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길 28일 차: 갈리시아

산티아고 지방에 오다

by 탱탱볼에세이

드디어 산티아고가 위치한 갈리시아 지방에 왔다. 아스투리아스 지방에서 갈리시아 지방을 직접 걸어서 넘었다. 친절하게 누군가 돌로 갈리시아 지방의 경계를 안내해 뒀더라. 그간 바스크, 칸타브리아, 아스투리아스 다른 지방을 넘어왔지만 이제 진짜 산티아고가 얼마 안 남았다는 생각이 들자 설렜다. 갈리시아 지방 표지석은 다 최근에 설치했는지 엄청 깨끗하고 튼튼해보이더라. 역시 산티아고의 지방이라 그런지 돈이 많은가 싶었다.


비가 오전 내내 와서 힘든 날이었다. 초반에 작은 슈퍼 한 곳에서 커피를 팔았다. 여태까지 마셨던 커피 중에 제일 맛없는 밍밍한 맛이었다. 그래서 커피다운 커피를 찾아 열심히 다음 마을 다음 마을을 찾았는데 전혀 연 곳이 없더라. 막판에 물 두 병도 이미 다 비워서 갈증이 난 상태로 엄청난 언덕을 올라야 했다. 헥헥 대면서 열심히 피터와 레이요를 따라갔다. 덕분에 걸음을 멈추지 않고 한 번에 오를 수 있었다. 정말 큰 고비였다.


오늘은 레이요가 숙소를 예약해 줘서 숙소걱정 없이 잔다. 부엌도 잘 갖춰져 있고 시설이 엄청 깨끗하다. 와이파이도 최근 일주일 간 제일 잘 터진다. 순례자 루틴대로 샤워, 빨래를 마치고 시내로 나왔다.


바로 에스테야 갈리시아 생맥주 한 잔을 주문했다. 시원하게 한 잔 마시니 오늘의 고생한 길이 한 번에 잊힌다. 갈리시아 지방에 와서 에스테야 갈리시아를 마시니까 보람차서 좀 더 맛있는 느낌이랄까. 그래 이 맛이지. 숙소 예약하니까 마음이 편해서 멜리데랑 산티아고 숙소를 예약했다.


오늘은 중간에 아무것도 못 먹어서 정말 배고팠다. 바로 메뉴 델 디아 먹으러 갔다. 호기심에 콜리플라워 감자 지짐을 시켰는데 정말 맛이 없었다. 피터의 수프를 뺐어먹었다. 그래도 항상 돼지고기 구이를 두 번째 접시로 시키는데 기름지지만 에너지를 채워주는 기분이다. 같이 나오는 감자튀김을 피터가 뺐어먹었다.


네덜란드인이 감자튀김을 즐기는 걸 보니 네덜란드 가서 케첩 반 마요네즈 반 감자튀김을 먹고 싶어 졌다. 피터가 땅콩소스 감자튀김이 별미라고 하더라. 기억해 뒀다가 나중에 꼭 먹어야지. 매일 모든 일정이 끝나고 먹는 메뉴 델 디아는 두 개의 요리에 와인과 디저트까지 제공되어 생일 같다. 푸짐한 상차림을 모두 다 먹고 나면 더할 나위 없이 배부르다.


먹으면서 각자 템포는 다르지만 그것이 서로에게 좋은 자극을 준다는 것에 서로 동의했다. 레이요는 중간중간 쉬는데도 금세 우리를 따라잡는다. 피터는 쉬지 않고 느릿느릿 그만의 템포를 유지하며 걷는다. 나는 레이요와 피터 뒤를 따라 그림자를 밟는다. 그러다 레이요가 잠깐 멈추면 나는 열심히 피터 뒤를 따른다. 그럼 레이요가 나를 어느새 따라잡는다. 묵묵히 그렇게 우리는 나아간다.


레이요는 원래 배낭을 메면 허리가 아팠다고 한다. 신기하게 순례길을 걸으면서 한 달이 다 돼 가는데 아픈 적이 없었다고 한다. 아프지 않다는 걸 어제서야 인지했다고. 순례길에서는 참 신기한 일이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레이요는 이번 순례가 처음인데 벌써 그의 다음 순례가 기대된다.


배부른 몸을 이끌고 마트에 갔다. 마트는 작지만 있을 게 다 있었다. 항상 묶음상품이 많아서 사기가 부담된다. 무게가 중요한 순례자는 구매하는 순간 다 짊어져야 할 짐이 되기 때문에 고심한다. 나도 이것저것 둘러보다가 최대한 적게 들고 싶어서 에너지바 하나만 샀다.


숙소로 돌아와 남은 빨래를 마저 했다. 손빨래하는 곳이 따로 있는데 빨랫비누도 비치되어 있더라. 심지어 따뜻한 물이 나와서 만족스러웠다. 따뜻한 물로 손빨래할 때 좀 더 깨끗하게 빨리는 느낌이다. 아무래도 차가운 물보다 따뜻한 물일 때가 더 오래 조물조물하고 싶어 지기 때문이다.


언제 비가 왔냐는 듯 오후엔 해가 쨍쨍했다. 쨍쨍한 햇볕 아래 빨래를 널면 행복하다. 꿉꿉한 빨래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니깐. 매일 손빨래를 하다 보니 최소한으로 빨래거리를 만들고 있다. 내가 손으로 안 빨아도 되게 해주는 세탁기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4유로가 아까워서 전혀 안 쓰지만.


갈리시아는 문어(뿔뽀)가 유명하다. 메뉴델디아에서 문어를 맛볼 수 있을까 했는데 없더라. 조만간 문어를 맛보는 날이 오기를. 내일은 피터의 일흔 살 생일이다. 다 같이 축하해 주기로 했는데 즐거운 생일에 함께 걸을 수 있어 기쁘다.


방이 나눠져서 나만 다른 방이다. 포르투갈 아저씨들이 내 위층 아저씨가 코를 엄청 곤다고 조심하란다. 며칠 동안 코골이가 너무 시끄러워서 잠을 제대로 못 잤다고 한다. 나는 둔감해서 잠에 잘 드는 편이다. 귀마개를 어딘가 챙겼던 거 같은데 안 보인다. 순례길 준비물로 강력한 귀마개를 꼭 챙기시라. 경고를 미리 들은 것은 처음이라 내가 그의 코골이를 버틸 수 있을까 기대된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순례길 27일 차: 만만히 봤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