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의 방법
위로란 것이 대단히 큰 의미같기도 혹은 아주 사소한 것처럼도 느껴지는 묘한 단어같다.
보면 어린아이들은 위로를 바라고 다른 이를 위로하는게 어렵지 않은 것 같다.
자기 감정을 인지하고 표현하는 것이 어렵지 않기때문이겠지.
누군가가 나의 이 지금 슬픈 마음, 섭섭한 마음을 알아줄거라는 확신이 있기때문에대놓고 나의 감정을 드러내고 위로받음이 자연스러운 게 아닐까?
그리고 그렇기때문에 다른 위로가 필요한 누군가에게 또 따뜻하고 편하게 위로를 건넬 수도 있고.
어른이 된 나는 이제는 나의 위로가 필요한 감정을 인지하는 것 조차 때때로 시간이 걸린다.
기분좋음이나 나쁨이나 서운함이나 찝찝함이나 모든 감정들을 있는 그래도 느끼면서도 동시에 이성적인 것들이 관여된다.
예를 들면 기분 좋거나 나쁜 일이 있더라도 주변의 환경을 봐서 분위기에 맞지않다면 표현을 적게해야하고,
사람으로 인한 감정이라면 관계도 생각해야하기 때문에
감정 인지까지도 시간이 걸리지만 표현하는 건 더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다보니 위로가 필요한 순간이 아주 일반적인 일상에도 소소하게 많은 나는
그래도 한국에 있는 시간엔 가족들도 친구들도 아주 가까운 감정적/물리적 거리에 있었기에 누구보다 나의 위로가 필요한 순간을 알아채고 위로받는 일이 자연스러웠다.
그러나 미국에 온 이후부터는 위로받을 일이 덜해진반면에 (관계의 수도 줄었거니와 사람간의 거리가 비교적 멀어서 관계에서 오는 문제가 줄어들었다) 위로받은 일이 생겼을때 그걸 해결할 방법을 못 찾았다.
처음엔 친구나 주변사람에게 의지하려했던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이 충분한 내적 위로가 되지않았고, 그때부터는 내가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는 방법이 뭘까를 고민했던 것 같다.
바로 정답을 찾았던 건 아니고,
나는 그때부터 스스로랑의 대화를 글을 통해 나눠보았던 것같다.
우선은 내 감정이 어떤지부터 파악해보기를 했다.
유난히 나란 사람이 그런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내가 느끼는 그 감정들을 단어로 정리하고 내뱉는 게 쉽지않았다. 아주 기본적으로는 짜증이났다라던지 오늘 내가 참 뿌듯했다라던지 창피했다라던지 이런 말들을 적어내는 게 지금은 쉽지만 그때는 그렇지 못했다.
오히려 아주 복잡한 생각들로 감정을 풀어내려 했었는데,
결국엔 내 안에 집중하는 게 아니라 밖에서 오는 것들을 생각하느라 정작 내 감정이 어떤지를 몰랐던 게 아닌가 싶다.
그래서 그렇게 풀어내기 시작하니, 그 다음엔 내 위로가 필요한 감정들을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그때부턴 위로는 쉬운 게 되었다.
고단하거나 슬프다면 그대로를 표현할 수 있게 두었다. 공감되거나 슬픈 노래를 들으면서 울기도하고, 친구에게 속상함을 말하기도 하면서.
그런데 내 개인적으로 가장 잘맞는 위로는
날씨가 좋은날엔 밖에 나가서 자연속에서 한 30분 걷고오거나,
운동하러가서 천국의 계단을 한 30분타면서 땀을 뻘뻘 흘리고 나서 진짜 시원한 맥주를 마신다거나,
내 기분을 좋게만드는 게 최고의 위로였던 것 같다.
사람마다 다 각자의 위로방법이 있을거라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은 침대위에서 아주 오랫동안 잠에 드는 것
어떤 사람은 많은 친구들을 만나 이야기를 하는 것
어떤 사람은 몇시간이고 게임하는 것 등등
'내가 위로가 필요한 순간을 아는 것과 그리고 어떻게 위로할지를 아는 것'
이건 살면서 크게 생각해보지 않았더라도, 알고있으면 내 삶을 더 튼튼하게 만들어 줄거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