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 낫?

목소리를 꼭 내야하는 순간이 올 때, 내가 하는 대답.

by 탱탱볼에세이

놀랍게도 요즘 내가 가장 많이 하는 말이다. 갓 퇴사하고 한 달 살기 중인 시간 부자에게 안 될 게 뭐가 있나. 친구들이 같이하자고 하면, 뭐든 알겠다고 한다. 거기다 한껏 큰 목소리로 한 마디로 덧붙인다.


“와이 낫? (왜 안 되겠어? 당연히 되지!)” 서로 모국어가 아닌 영어로 소통하기 때문에, 머릿속으로 여러 번 단어를 고심하고 문장을 지었을 것이다. 그것이 얼마나 신중하고 고단한 일임을 알기에, 짧은 영어이지만 상대방을 안심시키는 “와이 낫”을 꼭 덧붙인다.


누군가 “오늘은 어디가? 앞으로의 계획이 어떻게 돼?” 물으면 나는 “무계획이 계획"이라고 한다. 뭐든 할 수 있고, 뭐든 안 할 수 있는 일상. 때문에 친구들이 무슨 제안을 해도 “오케이"하고 따라갈 준비가 되어있다. 내가 생각해보지 못한 혼자라면 절대 안 했을 지도 모르는 친구들의 계획을 따라다니다 보면,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

지난주엔 친구가 직접 구워주는 폭립 바베큐 파티에 열심히 얻어먹었다. 새로운 친구도 생겼다. 다들 태국어로 대화하고, 나는 태국어를 모르기 때문에 소귀에 경읽기지만 일단 경청한다.


가끔 그런 나의 눈빛이 느껴지면, 친구들은 열심히 영어로 설명해준다. 어쩌다가 태국어를 눈치로 알아듣기도 한다. 그때는 짧게라도 내 목소리를 내어 반응한다. 그런 나를 친구들이 커피가족의 일원으로 받아주어 감사할 따름이다.


무엇보다 카페에서 사귄 친구들이기 때문에, 카페 사장님들이라 맛있는 커피를 매일 마실 수 있다. 치앙마이에서 태국산 원두를 한국산 로스팅 기계 (글로스터)로 커피 볶는 것도 구경하고, 로스팅 잘 안된 원두 골라내기도 하는 커피 공부는 덤.


이번 주에는 숙소 사장님 언니가 방콕에서 일본여행사를 운영하셔서, 여행사 직원들이랑 다 같이 온천에도 다녀왔다. 그들은 자기 회사가 소규모 회사라며, 드라마 스타트업의 “삼산텍(극중에서 주인공이 직접 차린 회사명)”이라고 보면 된다고 소개했다.

한밤중 깊은 산속의 어느 태국 국립 온천에 몸을 담갔다. 눈 앞에는 별이 쏟아질 듯 펼쳐졌다. 몸도 따듯해지고, 마음도 따듯해졌다. 방으로 돌아와 맥주 한잔하며 여행사 친구들과 대화를 나눴다.

요즘 송혜교가 나오는 “더 글로리”가 태국에서도 인기인가 보다. 나보다 더 어쩌면 한국 드라마 문화를 더 잘 아는 태국 친구들을 만나니, 뭔가 내가 이방인 같은 느낌이 들면서도 그만큼 한국 드라마가 세계적으로 사랑받고 있구나 뿌듯했다.


태국에서 처음으로 남자배우가 학교폭력으로 쟁점이 되는 것에 토론했다. 푹은 자기도 어릴 때 괴롭히는 친구였다고 고백하며, 그런데 그때는 그냥 웃기려고 한 친구를 놀리는 수준이었다고 말했다. 그 배우가 논란이 일자, 무조건 잘못했다고 바로 사과하는 태도가 오히려 가식처럼 느껴졌다고 한다.


“그때는 단순히 분위기를 재밌게 만들기 위해 놀리는 정도로 생각했다. 여태까지 그게 잘못인지 잘 몰랐었다.


이제서야 생각해보니, 당하는 친구는 마음의 상처를 입었을지도 모르겠다. 친구들을 웃기기 위한 말과 행동이 그것을 당하는 친구에게는 확실히 멋지지 않다는 것을 이제는 알았다.


비슷한 상처를 입은 분들이 있다면, 그것은 그 친구를 더 애정 어린 시선으로 지켜보고 웃긴 특징을 잡은 것뿐이며, 진정으로 누군가를 상처입히기 위한 것이 아니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혹여 제 말과 행동으로 인해 조금이라도 상처를 입은 분들께 사과드린다. 앞으로는 신중하겠다.” 식의 담담하고 진솔하게 보여줬어야 한다고 푹이 말했다. 그 배우가 bully(약자를 괴롭히는 자) 선배님인 자기를 사과 대응 매니저로 고용했어야 하는 거 아니냐며 농담을 덧붙였다.


우리나라에서도 한동안 학교폭력으로 논란이 된 연예인들이 우르르 터져 나왔을 때가 생각났다. 우린 그런 연예인들은 한동안 매체 출연이 배제된다고 설명했다. 한국에서는 어릴 때부터 이웃 나라 일본의 집단 따돌림 사례를 들며, 공개적으로 1명을 마음으로든 신체적으로든 상처입히는 학교폭력은 절대 있어서는 안 된다고 교육받았기 때문에 누군가를 지목해서 다 같이 놀리는 일부터 아예 지양했다고 말했다. 어디까지가 농담이고 어디까지가 폭력일지 구분이 어렵지 않나.


내가 상대방에게 우스갯소리로 말했다고 하더라도, 듣는 상대가 마음을 다쳤다면 그것 자체가 폭력이리라. 우리는 그렇게 대화를 통해, 상대방의 태도에 따라 학교폭력이 되는 게 아닐지 결론에 이르렀다. 태국에서는 이제야 학교폭력에 관해 대화를 시작했다고 하니까 새로웠고, 당연하게 학교폭력은 없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럼 학교폭력이 어디까지인지 새로 고민해볼 수 있어 색다른 시간이었다.

어제는 재래시장부터 대형마트까지 친구들따라 장을 보러다녔다. 저녁에 숙소 손님들과 여행사 직원들 모두 다 함께 옥상에서 바비큐 파티를 위한 것이었다. 숙소에 방이 4개뿐인데, 2개 방 손님이 일본인이었다. 거기다 일본여행사 직원들이 있으니까 일본어, 태국어, 영어가 오갔다.


고기를 구워 먹다가, 태국인 중에 소고기, 양고기, 말고기 같은 건 냄새나서 못 먹는 사람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같이 있던 후아도 그 중 하나였다. 푹은 알고 보면 태국 음식이 가장 짙은 향을 풍기는 것들이 많은데, 닭, 돼지고기는 괜찮고 소고기부터는 냄새때문에 못 먹는 게 이해가 안 간다고 말했다.


나는 “혹시 뼈가 굵은 고기들은 냄새가 심해서 그런 게 아닐까?” 질문을 던졌다. 푹이 일리 있는 추론이라고 호응했다. 이런 대화가 모두에게 전해지도록 일본어로도, 태국어로도 서로 설명해주는 상황이 재밌었다.


친구들은 월요일부터 다시 일해야 한다고 일요일인데도 아침 일찍부터 방콕으로 출발했다. 원래 혼자였던 나는 다시 또 혼자가 되었다. 숙소에서 1시간 정도 걸어서 도착한 카페에서 일주일의 일들을 돌아보며 글을 쓴다. 아침 8시 33분부터 낮 3시 33분까지만 운영해서 카페가 끝나기 전에 마감을 하겠다는 약간의 긴장을 더한 채.

사실 이번 주에 나에게 열심히 매깜뻥 폭포를 구경시켜주기 위해, 큰 오토바이를 빌려와서 2시간이나 오토바이 운전해 준 친구가 있었다. 덕분에 장기간 80km로 달리는 오토바이 뒷자리에 타보는 새로운 경험을 했다. 고마운 마음에 최대한 그날의 식사비용은 내가 부담했다.


하루 뒤, 갑자기 일이 생겼다고 15만 원 정도를 빌려줄 수 있겠냐고 인스타그램을 통해 물어봤다. 이틀 뒤에 바로 갚겠다며. 파티에서 처음 알게되고 3일밖에 안됐던 때였다. 언제나 알았다고, “와이 낫?”이라 힘주어 말하던 내가 단호하게 “미안하지만 안 되겠다”라고 처음으로 거절했다. 시간 부자이지만, 돈부자는 아니기 때문에 계산하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온천여행부터 바베큐파티까지 황송한 한 주였다. 숙소 사장님께는 어떻게 은혜를 갚아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사장님은 자기 손님이라 값을 치르지 않아도 괜찮다고 하며, 나를 모든 행사에 참여시켜주셨다.

돌아오는 주에 중국 신년 휴가로 예약이 넘친 문제가 생겼다. 숙소에 방이 부족한 것이다. 그간의 대화를 통해, 그때 내가 빠이로 여행 간다고 알고 계셨다. 혹시 여행 가 있는 동안, 방을 비워줄 수 있겠냐고 돈은 돌려주겠다고 조심스레 물어보셨다. 나는 어느 때보다 큰 목소리로 “와이 낫? “이라고 말했다. “어차피 비워둬야 하는 방이었다. 돈은 괜찮다"라고 재빨리 대답했다. 덕분에 공짜로 탑승한 온천여행의 짐을 조금이나마 내려놓았다.


회사 다닐 때는 집에서 카메라를 하루 종일 켜놓고 일하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소리 버튼은 대부분 꺼두었다. 대화 중에 대답이나 꼭 발언이 필요한 순간 빼고는 절대 소리를 내지 않았다.


출근해야 할 곳이 없고, 카메라를 하루 종일 켜지 않아도 되는 지금. 한국보다 2시간 느린 태국에서 이제는 목소리 버튼을 켜보려 한다. 나만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친구 앙에게 배운 새로운 태국어 표현과 함께 힘차게 외쳐보면서!


“낀 러이!(밀고 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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