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
“라오스 방비엥이요? 거기 완전 경기도 가평이에요.”
방비엥을 이미 다녀온 유경험자의 뼈 있는 한마디. 실제로 와 보니, 나도 그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백종원이 극찬할 집. 속 쓰리죠? 나영석 PD가 매일 해장한 집.” 길거리에 한국 관광객을 사로잡기 위한 한국어 간판들이 즐비했기 때문이다. 얼마나 많은 한국인이 여기에 오는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분명 처음 와본 곳인데, 언젠가 꿈속에서라도 한 번쯤 와본 것 같은 기시감마저 들었다. 분명 장소는 외국인데, 한국의 어느 고향 동네처럼 친숙했다.
같이 액티비티 투어하는 외국인 친구가 물었다. 한국인이 왜 이렇게 여기 많이 오냐고. 간단하게 말하면, 응답하라 배우들이 출연한 [꽃보다 청춘] 프로그램의 인기 덕분이다. 배낭여행의 감성을 톡톡히 살렸던 예능 콘텐츠가 사람들을 방비엥으로 찾아오게 만든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설명되기엔 2% 부족했다. 실제로 실행해내는 것은 한국인의 의지가 중요했기 때문이다.
산티아고 성지순례 길에서도 똑같은 질문을 많이 받았다. 그때만 해도 한국에서까지 이 먼 길을 엄청나게 공들여서 오는 이유를 나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왜 굳이 비싼 돈 들여서 10시간 넘게 비행기 타고, 780km가 되는 긴 길을 걷기 위해 열심히 운동해서 체력을 기르고, 등산화, 등산 가방, 스틱 장비까지 꼼꼼히 구비하여, 한 달이라는 시간을 내서 온 것일까.
7년 전, 독일에서 교환학생으로 1년을 살았던 시절이 있었다. 여름방학 때, 지금 아니면 언제 산티아고 성지순례를 해보겠냐고 엄마의 버킷리스트를 대리 실현하는 겸 가벼운 마음으로 순례길을 걸었다. 같은 대륙이라 쉽게 휴가 내고 1~2주 잠깐 걸으러 온 유럽인이 부러웠을 뿐이었다. 한국인처럼 한 번에 꼭 완주해야한다는 부담감이 전혀 없는 그 여유가.
큰마음을 먹고 퇴사 후 장기여행을 떠나와 보니, 이제는 그 이유를 좀 알겠다. 한국인은 하고싶은 일을 절대 버킷리스트로만 남겨두지 않는다. 어디든 가야할 이유가 생긴다면 끝내 직접 가보고 판단하는 여행에 진심인 민족인 것이다. 생장 드 피드 포흐(순례길 시작점)과 방비엥은 직항 비행기도 없고, 국경을 넘어 바로 오는 기차도 없다. 아무리 먼 길이고 찾아오기 어려운 곳이라도 한국인은 절대 지지 않는다. 열심히 네이버 블로그부터 카페, 유튜브까지 샅샅이 모든 최신 여행 정보를 찾아서 어디든 기어이 찾아서 가고야 만다. 거기다 도장 깨기하듯이 이건 꼭 해봐야 한다는 일정들을 짧은 시간 안에 모두 해낸다.
지난주엔 정상에 오토바이가 있어 유명한 남싸이 전망대에 올랐다. 경사가 가파르고 흙길이라 넘어지기 쉬운 길에 좌절도 잠시 뿐. 입장료 1만 낍(한화 약 800원)이 꼭 정상에 올라야하는 동기부여를 해 준다. 달랑달랑 불안정한 대나무 지지대와 바닥에 단단히 박혀있는 큰 돌을 어떻게든 부여잡고 40분 동안 사족보행해서 간신히 올라왔다. 땀이 비오듯이 쏟아지는 짠내나는 이 길을 왜 시작했을까. 역시나 유튜브 였다. 퇴근 후 무심결에 [가든의 세계여행]에서 봤던 그 길을 따라온 것이다. 정상에 올라 오토바이에 타고 인증샷을 찍어보고 싶은 작은 욕망이 불을 지폈다.
남싸이 전망대의 오토바이에 나도 앉아보았다. 하고 싶은 일을 직접 해냈을 때의 짜릿함이 얼마나 강렬한지. 오토바이에 가만히 앉아서 바라보는 정상의 경치가 정말 예술이었다. 힘들게 올라온 과정을 금세 잊어버리게 했다. 인간의 의지는 그만큼 강하고 굳건한 것이었고,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임을. 사진 1장 찍으러 오랜만에 오른 등산길에서 배웠다. 잠자고 있는 또 다른 욕망이 나를 또 어디로 이끌지 궁금하다. 하지만 목표를 이루기 힘든 상황들에 결코 지지 않을 것임은 확실하다. 난 한국인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