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 한 번쯤은 빠이

이렇게 산을 오랫동안 가만히 바라본 적이 있었던가

by 탱탱볼에세이

아이러브치앙마이

태국여행이 이번이 세 번째다. 치앙마이는 태국올 때마다 왔다. 다들 휴양하러 가는 푸껫이나 파타야나 끄라비 같은 바닷가로 갈 법도 한데 아직 해변은 안 가봤다. 태국 북부에 위치한 치앙마이는 큰 산도 없고 바다도 없다. 거기다 방콕에서도 멀다.


내가 치앙마이를 좋아하는 이유는 특별히 꼭 해야 할 게 없기 때문이다. 이건 꼭 해야 한다. 이거 안 하면 거기 간 거 아니라는 둥. 이미 먼저 다녀온 누군가에 의해 나의 여행이 이렇다 저렇다 평가받고 싶지 않다. 강박에 사로잡혀 투두리스트 지우기 여행은 부담되어 싫다. 그냥 눈 떴을 때 발길 닿는 대로 가고 싶은 몇 곳만 여유롭게 슬렁슬렁 가고 싶다. 그것이 이번 6개월간의 장기여행 시작지로 치앙마이를 택한 이유다.


그동안 빠이를 오지 않은 이유

벌써 세 번째 태국여행인데, 그간 빠이에 올 생각을 한 적이 없다. 치앙마이에서 봉고차 타고 세 시간만 달리면 빠이에 올 수 있는데도 말이다. 방콕에서는 열세 시간 걸려서 야간열차 타고도 치앙마이에 오면서 여행방식에 일관성이 없지 않은가.


약간의 변명을 해보자면, 빠이에 오려면 762개의 꼬부랑 길을 지나와야 한다. 상당히 와리가리가 반복되는 운전에 멀미를 느끼기 쉽다. 악명 높은 꼬불길에 지레 겁을 먹었음을 고백한다. 다행히 나는 모든 통증들에 둔감하고 그마저도 쉽게 잘 잊는다. 덕분에 무사히 빠이에 올 수 있었다.

빠이는 맥도널드도, 빅씨 같은 대형마트도 없다. 내가 필요한 게 있을 때, 바로바로 구할 수 있는 도시가 좋다. 그간 내가 빠이행을 굳이 택하지 않은 특별하지 않은 이유들이다.


빠이로의 초대장

아는 언니가 빠이에 3년째 살고 있어서 빠이를 찾아왔다.

이제껏 “거긴 갈 곳이 못된다”라는 얘기가 없는 곳. 히피들의 천국이고 배낭여행자들의 성지. 그간의 명성답게 나에게도 안식처가 되어주었다.

왜 다들 빠이에 오는가

그간 왜 그렇게 다들 빠이를 예찬하나 싶었다. 와보니까 확실히 알겠다. 우선, 봐도 질리지 않은 자연이 있다. 첩첩산중이랄까. 앞을 봐도 산, 뒤를 봐도 산이다.


켜켜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산을 배경으로 해가 서서히 넘어가는 해 질 녘을 골든타임동안 바라보고 있노라면 특별히 뭔가 하지 않아도 마음이 평안하고 그 시간이 참 소중해진다. 사실 한국에서도 해는 지는데, 해 지는 걸 넋 놓고 지켜볼 여유가 없었어서 그랬던 걸까. 이렇게 산을 오랫동안 가만히 바라본 적이 있었던가.


우리는 모두 친구

빠이에는 2가지 부류가 있다. 친구와 앞으로 친구가 될 친구. 그만큼 동네가 작아서 한 두 번 안면 트다 보면 친구의 친구고 그렇게 다들 친구가 된다. 이웃사촌이라는 말이 그 어느 곳보다 잘 어울린다.

동적이면서 정적인 곳

낮에는 히피스러움이 밤에는 다양한 음악의 리듬이 이 마을을 풍요롭게 한다. 뭐 별 거 안 하는데 세상 재밌게 낮 시간을 즐긴다. 밤에는 둠칫둠칫 리듬을 맡길 수 있는 공연들이 곳곳에서 연주된다. 그날의 기분에 따라 정적으로 보낼지 동적으로 보낼지 내가 정할 수 있다.

코끼리마을

왜 빠이가 빠이일까 궁금했는데, 전쟁에 동원되는 코끼리를 기르는 마을이었다고 한다. 빠이 이름도 수컷 코끼리를 뜻하는 쁠라이에서 유래된 것.


코끼리가 시내에서 안 보여서 이제는 없나 보다 했는데, 빠이에서 살고 있는 언니 덕분에 코끼리를 볼 수 있었다. 읍내에서 20분 정도 달리면, 코끼리를 곳곳에서 키우고 있어서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코끼리는 진짜 컸다. 코가 길쭉했고. 풀을 뜯어먹더라.

빠이가 더 빛나는 이유

밤 되면 별천지가 되는 이곳. 빠이를 존중하고 사랑하는 빠이 주민들이 있기에 더 빛난다. 개발을 위해 자연을 훼손하고 생명을 죽일 수는 없는 법. 고속도로가 뚫리지 않고 층 높은 건물과 고급 유명 리조트나 호텔이 들어서지 않고 빠이다움을 오랫동안 지킬 수 있던 것은 도시개발계획 입법에 힘쓴 주민들의 노력이 있었다.

빠이토피아

지금도 소가 풀 뜯어먹고 닭이 꼬꼬댁 거리는 논밭에 산 멍 때리기 좋은 뷰 카페에 아이스아메리카노 한 잔 시켜놓고 누워있다. 한국인 사장님이 운영하시는 곳이라 그런지 아님 한국 시골에서 비슷하게 볼 수 있는 풍경이라 그런지 한국 같다. 겨울인 1월에 오니까 비도 안 내리고 햇빛도 바람도 적당해서 빠이는 정말 유토피아처럼 느껴진다. 강렬하고 뜨거운 햇빛을 쬐고 문득문득 비를 쏟아내는 우기에 왔다면 몰랐을 감정이다.


나비효과

빠이에 있다 보면 옥수수를 기르기 위해 밭을 태우는 일을 심심치 않게 목격할 수 있다. 이 때문에 공기가 심각할 정도로 뿌얘지고 있다. 지형 자체가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화전으로 인한 미세먼지가 외부로 빠져나가지 못하기 때문이란다. 코로나 이전부터 미세먼지가 심한 봄이 되면 마스크를 쓰는 게 자연스러웠다고 한다.


태국의 식품 대기업 CP가 돼지사료로 옥수수를 무제한으로 사들이고 있어 대규모 농사를 위한 화전이 활성화되고 있다. 고산족들은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옥수수 밭과 숲을 태워 경작지를 넓힌다고 한다. 태국 사람들의 노력으로 화전은 불법이 되었지만, 인접국가인 라오스와 미얀마에서 오히려 더 화전이 성행하게 되어 상황은 점점 더 악화되고 있다.


인간이 고기를 먹기 위해 옥수수를 기르고, 옥수수를 기르기 위해 밭을 태우고, 태운 연기가 공기를 악화시키고 그 안 좋은 공기를 마시고 급하게 키운 건강에 좋지 않은 고기를 먹는 인간.


화전 하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목격하니 실제로 3월의 빠이를 본 적은 없지만 조금은 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앞으로 고기 세 번 먹을 것을 한 번으로 줄여볼 일이다.

잠시만 빠이

스치듯 빠이에 와서 3박 4일만에 빠이할 빠이가 아쉬워서 빠이에서 느낀 짧은 감회를 적어봤다. 태국물가를 체감하려면 바트에 00을 붙이면 된다는 꿀팁을 배웠다. 우리나라 환율 계산할 땐 곱하기 40만 해서 싸다 싸하고 안일하게 생각했는데, 태국 사람들 생활하는 시선으로 보니 더 이상 저렴한 게 아니었음을.


확실한 것은 빠이에 오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누워서 자연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언니의 애정 가득한 빠이에 초대될 수 있어서 즐거웠다. 많은 여행자들이 동네에 애정을 느끼는 이유는 이곳 사람들의 행복한 표정 덕분이 아닐까.

근데 가만히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환경에 계속 있다 보니 뭐라도 사부작사부작 시작하고 싶어 진다. 아무래도 나 도시체질인 거 같다! 곧 도시에서 다시 만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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