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역까지 걸어가서 직접 표를 구매하는 행위

누군가의 수고스러움을 인정하는 순간.

by 탱탱볼에세이

아침 7시부터 기차역으로 향했다. 루앙프라방 가는 기차표를 직접 사기 위해서다. 2021년 8월 개통한 중국-라오스 철도는 아직 온라인 기차 예매 시스템이 없다. 2일 전에 기차표가 오픈되면 때를 맞춰, 직접 기차역에 와서 구매해야 한다. 온라인으로 한 달 전부터 손쉽게 구매 가능한 한국과 코레일에 감사해진다.


표 판매하는 창구가 7시 30분에 열린다고 해서 30분 일찍 출발했다. 라오스는 보통 흙길로 되어있다. 기차역 1km까지만 콘크리트 도로가 깔려있다. 평평한 도로가 아니라서 걷기에 편할 거라 생각했다. 오히려 길거리의 흙먼지를 미스트처럼 맞아야 하는 게 함정. 코로나 바이러스보다 흙먼지를 피하기 위해서 마스크 착용은 필수다.


툭툭(트럭택시)를 타고 적당한 흥정을 거쳐 2만 낍~3만 낍(1,600원~2,400원) 선에 올 수 있다. 그 흥정 자체도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다. 잠깐의 흥정에 에너지 쏟기 싫어서, 대신 30분을 걷는 에너지를 쓰는 게 더 의아한 일이긴 하다. 서울의 아스팔트 도로와 대중교통을 그리워질 줄이야.


10분 정도 늦었을 뿐인데, 이미 15명의 사람들이 매표소에 줄 서 있다. 나도 어디 가면 부지런한 편에 속하는데, 라오스 사람들이 한 수위였다. 사실 그들은 그들의 기차표를 사러 온 것이 아니다. 다들 누군가의 구매대행 일을 하기 위해 와 있다. 그들 손에는 묵직한 지폐와 구매대행 손님들 여권복사본이 쥐어져 있다.


막상 매표소의 줄을 기다리니, 긴장되었다. 사람들끼리 눈빛을 주고받으며, 먼저 서있는 사람에게 지폐더미를 얹어주는 모습이 계속 보였기 때문이다. 자기 표까지 사달라고 서로 신호를 주고받은 것이다. 부지런함이 권력이 되는 순간. 오른쪽 스크린에 실시간 좌석 잔여현황을 띄워주는데, 0으로 바뀌거나 0으로 수렴되어 갔다. 덜 부지런해 늦게 온 사람은 초조해질 수밖에 없다. 내가 표를 사기 전에, 이미 표가 다 팔릴까 봐 걱정되는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방비엥엔 한국인 관광객이 많으니까, 매표소에 줄 기다리는 나 같은 한국인 1명쯤은 있겠다 싶었다. 그런데 아무도 없었다. 말 하나 통하는 사람 없는 한국인 1은 그저 앞줄의 사람들이 무사히 표를 사고 빠져나가길 기다릴 뿐. 나 하나 탈 자리 정도는 남아있기를. 기를 모으는 수밖에 없다.


여권도 표를 구매할 돈도 손에 쥐고, 어떻게 말해야 빠르고 정확한 의사소통이 될까 한국어-라오스어 구글 통역도 마쳤다. 내 바로 뒤에 서계신 라오스 아주머니가 라오스어로 말을 걸어온다. 못 알아들으니까, 내 뒤뒤 라오스 청년이 영어로 다시 통역해서 물어봐줬다. "언제 어디 가는 기차 타니?" 매표소 앞의 기세에 위축되어 내일 가는 기차표가 없을까 봐, 혼자서 별 생각을 다하고 있을 때였다. 수요일 기차를 예매해야 하나, 만약의 위기상황을 그려보고 그에 대한 대처방법을 시뮬레이션했다.


하지만 처음 본 사람에게 이런 속사정을 일일이 설명할 순 없는 법. "내일 루앙프라방 가는 기차 끊는다. 자리가 없으면 내일 몇 시든 상관없다."라고 답했다. 아주머니는 "오늘 기차 단체로 끊으러 왔다"라고, 내일 기차면 표가 있을 거라고 괜찮다”라고 하신다.


표가 모자랄까 봐 불안한 표정을 지으시며, "자기가 먼저 표 사면 안 되냐"라고 물어보셔서 양보해 드렸다. 생판 모르는 아주머니가 좀 더 마음을 열자 아줌마가 된 순간. 부지런하길 잘했다. 조금 먼저 도착한 덕분에, 아줌마의 씩씩한 태도를 배웠으니까. "모르면 일단 물어보자."라는 간단한 진리도.

나이 한 살 먹을수록 내 바닥이 들통날까 그냥 침묵하게 된다. 짧게라도 대화를 시도해서 약간의 정보라도 알면 이리 마음 편한 것을. 혼자 이리저리 끙끙 앓고 있었다. 아마 대화하지 않았다면, 스크린에 뜨는 것은 당일 자리 현황판이라는 사실을 몰랐을 일이고.


드디어 온 내 차례. "루앙프라방, 내일 아침, 2등석. 플리즈." 다행히 매표소 직원은 라오스어는 기본이고 영어, 중국어까지 출중하게 하셨다. 미리 표를 판다고 들어서 오긴 했는데, 2일 먼저 표가 열리는 줄 몰랐다. 내일 오전 기차는 아마 다 팔렸을지도 모른다고 걱정했다. 그 우려가 어느 정도 맞았다. 아침 8시 기차는 이미 매진이었다. 운 좋게 아침 10시 기차가 남아있었고, 계획대로 난 내일 오전에 루앙프라방에 갈 수 있게 됐다.


기차역까지 걸어가서 직접 표를 구매하는 행위를 하며, 부지런할 거면 확실히 부지런하자는 2가지 교훈을 얻었다.

1) 7시 30분보다 먼저 도착하게 20분 먼저 나왔어야 한다.

2) 표는 2일 전부터 오픈되니까, 어제 왔으면 좀 더 덜 불안해하며 구매할 수 있었다.

보통의 여행객은 숙소나 여행사에서 조금의 수수료를 더해서 기차표를 구매한다. 직접 표를 구매하는 수고스러움을 줄이는 것이다. 몇 군데 발품을 팔아 합리적인 가격의 대행업체를 찾아야겠지만, 구매대행 서비스를 이용하는 게 사실 가장 편한 일이다.


외국에서 기차표를 구매하는 게 사실 수고스러운 일이지만, 그 경험은 누구에게도 살 수 없으니까. 누구에게 추천하지 못하는 경험인 게 흠이지만. 산 멍도 실컷 때리며 누구나 누릴 수 없는 여유를 누리면서 기차표도 다행히 구했으니 이걸로 됐다고 위로했다.


손해 보고 싶지 않은 마음 자체가 나를 오히려 시험에 들게 한다. 나를 걷게 하고, 표를 못 구할까 초조하게 만들고, 흙먼지를 대차게 맞으며 먼저 가는 툭툭를 바라보며 나의 선택을 비교하게 되고. 이 긴 여행이 끝나갈 때쯤엔 손해 좀 보면 어떤가! 당당하게 손해를 인정하는 내가 되기를. 그저 돈 좀더 주고 쉽게 구매한 기차표가 비싸게 샀다고 생각하기보다, 아침에 일찍 기차역에 가서 구매한 누군가의 보이지 않는 치열한 노력이 그만큼 있었다고 인정하는 나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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