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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스트이십일 Jun 26. 2021

서원대학교 최태선 교수의 아버지, 최방발 사연

1922년 8월 2일자 매일신보 신문기사에 최방발 사연 알려져

1922년 8월 2일자 매일신보 보도 내용 / 최방발 기사

고단한 삶을 견뎌온 아버지, 최방발의 가르침 전하다

힘겨운 삶에서 교육이라는 희망의 끈을 부여잡은 아버지


[포스트21 뉴스=김민진 기자] 독립이라는 단 하나의 열망을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 독립운동가들의 삶은 칭송받아 마땅하지만 남겨진 가족들의 삶은 그리 윤택하지 않다. 독립운동가 할아버지의 행적을 기리는 활동을 해 온 최태선 교수는 최근, 그의 할아버지가 떠나고 난 뒤 힘겨운 삶 속에서 희망을 찾아다닌 아버지의 행적을 발견했다.


1922년 8월 2일자 매일신보 신문기사에 최방발 사연 알려져 


지난 5월 23일. 서원대학교 휴머니티교양대학의 교수이자 가수활동을 병행하고 있는 최태선 교수는 지인인 박영희 교육학 교수로부터 놀랄만한 소식을 들었다. 1922년 8월 2일자 매일신보 신문기사에서 민병두 순사라는 이가 쓴 글을 발견했는데, 여기에 최 교수의 아버지, 최방발의 이야기가 언급됐다는 것이다. 글의 내용은 당시, 민병두 순사가 최방발 어린이의 교육비를 지원해줬다는 것으로 최방발의 나이 8세 때의 일이 기록된 신문기사였다. 


이미 어려서부터 아버지 최방발로부터 어린 시절의 고단함을 익히 들어 알고 있던 최 교수지만, 그 흔적이 고스란히 기록된 문서를 마주한 것은 처음이었다. 짧은 문장으로 된 기록이었지만, 최 교수는 여기에 남겨진 어린 최방발의 절망과 어려움을 깊이 공감하기에 소식을 듣자마자 눈시울을 적셨다. 

최태선 교수의 아버지 최방발

“단순히 제 아버지여서가 아니라 어린 최방발의 어려운 상황을 생각하면 눈물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할머니는 일찍 돌아가시고, 할아버지는 독립운동을 하러 떠나셨어요. 돌봐주는 이 하나 없는 상황에서 7살, 8살 아이가 오직 공부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한학 학교를 다닌 겁니다. 이보다 슬픈 이야기가 어디 있겠어요.”


독립 운동가 가문의 가르침


최 교수의 할아버지 최무길 애국지사는 황희 정승의 후손인 황반옥과 결혼해 슬하에 자식을 낳았지만, 안중근 의사의 가르침에 깊이 공감해 자식이 채 크기도 전에 만주로 떠나 평생을 독립운동에 매진하셨다. 봉오동 전투를 비롯, 크고 작은 전투에 참전하며 독립을 위해 전 생애를 바친 인물이지만, 남겨진 자식, 최방발 선생의 삶은 힘겹기 그지없었다. 


아버지는 독립운동을 하러 떠나시고, 어머니도 일찍 여의어 온전히 홀로된 최방발 선생. 그는 어린 시절부터 나라가 독립을 하기 위해서는 교육을 받아야 하고 어린 아이들의 사명은 충실한 교육으로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는 것이라는 아버지, 최무길 애국지사와 안중근 의사의 가르침을 충실히 수행했다. 

최태선 교수 할아버지 최무길 애국지사

그래서 8살의 나이에 한학 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던 것. 최 교수는 이번에 발견한 작은 기사 하나로 독립운동가들의 남겨진 가족들이 얼마나 힘겨운 삶을 사는지를 간접적으로 상상해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이후에도 아버지는 어렵게 공부를 계속하셔서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학자의 길을 가셨습니다. 그 와중에 독립운동가의 후손이라는 이유로 강제징용을 당하셔서 3년간 엄청나게 고생을 하기도 했죠. 독립운동가 가족이라는 이유로 이렇게 힘든 생을 사셨지만, 한 번도 할아버지를 원망하거나 미워한 적이 없으세요. 오히려 항상 본받고 기억해야 한다고 이야기하셨었죠.”


아버지의 가르침 계승해 전달하는 최태선 교수의 행보


기사를 발굴해 낸 박영희 교육학 교수는 오래 전부터 국가적 위기상황이 한 가정에 미치는 영향을 살피기 위해 최 교수의 가족을 연구 중이었다. 이런 가운데 발견한 최 교수의 아버지, 최방발의 기록은 교육학 관점에서도 기록할만한 역사적인 사료로 볼 수 있다. 


최 교수 역시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끊임없이 교육을 위해 노력했던 아버지의 흔적을 지켜보며 느끼는 바가 많다고 이야기한다. “일제 강점기라는 엄청나게 힘겨운 시련 속에서 교육을 통해 스스로를 다잡고 이를 사회에 환원하기 위해 노력한 아버지의 생을 다시금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아버지의 길을 제가 그대로 걸어가고 있는 것 같아 뿌듯하기도 했어요.” 

서원대학교 최태선 교수

실제로 최 교수는 서원대학교에서 많은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언제나 학생들 한 명 한 명에게 열과 성을 다하는 그녀의 모습에 야간에서 주간으로 수업시간을 옮기는 학생들도 상당수다.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며 교육에 매진하는 것이 사회에 기여하는 가장 큰 방법이라고 믿는 최태선 교수. 그녀는 고단한 아버지의 삶 속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지혜를 배울 수 있었다고 한다. 


“지금도 코로나로 인해 많은 이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독립운동가의 자식으로 힘겨운 삶을 살아오신 아버지의 고단함과 오늘날의 어려움이 매칭되는 것 같아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교육의 힘을 믿고 꿈과 희망을 가졌던 아버지처럼, 저 역시 우리 학생들에게 제가 아버지의 모습에서 배운 고결한 정신과 열정을 가르치려 노력하겠습니다.” 포스트21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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