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웠다 아줄레주
20km여를 걸어 조그만 전기보트를 탔다. 포르투갈 카민하로 날아왔다. 정말 날아온 것이 맞는 게 5분도 안 걸렸다. 혼자 타서 6유로 내고 보트를 빌린 기분이었다. 드라이버가 한국인들은 왜 이렇게 까미노를 많이 걷냐고 묻는다. 단골질문이다. 중국인, 일본인은 없는데 한국인만 왜 이리 많냐고 그동안 많이 궁금했나 보다.
1. 일단 스페인, 포르투갈 나라 여행하는 걸 좋아한다.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여행 가능한 나라들이라서)
2. 걷는 여행을 좋아한다. 하드코어해서 더욱. 순례길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3. 비행기 직항 편이 있어 오기 어렵지 않다.
드디어 궁금증이 완전히 해결되었다고 하셨다. 물론 각자의 이유는 다르겠지만 포르투갈순례길에 한국인이 많다. 오늘도 한국인 순례자를 한분 마주쳤다. 매일 마주치는 한국인의 숫자는 달라도 한 명도 못 마주치는 날이 없을 정도로 많다. 배를 태워주신 것도 인연이라 같이 사진 한 장 찍었다.
포르투갈에 오니 스페인보다 1시간이 느리다. 열심히 아침부터 분주하게 걸었는데 1시간을 얻은 기분이다. 아줄레주라고 포르투갈 특유의 타일로 뒤덮인 건물들이 하나둘씩 보인다. 납작 복숭아 사러 과일가게에 들어갔는데 포르투갈어로 인사해 준다. 아쉽게 납작 복숭아가 없더라. 나라가 바뀐 게 실감된다. 바로 기차역으로 달려간다. 발렌카에 가는 기차를 타기 위함이다.
발렌카는 카민하와 같이 국경 마을이다. 8년 전 포르투갈 내륙길을 걸었을 때 발렌카에서 하루 묵었던 추억이 있다.
카민하에서 발렌카를 가는 기차는 15~ 20분 걸린다. 걸으면 26km 정도 된다. 국경지대를 더욱 만끽하고자 기차를 탔다. 기차표는 기차에 타면 승무원에게 3유로 현금을 주고 살 수 있다.
나는 국경지대에 머무는 것을 좋아한다. 분명 각각의 나라인데 다리 하나만 지나면 스페인어가 포르투갈어로 바뀌고, 시간 차이도 1시간이 나기 때문이다. 여기에 살면 당연한 것은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조금만 걸으면 나라가 완전히 바뀌기 때문이다.
포르투갈 발렌카에 머물까. 아님 다리를 건너 스페인 뚜이에 머물까 고민이 됐다. 이건 거의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 급의 고민이다. 왜냐면 어차피 둘 다 묵을 것이기 때문이다.
1시간 얻은 기분을 누리고 포르투갈 온 것을 좀 더 느껴보고자 포르투갈 발렌카에 머물기로 했다. 숙소 체크인 시간이 2시간이나 남아서 근처 대형마트인 리들로 향한다. 보통 순례길을 걸을 땐 아무것도 먹지 않은 공복상태에서 걷기 때문에 배가 고팠다.
사실 배가 고플 땐 쇼핑을 하면 안 된다. 부족함이 가득한 상태여서 뭐든 넘치게 사기 때문이다. 그래서 샌드위치도 사고 복숭아도 1kg나 사고 에그타르트도 2개나 오렌지주스도 1리터를 샀다. 쇼핑을 마치고 근처 공원을 찾았다.
벤치에 앉아 샌드위치를 먹으며 오렌지주스 한 병을 다 마셨다. 에너지가 급 충전됐다. 국경을 넘어가는 순례자들이 보인다. 나도 내일 넘어야지. 열심히 걷는 순례자들을 보면 나도 움직이고 싶어 진다. 그래서 숙소로 향했다.
8년 전에 왔던 곳이다. 다시 여길 오다니 신기했다. 체크인은 50분 정도 남았더라. 아름드리 오디나무에 오디가 주렁주렁 달려있다. 열매도 까맣게 제대로 익었다. 열매수집을 좋아하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디를 먹어도 안 죽는다고 먹어보라고 한다. 근데 안 먹는다.
여길 다시 올 줄이야. 특별히 변한 게 없었다. 머물던 숙소도. 밥 먹던 식당도. 그 자리에 그대로 있어줘서 감사했다. 물론 숙소비는 5유로에서 8유로로 올랐지만. 8년의 시간 동안 공립 알베르게는 여전했다.
같은 곳에 다시 순례자로 온 나는 기분이 이상했다. 하지만 다시 올 수 있음에 감사했다. 샤워하고 빨래하고 루틴을 마쳤다. 따땃한 햇볕이 내리쬐는 잔디가 깔린 마당에 빨래를 널었다. 가장 뿌듯한 순간이다.
복숭아를 씻어서 숙소관리인 아주머니께 나눠드렸다. 아주머니는 식사하고 오셨다고 괜찮으시단다. 그래서 내가 먹었다. 한데 그 마음이 고마우셨는지 티셔츠를 선물로 주셨다. 사이즈가 s밖에 없다고 하시더라. 욱여넣어서 입었다. 나도 뜻밖의 선물에 감사해서 계속 입고 있었다. 흰 티셔츠를 입고 있었는데 파란색 티셔츠를 주셔서 은근히 잘 어울린다. s에 잘 맞는 몸이 돼야지.
조그만 마음을 전했을 뿐인데 더 큰 마음으로 다시 받았다. 이런 교류가 사실 순례길을 걷게 하는 가장 지대한 이유가 아닐까.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느낄 수 있는 정, 유대감 말이다.
바깥에 나가보려고 했지만 오늘은 이 숙소에 다시 온 것으로, 포르투갈에 온 것으로 이미 충분했다. 특별히 무언갈 하지 않아도 그 자체로 편안했다. 그리고 잠에 들었다. 새벽에 일어나 또 쓴다. 파란색티셔츠 선물 같은 하루였다. 빨래도 햇볕에 빠삭하게 잘 말라서 기분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