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세탁기 돌릴래?
바닷길을 따라 오늘도 무사히 숙소에 도착했다. 걸은 길이 제주 올레길이랑 비슷하게 느껴졌다. 나무데크가 좀 잘 깔려있다 정도?
오늘 숙소는 구글맵에 후기가 좋아서 순간 혹했다. 걷다가 중간에 사이트로 예약하고 일부러 찾아서 왔다. 비대면 시스템으로 상주하는 직원이 없다. 메일로 보내준 코드를 누르면 문이 열린다. 갖출 것은 갖췄다. 식기 가득한 부엌도 있고 로봇청소기도 있고 헤어드라이기도 있고 수건도 있고 이불도 있고 빨래 말릴 널찍한 테라스도 있다.
알아서 잘 문을 열고 알아서 잘 방으로 들어왔다. 아싸 1층 침대다. 어머나 같은 방에 한국인이 있네. 오늘은 길에서 한국인을 못 봤는데 숙소에서 봐서 더 반가웠다. 인사를 나눴다. 대화 몇 마디하고 바로 샤워하러 갔다. 숙소가 언덕에 있어 작은 산을 탔다. 그것 좀 탔다고 땀에 흠뻑 젖었더라.
새 사람이 되어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여긴 세탁기도 건조기도 각각 2유로에 빨래를 돌릴 수 있다. 다른 곳보다 저렴한 편이라 기계의 힘을 빌려보기로 했다. 내 옷이 너무 많아서 또 냄새나서 차마 같이 세탁기 돌리자고 말을 못 꺼내고 망설이고 있을 때. 한국인 그녀가 먼저 말을 건네주었다. “같이 세탁기 돌리실래요?”
너무 좋았다. 1유로에 돌릴 수 있는 것도. 마침 1유로 밖에 없었는데 잘됐다. 근데 세탁기가 꼭 1유로짜리를 넣어야 한단다. 친구는 50센트 2개였다.
나는 미리 봐둔 자판기와 1층에 상점이 있어서 같이 바꾸러 가자고 했다. 자판기는 동전만 넣을 수 있어서 실패였다. 다행히 상점 직원이 웃으며 흔쾌히 바꿔줬다. 나도 고맙다며 천사라고 치켜세워줬다. 덕분에 우리가 무사히 세탁기를 돌릴 수 있었으니 천사가 맞다.
빨래를 널고 친구는 저녁을 먹으러 간단다. 다시 내려갈 생각을 안 하려고 미리 밥을 먹고 언덕을 올라온 나. 숙소에서 빈둥댔다.
몇 시간 지나서 다시 친구가 돌아왔다. 많이 지쳐 보였다. 그래도 한국인은 반가워서 말을 걸었다. 돌아올 땐 택시 탄다고 했는데 볼트 택시가 잘 잡혔는지 궁금했다. 안 그래도 안 잡혀서 언덕을 올라왔단다.
그렇게 시작된 대화의 물꼬. 알고 보니 우리 동갑이었다. 부산 출신이었다. 독일어를 할 줄 알았다. 독일 교환학생 시절 프랑스 순례길을 걸었다. 스타트업에서 일하고 맡은 업무에 진심이다. 이야기할수록 공통점이 많았다.
덕분에 이야기가 계속 줄줄이 소시지처럼 이어졌다. 밤늦게까지 서로 별의별 이야기를 다했다. 내일이면 난 또 반대로 걸어가고 친구는 컨디션이 안 좋아서 하루 더 이 마을에 묵는다고 한다. 마음이 잘 맞는 친구를 여기 와서 만나다니. 즐거운 하루였다. 한국 가서 또 만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