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순례길 2일 차: 왼손잡이의 비애

파란 화살표

by 탱탱볼에세이

사람들이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깨서 나도 일어났다. 같이 가는 순례자 친구가 없어 심심하다. 홀로 짐을 챙겨 숙소를 나섰다. 처음에 화살표가 잘 안 보여서 길을 헤맸다. 다음 마을이 근처였는데 어느새 멀어져 버린 순례길에 도로를 걸었다. 큰 트럭이 많이 지나다녀 무서웠다. 가장 가까운 알베르게를 찾아 다시 순례길을 찾았다. 그래도 한번 잘 방향을 잡으면 파티마 방향으로 파란 화살표가 중간중간 길을 알려준다. 파티마는 포르투보다 더 멀리 가는 여정이라 도움을 많이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순례길을 만나니 안도감이 들었다. 얼마 걷지 않아서 오렌지를 봤다. 순례자를 위해 누군가 오렌지를 바구니에 담아두었다. 감동스러워서 하나 먹었는데 맛이 없었다. 포르투갈길 오렌지는 맛이 없는 건가. 멈춘 덕분에 이탈리아에서 온 신부님 두 분을 마주쳤다. 한국인이 반갑다고 사진을 찍으셨다. 페이스북 친구도 했다. 친화력 무엇. 오렌지 덕분에 친구를 얻었다.


방향이 달라서 순례자 친구가 아무도 없다. 홀로 길을 가야 하는 것이 은근히 힘들더라. 그것도 반대로. 마치 오른손잡이들 사이에서 홀로 왼손잡이인 느낌이다. 오른손잡이이지만 전혀 느껴보지 못했던 왼손잡이의 비애를 체험한 기분이 들었다.


이따금씩 너 잘못된 길을 가고 있어라고 내게 말했다. 순례길을 종교인만 걸으라는 법이 없듯이 산티아고에 이미 다녀왔는데 포르투로 걸으면 안 되는 건가. 본인이랑 다른 방향으로 걷고 있다고 해서 틀린 건데. 다른 것뿐이다. 잘못 가고 있다는 농담 반 진담 반 섞인 말에 내 길을 간다고 말했다. 남한이냐 북한이냐 묻는 것과 버스 타고 숙소 왔냐고 묻는 것 다음으로 기분이 좋지 않은 농담이다.


오늘도 마주치는 모든 순례자에게 인사를 건넸다. 서로 싱긋 웃으면서 하는 인사를 주고받으니 힘이 났다. 물론 그만큼 에너지도 소진되었다. 얼굴근육만 조금 움직이고 목소리만 높여도 힘든데 강호동은 그 많은 사람들과 얼마나 에너지를 다하며 악수를 했을까. 기네스북에 올랐을 때 심정을 조금은 알 것 같더라.


무사히 숙소에 도착했다. 이 동네는 공립알베르게가 없어서 미리 예약해 두었다. 8년 전이랑 다르게 포르투갈길에 사람이 엄청 많아서 놀라고 있다. 하루에 백 명은 본다. 그 많은 사람들이 다들 어디 머무나 싶을 정도다. 포르투갈길 오면 숙소 걱정은 안 할 줄 알았는데, 내일 가는 폰테베드라도 슬쩍 걱정된다. 그래도 도시는 공립알베르게가 있고 침대가 다 차면 다른 숙소 알아보면 되니 염려는 안 한다.


여기는 온천으로 유명한 동네라고 한다. 무료로 발을 담글 수 있는 곳이 있어 가보았다. 뜨겁지 않고 38도 정도로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온도라 좋았다. 한 달이 넘는 순례길동안 발에 물집이 나고 피부가 벗겨지면서 각질이 일어나며 많이 상했다. 오랜만에 발을 위한 휴식을 제대로 취한 기분이다. 이 기회에 좀 더 발을 아껴줘야겠다. 내일도 왼손잡이의 비애를 느낄 예정이다. 지나가던 순례자가 한 농담에 움츠려들지 말고 내 길을 즐겨봐야겠다.


**근 이틀간 담요없이 자다가 너무 추웠다. 오늘 숙소엔 따뜻한 담요가 있어서 좋은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다. 푹 자고 내일 폰테베드라까지 날아가야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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