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안길의 매력을 알다
비고에 무사히 도착했다. 여길 두 번이나 오다니. 사실 비고에 대한 기억이 이미 8년이나 지나 흐려졌다. 다만 한번 오기도 힘든 곳을 두 번 온다는 것 자체가 컸다. 포르투갈길을 마무리했던 장소에서 해안길을 새로 시작하게 되다니.
해안길 1일 차. 걷는 동안 바다가 펼쳐져서 슬렁슬렁 구경하며 걸을 수 있었다. 바로 해안 근처는 아니라 먼발치서 지켜보는 느낌이긴 했지만 그래도 바다를 끼고 걸으니 색다르더라.
사실 북쪽길에서도 바다를 끼고 걷는 길이 많다. 대체길을 중간중간 택했던 탓인지 바닷길다운 바닷길은 많이 놓쳤다. 북쪽길 시작한 처음에 물집이 많이 잡혀서 제대로 즐기지 못한 게 아쉽다.
레돈델라에서 비고는 17km로 짧은 거리라 순례길 사상 처음으로 가장 이른 시간인 오전 11시에 도착했다. 비고에 다시 그리고 어느 때보다 빠르게 도착한 기쁨을 스타벅스 아이스아메리카노로 기념했다. 그래 이 맛이지. 세상 시원했다.
일찍 도착한 여유를 만끽하다가 숙소 오픈 1시가 되기 10분 전에 맞춰 도착했는데 이미 순례자의 배낭 줄로 가득했다. 포르투갈길의 인기를 매일 실감하는 순간이다. 숙소에 자리가 없으면 어쩌지라는 불안감을 이 길에선 느끼지 않을 줄 알았는데. 배낭대기줄은 처음 겪어본다. 다행히 숙소 자리는 넉넉했다.
순례길 시작할 때 샀던 긴 바지가 자꾸 내려간다. 허벅지 두께에 바지를 맞추느라 허리를 큰 것을 샀던 것이 화근이다. 순례길 초반에 바느질고수 분을 만나서 허리를 뚝딱 줄여주셨다. 근데 어느 순간부터 허리가 더 줄었는지 바지가 내려가서 허리 부분을 두 번 접어 입고 다녔다.
끝내 의류계의 다이소인 primark프리마크에 갔다. 가죽벨트가 2.5유로밖에 안 한다. 숙소에서 20분 거리였지만 바지가 내려가서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점에서 행복했다. 비고에서 문제 하나 해결 완료!
저녁 아홉 시가 넘었는데도 밖은 여전히 해가 떠있다. 마침 마을 악기연주단 연습이 있는지 합주소리가 끝날 길이 없다. 다시 온 나를 격하게 환영하는 소리겠지. 비고 어게인. 비고에 얼떨결에 두 번 오게 됐다. 또 운명처럼 또다시 오기를.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인생. 미래를 전혀 모르기 때문에 약간의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지금에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이것이 인생을 살아가는 재미가 아닐까 싶다.
*오늘은 한국분 세 분 봤다. 숙소에 우연히 한국인 한 분이 계셔서 오후 일정이 시간이 잘 갔다. 같이 메뉴 델 디아 먹었다.
*포르투갈길 해안길은 상대적으로 사람이 적다. 마주치는 사람이 3분의 2로 적은 느낌?
*젖과 꿀이 흐르는 도시 비고. 과일가게가 정말 많다. 납작복숭아 드디어 샀다. 행복하다.
*비고는 오르막길이 많다. 숙소가 가장 낮은 지대에 있어서 어디를 가든 오르막길을 올라야 한다. 거꾸로 걷고서야 남들 오르막길이 내겐 내리막길임을. 내게 내리막길이 남들에겐 오르막길임을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