색과 분홍색 꽃을 골라서 단지 옆에 두었다. 사진 속 아빠 얼굴은 이제 보니 언니의 마지막 얼굴과 비슷했다. 언니가 아빠를 많이 닮았구나. 언니 얼굴이 떠오르자 그제야 눈물이 흘렀다. 언니와 아빠는 말을 나누면 점점 언성이 높아지기에 서로를 피했다. 언니는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친구들과 어울렸고, 주말에 아빠가 집에서 쉴 때는 언니는 늦은 시간에 들어왔다. 그 시절 참은 아빠보다 언니가 이상했다.


 


 엄마가 바깥일을 하러 간 시간에 언니가 집에 있으면, 아빠는 언니에게 말을 붙였다. 잔소리와 짜증이 섞인 명령어가 대부분이지만, 아빠는 언니에게 관심을 쏟고 걱정을 하는 거였다. 참에게는 그렇게 여겨졌다. 하지만 언니는 그런 말을 들으면 엄마보다 더 냉정하게 말했다. 어린 참은 언니가 미웠다. 아빠는 힘들게 일하고 들어와서 언니에게 말을 붙인 건데 언니는 그런 아빠의 마음을 헤아려주지 않았다. 함께 집에 있던 참은 두 사람에게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두 사람이 뿜어내는 기운에 참은 얼어붙어서 긴장을 하고 씩씩대는 두 사람 기분을 살피며 마음을 꽁꽁 묶었다. 그래야 두 사람이 더 이상 부딪히지 않기라도 하듯이 참은 힘을 쏟았다. 참은 그러는 동안 속을 알 수 없게 깊어졌다. 그건 이상한 일이었다. 참은 방어와 공격이 없는 무력한 의자처럼 방치되었다. 참이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을 때, 나비는 너울너울 참 마음속에 들어와서 고요한 수면 같은 곳에서 영혼을 쉬고 갔다. 참이 쉬는 동안 다른 영혼들도 쉬러 왔다. 어디에서 온 영혼인지 알 길이 없지만, 참은 그 시절부터 마음속에 초대한 영혼들을 어느 순간부터 그리기 시작했다. 색은 참에게 그런 의미였다. 아무런 조화도 없는 세상 속 색깔을 눈으로 본 참은 고요함에서 길어낸 집중력으로 종이에 무늬와 색을 입혔다. 그리고 멍하게 앉아서  무엇을 그렸는지 모르는 무늬와 색을 바라봤다. 처음에는 그저 낙서였던 선들이 나비가 된 것은 언니가 집을 나가면서부터였다. 언니와 다른 참은 언니가 문을 열기 전에 자신을 한 번 쳐다보고 손을 흔들었다고 기억했다. 그리고 언니의 발은 그대로 붕 떠서 문 밖으로 날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건 참이 꾼 꿈이었지만, 언니가 나비처럼 자유롭게 날아갔다고 생각하니 슬프기보다 부러웠다.


 


 참은 일찍 카페로 갔다. 마대걸레에 쌀뜨물을 적셔서 천천히 바닥을 닦았다. 종소리가 들리고 고음의 성가곡이 공간을 가득 채웠다. 참은 혼잣말을 하며 쉬지 않고 닦았다. 참은 천천히 그리고 일정한 박자로 마대걸레를 문지르면서 자신의 몸속에서 별들이 부딪혀서 빛을 내는 것처럼 서서히 뜨거운 열기가 생겼다. 참의 호흡이 길어지고 무거워지며 마대걸레와 나무바닥은 자석처럼 붙어서 움직이고 참은 문워크를 하는 것처럼 끊임없었다. 공간은 소리를 가득 담아서 참의 귀를 먹먹하게 했고 참은 서서히 타오르는 별처럼 열기를 더해갔다. 참이 공간에 스며든 것인지, 공간이 참의 내부에서 나온 것인지 가늠이 안 되었다. 참은 움직이며 동시에 호흡을 했다. 그러자 주변의 소리가 참의 내부로 흡수되었다. 참의 내부는 부르르 떨렸지만 그 떨림에는 소리가 없었고 열기만 더해졌다. 참은 마대걸레를 제자리에 놓고 창문을 열었다. 창문 밖에 초록빛깔 나무들이 손을 흔들었다. 참 얼굴에 눈물인지 땀방울인지 알 수 없는 것이 투명한 얼음 조각처럼 반짝였다. 참이 비로소 입을 열었을 때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 자신의 목소리를 깨달았다. 방 밖에서 나는 소리처럼, 그날 건물과 건물 사이에 좁은 길 앞에서 멈춰 섰던 것처럼 참은 몸속 깊은 곳에서 꺼내는 소리를 떠올렸다.


 


 참이 조용하고 어두운 성당에 들어섰을 때 다시 그 소리를 불러오고 싶었다. 저기 성당 벽에 걸린 십자가 상에서 그 소리는 참이 원하는 비명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싶었다. 그건 참에게는 깊은 우물이고 높은 곳으로 쏜 화살이었다. 그건 한 사람의 목소리에서 나오는 소리가 아니었다. 그건 누군가가 누군가에게 전하는 고통이 다시 누군가에게 전달되어서 비로소 숨통을 트며 나오는 울음이고 비명이었다. 참은 언니처럼 그걸 끊어버릴 수가 없었다. 참은 어렸고, 어렸기에 그대로 흡수되었다. 소리라고 할 수 없는 괴성이라도 어린 참에게는 마음에 새겨지는 일이었다. 고통은 그렇게 참을 단련시켜서 그녀의 귀는 열렸고, 그녀의 눈은 보았고, 그녀는 판단하지 않았다. 판단하기 전에 물었고, 마침표가 되기 전에 느꼈다. 참은 우리 가족이 뿔뿔이 흩어진 것은 참이 모두 소리를 흡수해서일지도 모른다고 막연히 생각했다.


 


 ‘자매님, 성당에는 처음이시죠?’


나이가 지긋이 든 수녀가 참 어깨를 건드렸다. 참은 방금 그 소리가 들렸는지 마음에 새겨진 건지 망설이고 있었다. 수녀님은 십자가가 내려오는 긴 목걸이를 목에 두르고 있었다. 참은 수녀님을 다시 보았다. 수녀님의 입술이 움직이는 게 보였다. 참은 오금이 오그라드는 것 같았다. 오줌이라도 쌀 것처럼 몸이 움츠러들었다. 수녀의 입술은 다시 움직였다. 그리고 수녀가 십자가를 향해 손을 뻗었을 때, 참은 들었다. 자신이 낼 수 있는 가장 높은 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있다는 것을. 어쩌면 비명일지도 모르고, 어쩌면 고함일지도 모르는 그런 소리를 내고 있다는 것을. 하지만 이상하게도 수녀님은 환하게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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