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21=최현종 기자] JTBC 금토드라마 ‘부부의 세계’가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마지막회 시청률은 28.4%(닐슨코리아 기준)를 기록하며 독보적인 인기를 과시했다. 뻔한 불륜 소재를 어떻게 풀었기에 놀라운 성적을 기록했을까. ‘부부의 세계’ 히트 요인이 궁금하다.
시청자가 바라는 것은 지지부진한 아침드라마가 아니었다
부부 사이에서 바람과 외도는 죄다. 도덕적으로 하면 안 되는 행동이다. 수많은 드라마가 바람과 외도를 다루고 있지만 ‘부부의 세계’ 만큼 깔끔한 맛이 없다.
우리나라 드라마에서 바람, 외도는 서로의 피 터지는 싸움으로 귀결된다. 아니면 부모님, 형제 또는 자매의 괴롭힘이 반복된다. 음식으로 사람을 괴롭혀, 진지해도 웃음이 터지는 장면도 등장한다.
결혼 전 만난 사람이라는 전제가 깔려도 ‘마음이 없는 결혼’이란 전제가 동일하다고 가정하면, ‘부부의 세계’만큼 투명한 드라마가 없었다. 김희애(지선우 역)-박해준(이태오 역)의 불화에 관여한 가족은 딱 2명이다. 시어머니와 아들 전진서(이준영 역) 뿐이다.
사돈에 팔촌까지 엮이면서 불륜 증거를 잡고 편이 갈려 싸우는 구성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 ‘부부의 세계’가 사랑받았던 대표적인 이유로 꼽고 있다.
시청자는 말초적 신경을 자극하는 부정(不貞) 소재의 드라마가 보고 싶다. 그러나 별별 사람이 다 얽히고 피해 주인공이 계속 지기만 하다가 종영을 앞두고 이기는 ‘일일드라마’ 형식에 질렸다는 뜻이다.
시청자가 원하는 강한 자극은 주변 인물을 둘러싼 긴장감이었다. 채국희(설명숙 역)가 김희해와 박해준 사이에서 시소를 타거나 서이숙(최회장 아내 역)이 보이지 않게 김희애를 지지하는 구성, 윤인조(차도철 아내 역)의 얄미운 짓, 정재성(공지철 역)의 지극히 현실적인 리더 모습이다.
인물 사이의 쫄깃한 관계에 빠지면 공포영화처럼 짜릿함이 느껴진다.
야해도 타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부부의 세계’는 2회를 빼놓거 19금으로 방송된 드라마다. 그야말로 ‘어른들의 드라마’였다. 드라마 초반 김희애-박해준, 한소희(여다경 역)-박해준의 베드신은 시청자들을 홀렸다. 단순히 배우들의 옷을 벗겨 노출하는 베드신이 아니었다.
박해준이 김희애, 한소희를 바라보는 시각이 베드신에 그대로 담겼다. 박해준에게 김희애는 지켜야 하는 가정과도 같았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조금씩 베드신이 전개됐다. 장소도 부부 침실에 한정됐다.
반면 한소희와는 속도감이 있다. 베드신에서 ‘자유로운 영혼’이 표현됐다. 드레스룸에서 박해준은 한소희에게 사과하며 달려드는 장면은 후에 나타나는 베드신을 연상케 한다. 김희애는 박해준과 이혼한 후에 부부침실에서 벗어난 곳에서 베드신을 촬영했다.
이는 박해준이 예전에 한소희에게서 느꼈던 자유로움을 김희애에게서도 느꼈음을 의미한다. 다른 의미로 보면 김희애는 영원히 박해준과 재결합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김희애는 가정과 신념, 자신이 꾸민 세상을 최고의 가치로 여긴다.
그런 김희애는 다른 여자의 남편이 된 박해준을 용납했더라도 두 번 다시 반복하지 않을 것이 뻔하다. 따라서 김희애는 박해준을 완전히 자신의 인생에서 도려내는 계기에 지나지 않았다.
박해준의 폭력, 가정폭력의 심리
박해준은 두 번의 가정폭력으로 시청자들의 뭇매를 맞았다. 가정폭력은 만취한 상태로 하는 폭행, 죽기 직전까지 때리는 폭행, 끝없는 의심에서 나오는 폭행으로 인식한다.
반면 ‘부부의 세계’ 속 폭행은 이성을 잃은 박해준이 중심이다. 김희애가 전진서를 죽였다고 착각하게 만든 상황에서 박해준은 가정폭력을 휘두른다. 친아들을 죽였다고 믿었기에 이성적 판단을 할 수 없었다.
박해준의 두 번째 폭행은 전진서가 제니(한소희가 낳은 딸)를 괴롭혔다는 오해에서 시작됐다. 박해준은 도벽, 학교폭력 사태를 김희애 대신 한소희가 해결한 것이 내심 못마땅하다.
만약 전진서가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다면 김희애는 한소희 앞에서 망신당할 필요가 없었다. 박해준이 김희애를 향한 안타까움이 전진서의 폭행으로 이어졌다.
그동안 드라마에서 비친 가정폭력은 나쁜 사람이 착한 사람을 괴롭히는 것에서 그쳤다. 능력이 없고 가족에게 짜증을 내며 늘 화풀이하는 사람. 일하기 싫어하고 사기를 잘 치는 사람이 가정폭력을 휘두르는 내용이 많았다.
실제로도 많은 가정폭력이 여기에 속한다. 그러나 ‘부부의 세계’의 가정폭력은 박해준에게 기대할 수 있는, 아주 작은 크기의 양심으로 묘사된다.
다만 아쉬운 점은...
‘부부의 세계’에서 끝내 풀리지 않은 점이 있다. 이학주(박인규 역)를 죽인 범인이다. 김희애가 거짓 알리바이로 박해준을 보호했지만 암시적으로 이학주는 박해준이 죽인 것으로 묘사됐다. 엄청난 미스터리가 있는 것처럼 보여주다가 갑자기 결말을 향해 달려가는 전개는 아쉬웠다.
이무생(김윤기 역)이 여전히 김희애의 옆을 맴돈다는 설정도 무리가 있다.
마지막회에서 한 여자만 바라보는 청순남인지, 안타까운 동료애로 남은 것인지 명확하지 않았다. 이무생은 인터뷰를 통해 “인간 이무생이라면 지선우를 2년 동안 기다리지 못했을 것 같다. 고백하고 차였을 것이다”고 말했다.
이는 우리나라가 성공한 여성의 이혼, 자신의 방식대로 가정을 지킨 능력 있는 여성을 바라보는 시각도 담겨 있다. 과거를 청산하고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는 것은 불필요하거나 부도덕한 일이 아니다. 이혼녀도 당당히 사랑을 쟁취할 수 있다.
이무생의 출연 분량을 늘리지 않아도 얼마든지 암시로 남길 수 있는데, 조금의 여지도 보이지 않았다. 김희애의 스토커로 등장한 김종태(하동식 분)은 “안심하는 순간 훅하고 뒤통수를 맞는 것이 인생이다. 산다는 것은 불안의 연속이다. 알고 보면 남의 불행은 잠시 잠깐 자기 위안 삼을 뿐이다”고 말했다.
이 대사는 ‘부부의 세계’가 한 가장의 불륜이 여러 사람과 엉키면서 벌어진 과격한 에피소드를 다룬 드라마를 총정리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사람들과의 관계에 의해 제멋대로 해석되지만 시간이 지난 후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불륜에 의한 남의 불행으로 끝까지 이득을 보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당사자들은 로맨스를 외치는 불륜의 끝자락이 ‘무(無)’라는 점은 안타깝게도 드라마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현실적이지 않은 불륜이라서 더 열광했던 드라마 ‘부부의 세계’의 평론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