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했네 나
스페인 뚜이에서 아침 여섯 시 오십 분에 출발했다. 설렁설렁 국경을 넘어 다시 포르투갈 발렌사로 왔다. 포르투갈은 한 시간이 느리니 나는 한 시간을 번 셈이다.
이제는 포르투갈 카미냐로 걸어갈 시간. 3유로에 기차 타고 15분이면 가는 길을 알고도 26km를 걸어갈려니 부담됐다. 이미 쉬운 방법을 알고 있고 이미 한번 기차를 타봤기에 유혹은 강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길을 나섰다. 나는 내륙길에서 해안길로 가는 거지만 이 길을 걷는 사람이 있을까? 싶었다.이릉예상과 다르게 하나둘씩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엔 순례자를 본 게 신기했는데 서른 명 넘게 봤다. 물론 나 혼자 거꾸로 갔다. 다들 해안길에서 내륙길로 넘어오는 순례자밖에 없었다.
가끔씩 거꾸로 걷는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순례자가 있다. 그러면 자세하게 나의 여정을 설명한다. 리스본부터 걸어온 아주머니가 내 이야기를 듣더니 웰던이라며 볼뽀뽀를 갈겨주셨다. 포르투갈길에서 두 번째 볼뽀뽀였다.
그래 내가 먼 길을 걸어오긴 했지. 북쪽길과 프리미티보길이 얼마나 험한 길인 지 잘 알고 계셨다. 산티아고 도착했을 때 뿌듯하긴 했는데 내 스스로에게 웰던이라고 칭찬해 준 적이 있었나 싶다.
처음 본 아주머니에게 찐한 볼뽀뽀를 받으니 그제야 실감이 났다. 나 대단한 일을 했구나. 아주머니한테도 리스본부터 걸어오신 게 대단하다고 웰던이라고 받아쳤다.
사실 오늘 까미냐까지 못 걸어오면 어떡하지. 까미냐까지 걸어왔는데 공립 알베르게 침대 28개밖에 없다는데 자리 없으면 어떡하지. 까미냐 전 마을에 숙소를 예약할까. 혼자서 고민이 많았다.
같이 걷는 동지 없이 외로이 걷고 있다. 어디든 멈출 수 있고 언제든 멈출 수 있다 보니, 힘들 때 자주 멈추게 된다. 사실 한번 멈추면 다시 일어나서 걷는 게 힘들다. 가방 무게도 그대로라 어깨도 계속 아프다. 돌길이라 많이 까진 발바닥이 따까워하고, 발목이 잘 꺾인다. 여정이 길어지다 보니, 자꾸 걸음을 지체할 핑계를 찾게 된다.
근데 웰던이라 말해주며 찐한 볼뽀뽀를 받고 나서 기운이 생겼다. 그래, 나 지금 900km 넘게 걷고 있지. 그에 비하면 오늘의 거리는 짧고 이미 그보다 더한 길과 거리도 많이 걸어봤지.
사실 그동안 많은 순례자들에게 많은 위로와 응원을 받았다. 하지만 볼뽀뽀의 효과는 역시 강력했다. 고개를 끄덕거리는 이상으로 나를 돌아보게 만들었다. 그동안 남에게는 막상 응원과 격려는 아끼지 않으면서 나 스스로에겐 채찍질만 하지 않았는지.
생각지 못한 때에 힘을 얻어 까미냐에 무사히 왔다. 여긴 체크인 시간이 오후 3시인데 13분 정도 지나고서야 도착했다. 줄은 서긴 했지만 다행히 일찍 온 편이었다.
웰던. 스테이크 고기 굽기가 생각나긴 하지만 충분히 나 잘했다. 웰던! 자기 전에 나 스스로에게 웰던이라고 말해본다. 웰던!! 다들 스스로에게 웰던이라 말해주며 인정해주는 하루를 가져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