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데이
혼자 새벽 5시에 산티아고를 향해 출발했다. 앞으로 남은 거리는 20km 남짓. 그간 프리미티보길은 거의 모든 시간을 피터와 레이요와 함께 해왔다. 그래서 굳이 화살표를 보지 않아도 그들이 내겐 화살표였다.
곧 혼자가 되기 때문에 하루라도 혼자가 되는 연습이 필요했다. 아예 이렇게 어두운 밤에는 혼자 처음 걸어봤는데, 정말 암흑이었다. 랜턴 빛이 세서 다행히 내가 가로등이 되어 길을 비췄다.
산티아고 공항 근처쯤 갔을까. 화살표가 안 보여 길을 잃은 순례자 세 명이 반대로 걸어온다. 그때 처음 순례자를 보고서 덕분에 나는 길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해는 7시 반이 되면 밝아지는데 그때까지 헤드랜턴을 계속 켜고 전진했다.
걸음이 느리고 보폭이 짧은 건 알고 있었는데 아무리 가도 10km 밑으로 쉽게 줄지 않더라. 따라갈 화살표는 안 보이고, 따라갈 순례자도 안 보였다. 열심히 플레이리스트 틀어놓고 노래 리듬을 따라갔다.
해가 뜨고 랜턴을 벗어도 될 때쯤, 희망적으로 10km 밑 한 자릿수로 떨어졌다. 오른쪽 어깨가 1시간만 걸으면 지속적으로 아파온다. 짐을 버리면 괜찮을까 싶어서 조금씩 버려왔는데 이젠 버릴 게 없다. 아파도 어쨌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저 멀리 몬테 데 고조가 보인다. 8년 전 프랑스길을 걸었을 때 마지막 밤에 묵었던 추억의 장소다. 여전히 감옥 같은 느낌이지만 그래도 반가웠다. 사람들은 여기저기 포토타임을 가졌는데 나만 숙소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조금만 내려가면 바로 산티아고가 보인다. 산티아고 푯말이 그대로라 마음이 집에 오랜만에 온 것처럼 편해졌다. 성당까지는 4km를 더 걸어야 하는데 이미 산티아고니까 긴장이 풀렸다.
그래서 바로 커피, 오렌지주스, 빵 아침 세트를 먹었다. 빨리 도착하겠다는 욕심을 내려놓으니 다시 힘을 얻었다. 산티아고를 두리번거리며 슬렁슬렁 걸어 들어갔다.
8년 전이지만 저번에 산티아고 갔을 때 3일 이상 지냈다. 그래서 많이 골목골목이 기억날 줄 알았다. 근데 전혀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났다. 모든 것이 새로웠다.
끝내 산티아고 대성당에 다다랐을 때쯤, 뭔가 행복하면서 허무했다. 저번엔 대성당이 보수 중이었는데 완전한 아름다운 성당을 볼 수 있어 뿌듯했다.
어제 친구들이랑 도착한 기쁨을 나누느라 새벽 3시까지 잠을 못 잤다. 그래서 잠결에 쓰고 있다. 매일 가장 먼저 순례자사무실에 도착한 10명의 순례자에게 점심식사가 있다. 그걸 친구들에게 먹고 싶다고 여러 번 홍보했다. 다들 관심이 없더라.
500년 넘은 호텔에서 순례자들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전통이 계속 이어져오고 있는 것이다. 저번에 아침식사를 누렸는데 소박하지만 순례자라 무료로 대접을 받는 것 그 자체와 이 문화가 유지되어오고 있는 것이 신성하게 느껴졌다.
다행히 5등으로 점심 무료식사권을 받았다. 아침은 피터가 묵시아로 오늘 떠나기 전 샌드위치에 커피를 든든하게 사줬다. 저녁은 레이요가 오늘이 마지막 밤이라 문어에 맥주를 사줬다.
레이요가 점심식사 하는 데 함께해 줬다. 레이요는 식사권이 없어서 테이블을 따로 앉아야 했다. 따라온 친구를 두고 무료 점심을 먹는 게 미안했지만 그 기회를 얻은 운좋은 순례자들과 행복을 나눴다.
점심 전에 오후 1시 순례자 미사에 참석했다. 운좋게 향로미사를 보았다. 큰 성당에 가득 찬 사람들과 여기저기 날아가며 향을 피우는 향로를 바라보며 내가 산티아고에 왔구나 실감이 났다. 그래서 기념품샵에서 향로기념품을 팔길래 나와 레이요에게도 선물했다.
산티아고 도착하고나서는 말 그래도 프리데이였다. 어딘가에 얽매이지 않고 그저 마음의 소리를 따라가는 것. 덕분에 헛걸음 없이 프리한 하루를 보냈다.
내일은 레이요가 떠나고 나도 순례길이 마지막 밤이다.
지난 순례길을 정리하며 영상으로 올리고 또 다른 여정을 시작해야지. 아직 발바닥이 물집으로 상하고 몸의 근육들이 말썽이지만 그래도 나의 걸음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벌써 설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