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길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
무사히 숙소에 도착했다. 프랑스길만큼은 아니지만 포르투갈길도 인기가 두 번째로 많아서 숙소경쟁이 있다. 그래서 숙소가 여는 오후 1시에 최대한 맞춰서 도착하려 한다. 순례길 걸은 지 한 달이 넘어서 이제 걷는 건 익숙하다. 다만 어깨 통증이 계속되어 여전히 쉽지 않은 길이다.
숙소를 향해 걸어오는데 뒤에서 어떤 청년이 숙소가냐고 묻는다. 다른 숙소는 다 풀부킹이라고 여기마저 없을까 봐 걱정이란다. 2분 거리라 그럼 뛰자고 했다. 마침 줄을 서있던 사람들이 숙소로 우르르 들어간다. 시간은 1시 2분. 침대가 32개나 되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그에게 말했다. 사실은 내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휴 오늘도 무사히 잘 곳을 얻었다.
침대 1층 자리를 맡아서 기분이 좋았다. 어떤 할머니가 여기저기 두리번거리신다. 충전 플러그 찾는 거냐고 여쭤봤다. 침대에 달린 등 밑에 USB 포트를 꽂을 수 있다고 알려드렸다. 사실 엄청 간단한 건데 아무도 안 알려준다. 알아서 잘 찾아내야 한다.
이번엔 와이파이를 찾으신다. 유럽에서 사용 중인 유심이 없다고 하셔서 내 와이파이를 공유해 드렸다. 정말 기쁘신지 볼뽀뽀를 해주신다. 포르투갈길에 저번에 왔을 때 포르투갈 할머니한테 볼뽀뽀당했는데 이번에도 또 그 일이 일어났다. 누군가에게 볼뽀뽀받을 정도로 이쁨 받을 수 있다니 감사하다. 원수한테 볼뽀뽀는 안 하니까.
대만 국기를 단 배낭을 멘 분이 뒤늦게 숙소로 들어오셨다. 같이 침대 일회용 시트 씌우는 거 도와드리고 샤워부스랑 빨래 널 수 있는 곳 알려드렸다. 리셉션에서는 구체적으로 설명 안 해줘서 역시 알아서 눈치껏 알아채야 한다.
내 위층 포르투갈 아줌마가 와이파이를 찾으셔서 와이파이 계정 생성하는 법 안내해 드렸다. 일행 두 분이 더 계셔서 그분들 것까지 인터넷 연결을 도와드렸다. 핑거프린세스를 포르투갈어로 알려주시면서 일행분들을 놀려주셨다. 그리고 엄청 고마워하셨다. 덕분에 천만에요가 포르투갈어로 다나다인 걸 알게 됐다. 곧 포르투갈에 가는데 널리 써먹어야지.
숙소에서 가장 중요한 건 핸드폰 충전할 콘센트와 핸드폰 인터넷 사용이 자유로운 와이파이다. 숙소를 여러 곳을 가다 보니 그동안 정복한 소소한 팁들을 이젠 새내기 순례자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게 됐다. 매번 주변에 도움만 받았는데 이젠 내가 다른 분들을 도울 수 있다니. 나 스스로도 좀 성장한 것 같아 혼자 기특하다.
오늘은 길에서 한국분을 열 분 이상 봤다. 활기찬 에너지를 받기도 하고 차고 계시던 팔찌를 내게 채워주시기도 하고 사람들 각자가 가진 고유한 힘을 느낀다. 나랑 같은 방향으로 가는 사람들은 한 명도 못 봤지만 오늘도 덕분에 많은 사람들에게 기운을 받고 힘을 얻었다.
새로 느낀 점은 더 이상 웬만한 오르막길이나 내리막길이 두렵지 않다는 것이다. 오르막길과 도로길 중에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있었는데 고민 없이 오르막길을 택할 수 있었다. 북쪽길, 프리미티보길이 하도 험난했기 때문이리라. 스스로 강해진 것이 느껴진다.
내일이면 지난 포르투갈길에서 여정을 멈췄던 비고에 다시 간다. 그땐 다시 비고에 올까 싶었는데 또 가게 되다니. 항상 이번이 마지막일 수 있다는 생각으로 임하는데 운 좋게도 두 번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저번엔 친구랑 가서 정말 재밌게 놀았던 추억이 있는데 혼자 가는 이번엔 어떨까.
비고에 도착하면 함께 갔던 친구에게 연락해서 오랜만에 추억팔이해야겠다. 역시 여행은 함께 나눌 친구가 있어야 더 재밌는 것 같다. 내일은 추억을 오래오래 곱씹을 수 있도록 부디 순례길 친구가 생기게 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