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순례길 13일 차: 소개팅 제안

아드님을 소개해주신다고요?

by 탱탱볼에세이

새벽 5시에 눈이 떠졌다. 순례길을 오래 걸으니 좋은 게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걷는 습관이 생긴 점이다. 이미 짐을 다 싸두었기 때문에 눈 비비고 일어나서 바로 떠나면 된다. 신발을 신고 해가 뜨길 기다렸다. 해가 뜨는 6시 전까지 엄마랑 전화통화를 했다. 든든한 기운을 얻고 출발했다.


비가 오려고 하는지 날씨가 우중충했다. 풍경이 그냥 어둑어둑해서 걷는 맛이 안 났다. 그래도 어쩌리. 오늘 안에 가야만 하는 계획이 있으니 걸어야 한다. 어제 끼니를 간단히 주스 한 팩이랑 초코바 몇 개로 때웠더니 배고팠다. 기운이 없어서 목표한 곳까지 힘내려면 뭐를 좀 먹어야겠다 싶었다.


포르투갈길은 중간에 바가 레스토랑이 없는 동네도 많고, 이른 아침엔 연 곳이 거의 없다. 일부러 순례길을 벗어나서 주유소 근처 카페를 찾았다. 에그타르트 한 개와 카페라테 한 잔에 에너지를 좀 충전했다. 근데 포르투갈 에그타르트가 생각보다 그냥 그렇다. 한국 에그타르트가 더 맛있다. 한국이 외국음식도 더 잘하는 것 같다. 사실 이제 한국이 그립다.


다시 순례길로 돌아와 걷는데 한국인 아주머니를 마주쳤다. 어제는 한국인을 못 봐서 더 반가웠다. 반갑게 인사하니 아주머니도 반가우셨는지 흙길 한편에 돗자리를 펴고 잠깐 같이 쉬기로 했다. 영어를 못 하시고 알파벳만 겨우 아시는데 길을 걸으면서 우울증이 치료되셨다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순례길의 매력을 2017년에 처음 알게 되어 프랑스길은 두 번 걸으시고 이번에 포르투갈길 오셨단다. 포르투갈길 시작 전 아드님이랑 같이 여행하셨는데 돈이 아까워서 못하던 걸 아드님이 꼼꼼하게 챙겨서 다 해보셨다고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말씀해 주셨다. 이것도 인연이라 연락처를 주고받았다.


그리고 이야기 말미에 하시는 말씀. 우리 아들 소개받을래요? 당황했다. 하하하. 엄마랑 연세도 같으시고 성씨도 같으셔서 우리 엄마 같으셨다. 하하하. 절대 그렇다고는 말 못 하고 웃기만 했다. 순례길에서 소개팅 제안이라니. 생각하지 못했던 상황이지만 말씀만으로도 감사할 뿐! 저는 자연스러운 만남 추구하는 사람인 걸요! 자연스럽게 순례길에서 한국분들을 만나서 반가웠다.


그런 반가운 기분을 안고 걸으면 잘 걸어진다. 덕분에 오늘도 숙소에 체크인이 오후 2시인데 40분 정도 일찍 도착했다. 다행히 침대 걱정은 안 해도 되었다. 하지만 오늘은 2층이다. 침대가 34개뿐인데 그래도 잘 수 있는 게 어디람. 나 바로 앞에 온 체코 여자애는 오늘 포르투에서 36km를 새벽 6시부터 걸어왔단다. 나도 새벽 6시에 출발하긴 했는데. 스물세 살의 젊은 패기와 긴 다리가 부러웠다.


이제 포르투까지 36km 남았다. 한 번에 다 걷고 싶지 않다. 이번 여행의 마지막 순례길을 조금 더 즐겨보련다. 사실 이미 순례길을 너무 많이 걸어서 새로운 풍경을 보는 맛이 없다. 더 이상 새롭지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어제 순례길이 끝난다는 아쉬움에 리스본까지 더 걸어볼까했지만 생각을 깔끔하게 접었다. 지금 이 시기에 이 길을 걷는 건 이 순간뿐이다. 내일도 새벽 6시에 일어나서 14km를 여유롭게 걸어봐야지.


*오늘 편집해서 업로드한 유튜브 채널 소개영상을 공유한다.

https://youtu.be/a5jC6yTCR1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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