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귀에 눈송이

난생처음 외국인에게 귀를 맡겨보다

by 탱탱볼에세이

몇 년 전, [미운 우리 새끼] 예능 프로그램에서 이상민과 김보성이 도전해서 유명해진 것이 있다. 방비엥에서 귀 파기. 나도 도전해 봤다. 그렇다, 오늘은 방비엥 마지막 밤이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는 겁쟁이인 내게 용기를 준다. 처음은 더 신중해야하는 법. 대문에 귀따기(귀 파기)라고 한국말로 적혀있어서 그간 내적친밀감이 쌓였다. 일부러 이곳을 찾아왔다. 라오스는 미용실에서 머리커트, 헤어마사지 이외에도 네일, 귀 파기가 가능하다. 만능이다.


귀 파기 시작 전 가격을 물었다. 귀 한 쪽당 2만 낍(1,600원)에 팔 수 있단다. 난생처음 말 안 통하는 외국인에게 내 두 귀를 맡겨보는 거라 설렜다. 사장님은 헤드랜턴을 머리에 끼시고 미용실의자를 뒤로 젖혀주신다. 그리고 나를 바라보신다. 말로 해야지만 언어가 아니다. 눈빛으로 이해하고 바로 머리를 대고 누웠다. 오른쪽 귀부터 슬슬 파주신다.


일단 귀에 길을 튼다. 그러고 오케이? 물어본다. 나는 둔감한 편이라 너무 오케이였다. 그래서 베리 굳!이라고 말했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작업 시작. 대왕 귓밥을 발굴하셨는지 구경시켜 주신다. 머쓱해서 호탕하게 웃어본다.


사장님도 즐거우시겠지? 남의 귀를 한 번이라도 파본 사람은 알 거다. 마치 동굴에서 광석 캐는 기분이랑 비슷하다. 슥슥슥슥. 뭔가 엄청난 공사가 진행되는 것 같다. 궁금하지만 볼 수 없는 일이다. 오로지 소리로만 예상 가능하기 때문에 눈을 감고 귀 파주시는 걸 집중해서 들었다.


10분쯤 지났을까. 대작업이 끝났는지 마지막 먼지떨이 같은 도구로 귀 전체를 탈탈탈 수색해 주신다. 아마 무선청소기로 먼저구덩이였던 바닥을 깔끔히 흡입하면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오른쪽 귀에서 학습한 귀 파기 과정은 왼쪽 귀에서 계속된다. 귀 파주시는 걸 듣고 있으면, ASMR 같이 들려 차분해졌다. 고요함도 잠시 뿐. 여기저기 공사하는 데가 많은 지 공사차가 시도 때도 없이 지나가는 이 동네. 원래도 소리가 잘 들렸지만, 귓구멍에 스치는 손길을 더해갈수록 길거리의 소리가 귀에 팍팍 꽂혀온다. 귀 파기로 인해 청력이 1 상승한 기분.


이비인후과 가면 선생님이 시원하게 한번 후벼주실 때를 기억하는가. 그때는 먼지떨이 정도였다고 하면. 여기는 아주 본격적인 대청소를 진행해 주신다. 한편 얼마나 귓밥이 많길래 끊임없이 후벼주시는 건가 궁금하였다.


양쪽 귀를 다 파고 일어났는데, 사장님께서 의자 양쪽을 가리키신다. 어머나. 눈이 내려있다. 이게 정녕 내 귀에서 나온 귓밥인지 약간 부끄러웠다. 그래서 네일도 받았다.


호호. 사장님은 내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본인은 베트남에서 왔다고 하신다. 사장님도 이방인이셨다니. 이렇게 또 내적친밀감이 쌓였다. 네일이 끝나갈 무렵, 사장님 남편분이 미용실 뒷편 집에서 나오신다. 사장님 네 번째 손가락에 반지를 보니, 라오스 남자와 결혼하셨나 보다.


라오스 사람들은 참 부지런하다. 이 미용실은 언제 열고 언제 닫는지 모를 정도로, 매일 지나갈 때마다 언제나 열려있다. 귀파기와 네일을 모두 합해 10만 낍이 나왔다. 8천 원에 이런 호사를 누리다니. 사장님의 노고에 비하면 너무 부족한 돈이다. 얼마나 정성을 다 해야하는 일인지 충분히 알기에, 좀 더 목소리에 힘을 주어 고개 숙여 감사하다고 말씀드렸다. 덕분에 잊지 못할 밤이 되었다.


사실 귀 파는 게 건강에 그렇게 좋지는 않다고 익히 들어서 해보기 전까지 많이 고민되었다. 막상 귀 파기를 받아보니, 정말 세심하게 청소해 주셔서 그간의 고민이 눈 녹듯 사라졌다. 대신에 어디서 이런 기술을 터득하셨는지, 새삼 대단하게 느껴졌다. 생활의 달인은 우리 주위에 가까이 있었다. 새 귀를 얻은 기분이다. 이제 어떤 소리도 또렷하게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제대로 이해하는 건 다른 문제지만.


언젠가 라오스나 베트남에 여행 갈 일이 생긴다면, 인생에 한 번쯤 귀 파기에 도전해 보시라. 분명 새로운 세계를 만나게 될 것이니 말이다! 귀에 눈송이가 쌓인 것 같다면 더더욱. 집에 돌아가면, 부모님 귀를 좀 더 시원하게 잘 파드려봐야겠다. 내가 받은 소중한 경험을 나눌 생각에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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