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똑
대학도시 코임브라 구경이 끝나고 집에 돌아왔다. 똑똑똑. 누군가 내 방에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옆방에 사는 아르헨티나인 환이 말을 걸어왔다. 챗 GPT를 켜서 내게 영어와 한국어로 대화를 시도한 것이다. 놀랐다. 챗 GPT로 말을 걸다니.
혼자 여행 다니는 것의 어려움을 이해한다며 아르헨티나 경제상황이 안 좋아서 포르투갈로 3일 전 이사 왔다고 말했다. 그래서 같이 밤 11시에 술 마시러 가자고 제안한 것이다. 나는 스페인어를 못하고 환은 영어를 못하지만 챗 GPT 덕분에 소통에 문제가 없었다.
피곤하고 내일은 또 포르투로 이동해야하기 때문에 제안은 고맙지만 안 간다고 말했다. 길거리에 있는 한국음식점 사진을 보여주며 관심을 표현했다. 내게 제안 준 것이 고맙고 한식에 관심이 있는 거 같아서, 마라토너 아저씨가 선물로 주신 팔도비빔면 2개를 환에게 선물로 줬다. 그러자 환이 고마워하면서 대화의 물꼬가 트였고, 환의 방에 초대되었다.
메시를 정말 좋아한다며, 마테차를 매일 마신다고 했다. 메시도 매일 마테차를 마신다더라. 그래서 나도 마테차를 맛봤다. 엄청 쓸까 봐 환이 설탕을 타줬는데 맛있었다. 그는 절대 설탕을 타먹지 않는다고 해서 두 번째 잔엔 나도 설탕 안 탄 마테차를 마셔보았다.
떫은 녹차도 잘 마시는 편이라 그런지, 마테차는 떫지 않고 순했다. 생각해 보니 코카콜라에서 태양의 마테차를 만들어서 편의점에서 1+1 할인할 때 많이 마셔봤다. 물론 보리차처럼 순하게 한국화 된 상품이라 진짜 마테차와 비교는 불가하지만 알고 보니 아는 맛이더라.
환은 포르투갈에서 구직 중으로 사진가와 바리스타가 직업이라고 한다. 그 때문인지 묵직한 전문가용 카메라가 5대가 있었고, 맥북 프로 노트북을 사용하며 마테차를 즐겨마셨다. 이미 챗 GPT를 생활 속에서 쓰는 것 보고 매우 놀랐다. 나는 그 존재는 알고 한 번도 써본 적이 없었고, 생활에서 활용할 생각도 안 해보았으니 말이다.
새로운 것을 빠르게 받아들이고 활용할 줄 아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환이 언제든 마음 바뀌면 알려달라고 하길래 인스타그램이나 왓츠 앱이 있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꺼내주는 그의 명함. 예쁜 색깔로 앞장에는 그의 이름이 뒷장에는 QR코드가 있다. 정말 힙하다. QR코드를 스캔하니 모든 그의 소셜계정 목록이 나왔다.
그를 팔로우하고 대화하다가 내 책을 출판할 거라 얘기하며 탱탱볼을 알려주었다. 내 이야기를 듣더니 남일 같지 않고 자신의 상황처럼 공감이 갔는지 눈물을 흘리려 하더라. 책 표지는 AI 무료로 만들어주는 이미지로 시도해 보라고 아이디어를 냈다. 챗 GPT로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 저녁시간이 되어 팔도비빔면을 끓여줬다.
맵찔이인 나도 팔도비빔면은 맵지 않은데 환은 매워했다. 아르헨티나 음식은 매운 음식이 없단다. 아르헨티나 음식이 세계최고라고 아르헨티나의 멋진 자연과 맛있는 음식을 자랑해 줬다. "Dolce de leche"라는 초코잼 같은 걸 최고로 추천해 줬다. 덕분에 남미여행에 불씨가 지펴졌다. 나중에 남미여행을 하게 되면, 물어볼 사람이 또 한 명 생겼다.
내일이면 코임브라를 떠난다. 환은 그냥 스쳐 지나갈 인연이었다. 그의 똑똑똑과 똑똑한 챗 GPT 덕분에 친구가 되었다. 서로의 이야기를 알게 되었으며, 둘 다 안전지대를 벗어나 유럽에 온 것이 큰 도전이었다는 공통점도 발견했다. 앞으로도 그의 안정적인 포르투갈에서의 취업과 나의 프리랜서 생활을 서로 응원할 수 있으리라. 이렇게 용기 있는 친구를 알게 되어 다행인 밤이다. 나도 다음엔 용기 내서 낯선 이에게 다가가야지. 챗 GPT로 말도 걸고 말이다.
*리스본이 수도이기 전에 코임브라가 포르투갈의 수도였던 사실을 아는가. 조앤 K 롤링은 해리포터를 집필할 때, 코임브라 대학의 망토 교복과 도서관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코임브라 대학은 포르투갈 최초의 대학으로 1290년에 개교한 대학교로 큰 의미가 있다.
칙칙한 검은 망토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길거리에 보였다. 코임브라 대학 도서관은 정말 특별했다. 매 20분마다 60명의 정원만 입장할 수 있으며, 도서관은 20분만 구경할 수 있다. 들어가면 퀴퀴한 감옥이 먼저 보인다. 학생들이 책을 많이 훔쳐가서 감옥에 가뒀다고 하더라.
도서관은 해충 박멸을 위해 천연세스코인 박쥐가 사는 걸로 유명하다. 다행히 박쥐는 보이지 않았다. 구경시간이 짧은 것도 위층의 멋진 벽화를 가진 도서관은 사진도 영상도 찍지 못하게 하는 게 아쉬울 뿐. 천장에 평면인 벽을 입체적으로 그려서 그 모습이 나를 쳐다보고 있는 듯하게 느껴졌다. 해리포터 영화를 좋아했어서 그런지, 도서관을 보니까 해리포터의 영화의 장면들이 떠오르더라. 조앤 K 롤링 덕분에 평범한 대학에서도 상상하는 재미가 있었다.
포르투갈 포르투와 코임브라는 조앤 K 롤링의 발자국을 따라가는 느낌이 들어 특별하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채플에서는 결혼식이 있었다. 덕분에 포르투갈 결혼식에 오는 하객들 자동차와 패션을 구경할 수 있었다. 다들 부티가 나더라. 이렇게 유서 깊은 곳에서 결혼하면 더 오래 행복하게 살지 않을까 싶었다.
외국인이 한국에 놀러 와서 서울대를 구경한 기분이다. 기념품샵에서 잘 참고 코임브라 대학 기모 후드집업을 사지 않은 나를 특히 칭찬한다. 오늘 길거리에선 트라이애슬론 경기가 있었다. 참가자들이 마라톤 하고, 자전거 타고, 수영하는 것이다. 운동 하나도 어려운데, 세 개나 하다니요.
다들 세상 힘든 얼굴로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 향하는 모습이 감동적이었다. 끝내 피니시라인에 들어서서 완주 목걸이를 건 사람들을 보니 내가 다 뿌듯하더라. 3일 동안 코임브라의 젊고 생기 넘치는 도시 분위기를 짧게 맛봤다. 사랑스러운 이 도시에서 따뜻한 얼리어답터 환이 부디 좋은 직장을 구해서 잘 자리 잡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