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찰제의 편안함

같은 출발선에서 여행하고 싶은 마음

by 탱탱볼에세이

루앙프라방에 무사히 도착했다. 기차역 출구를 나서자, 눈앞에 수많은 밴들이 서있었다. 누군가의 이름을 들고 사람을 찾는 가이드들도 보였다. 다들 여행사가 패키지여행객들을 맞이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아쉽게도 나를 기다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눈치껏 기차역의 오른쪽 출구로 나와 왼쪽 입구까지 쭉 걸어보았다. 근데 블로그에서 봤던 밴 타는 곳이 없더라. 시선을 좀 더 멀리 내다보았다. 나왔던 출구 바로 앞을 건너니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보였다. 그곳엔 빨간 줄과 파란 줄 무늬로 도배된 밴들이 줄지어 서있었다. 기다리는 이 하나 없는 도착자들을 위한 것이었다.

시내까지 밴은 모두 동일하게 3만 5천 낍(2,800원) 정찰제로 판매되었다. 기차역에서 시내는 20km 이상 떨어져 있기 때문에, 매우 합리적인 가격이었다. 무엇보다 흥정하느라 머리 싸매는 것으로 여행을 시작하지 않아서 더욱 편안했다. 표를 끊으면 아무 밴이나 타면 된다. 라오스 와서 처음으로 마주한 공평한 시작점이었다. 누구나 이미 정해진 동일한 가격으로 시내에 갈 수 있으니 말이다.


루앙프라방은 아직 온 지 24시간도 되지 않아서 그런 지 아무래도 낯설다. 낯선 기분이 들 때는 얼른 몸으로 걸어서 길을 익히고 적응하는 수밖에 없다. 메콩강 근처에서 내려서 걸어서 숙소 근처까지 걸어갔다. 누군가는 루앙프라방이 치앙마이와 비슷하다고 했는데, 나무 건물이 많아서 그런 듯했다. 아직까지 건물 말고는 비슷한 게 전혀 없어 보인다.


외국에서 가장 빠르게 편안함을 느끼는 방법은 한식을 먹는 것이다. 운 좋게도 숙소 근처에 [어린 왕자]라는 한식을 판매하는 곳이 있어 바로 향했다. 무사히 루앙프라방에 온 기념으로 참치비빔밥을 주문했다.


앉자마자 시원한 물 한 잔을 가져다주셔서 1차 감동했다. (어제 시키지도 않은 시원한 물 한병을 가져다주셔서 벌컥벌컥 마시고 5천 낍(400원)을 낸 직후라 그런지 정말 감동했다.) 비빔밥만 주문했는데, 김치와 된장찌개가 함께 나온 것이 2차 감동이었다. 커피에는 코스터를 비빔밥에는 식탁보를 깔아주는 게 3차 감동이었다.

비빔밥에 김치를 아낌없이 넣고 고추장 듬뿍, 참기름 촵촵 치고 열심히 비벼줬다. 비빔밥 한 숟가락에 낯선 루앙프라방이 한국의 고소함으로 가득 찼다.

한식으로 배를 채우니, 이제 좀 루앙프라방에 왔다는 게 실감이 되었다. 아이스아메리카노도 마셨는데, 라오스 커피에 희망을 보았다. 방비엥 커피들은 다 씁쓸했는데 루앙프라방 커피는 딱 적당히 고소한 맛이 느껴졌다. 이제 루앙프라방에 진짜 왔으니, 숙소 체크인 시간 전까지 가고 싶은 곳을 구글맵에서 찾은 후 위치를 저장해 두었다.


1) 꽝시폭포

2) 푸시산 일출, 일몰 보기

3) 스님들 새벽 탁발행렬 보기

4) 왓 씨앙통 사원

5) 빵집 여러 곳

6) 젤라또 먹기

7) 메콩강을 바라보는 카페에서 커피 마시기


찾다 보니 빵순이에게 가장 기뻤던 건 루앙프라방에 맛있는 빵집카페가 많다는 것이다. 숙소에 체크인을 하고 시내를 걸었다. 꽝시폭포 가는 밴도, 방비엥 돌아가는 기차표와 기차역 가는 교통편도, 자전거 대여도 업체를 구하고 흥정해야 할 것이 많아 근심이다.


정찰제나 온라인 가격비교였다면 이렇게 여행에 사소한 걱정은 줄텐데. 발로 뛰어다녀도 좋은 가격에 구매할 지는 여행자의 운에 달려있다. 어디를 이용하냐에 따라 가격차이가 나니 그냥 처음 물어본 데서 이용해야 할지, 다른 데 여러군데 가봐야 하는지, 직접 구해야 할지 무엇이 옳은 선택인지 고민되는 것이다. 이렇게 흥정하는 데에 귀중한 시간을 쓰는 것이 옳은 건가 현타가 온다.

예를 들면, 기차표를 직접 예매하면 10만 낍인데, 업체 통해서 하면 20만 낍이 넘는다. 물론 만 원 차이다. 예매를 대신하러 가는 분들의 수고스러움을 모르는 것도 아니다.배낭여행을 하고 있는 입장에서 한 푼 두 푼이 아까운 것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업체에 가격만 물어보고 생각해 보겠다고 발길을 돌렸다. 길거리에 아무 걱정 없이 바닥에 철퍼덕 누워있는 개가 부러워진다.


지금은 위시리스트 7번을 먼저 하러 왔다. 입구에 들어서자 음료마실건지 식사할 건지 먼저 물어본다. 음료 마실 거라고 했더니 위쪽에 앉으라고 한다. 아래쪽에 앉으려면 식사해야 한단다. 혼자 온 것도 서러운데, 아래쪽에 못 앉는 게 더 서러운 순간이다. 메콩강과 남칸강이 만나는 풍경을 보고 싶어서 왔는데, 카페가 위치값을 제대로 한다. 윗자리 구석진 자리에서 강가가 잘 보이는 아래층에 앉은 사람들을 구경하며 글을 쓴다.

라오스는 사소한 돈에 일희일비하게 만든다. 아름다운 자연 풍경과 순박하게 웃음으로 맞이하는 라오스 사람들에게 정이 들려 하다가도 작은 돈을 손해 본 것 같은 기분에 금세 서운해진다. 흥칫뿡! 그저 정찰제로 여행만큼은 똑같은 출발선에서 구경할 수 없는 걸까. 부르는 대로 줘야 할 것 같은, 적당한 가격으로 흥정이 어려운 사람의 불만이다. 누군가의 노력을 흥정하는 게 쉽지 않나. 직접 기차표를 끊으러 가는 한이 있더라도 그냥 내가 더 고생하고 마는 게 마음 편한 것 같기도 하고. 복잡한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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