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한마디의 파급력
10일간 엄마와의 다낭여행이 끝났다. 엄마는 한국으로 복귀했다. 다음 주면 나도 그리스로 떠난다. 엄마랑 꽤 오랫동안 같이 있다가, 갑자기 다시 혼자가 되니 마음이 싱숭생숭하다. 거의 매일 브런치 글을 써왔다. 최근 며칠간은 글을 쓰지 못했다.
한달살이 막바지가 되니까, 어떤 글을 써야 할지 모르겠다. 가끔 이렇게 길을 잃는다. 지난밤, 열심히 누군가 내 지난 글들에 좋아요를 눌렀더라. 아빠 계정으로 누른 엄마였다. (브런치는 작가만 좋아요 누른 사람을 확인할 수 있다.) 엄마가 쏘아 올린 작은 공에 오랜만에 노트북을 켰다.
엄마랑 단둘이 여행해 본 적이 있는가? 2년 전에, 제주도 올레길을 같이 일주일간 걸었던 것이 모녀여행의 시작이었다. 회사에서 일하던 엄마를 꼬셔서 갑작스레 떠난 길이었다. 엄마는 이미 산티아고 순례길을 먼저 걸어본 딸을 믿고 따랐다. 그때도 내가 잘 다니던 회사를 무작정 그만두었던 상황이었다.
모르는 길을 엄마랑 함께 걷는다는 것. 겁이 많은 엄마지만, 걸을 때의 발걸음만큼은 누구보다 힘차다. 그녀의 에너지가 나를 더 힘차게 걷게 했다. 여행하는 동안 엄마랑 나랑 성향이 많이 다르다는 걸 알게 됐다. 엄마는 걱정이 많고, 신중하다. 나는 걱정이 없고, 깊게 생각하기보다 빠르게 행동하는 편이라는 것을.
엄마가 이번엔 혼자서 용기 있게 다낭으로 오셨다. 처음으로 해외에서 엄마랑 단둘이 한 여행이었다. 부모님은 모름지기 여행은 직접 높은 곳에 올라가 보고, 걸어보아야 알 수 있다고 생각하신다. 그래서 엄마랑 이번에도 하루에 1만 보 이상은 무조건 걸었다. 사실 나는 등산이나 걷기를 그렇게 즐겨하지 않는다.
마지막 날도 아침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해변을 걸었다. 숙소에서 5분 거리면 바로 만타이 해변이다. 우리는 슬렁슬렁 바다를 만끽하며 논느억 해변까지 향했다. 바닷길을 걷는 경험이 특별해서 엄마가 많이 좋아하셨다. 걸으면서 조금 고생은 했지만, 고생한 만큼 기억에 오래 남을 것이라고.
걷는 내내 이야기도 많이 나눴다. 엄마는 내가 또 갑자기 회사를 그만두고 6개월이나 해외여행을 한다는 것이 많이 걱정되었다고 했다. 물론 딸이니까 응원한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꼭 한번 순례길을 걸어보고 싶다고 하셨다.
돌이켜보면, 나의 산티아고 순례길의 시작은 엄마의 한 마디였다. "산티아고 순례길이 있다는데, 걸어보는 게 어때?" 산티아고 순례길이 어떤지 잘 찾아보지 않고, 그냥 산티아고 순례길의 시작마을인 프랑스 생장 피드 포흐로 향했었다.
엄마가 쏘아 올린 작은 공에 나는 많이 영향을 받은 것을 알게 됐다. 중학교 때 환경기자부터 청소년운영위원회, 대학교, 순례길까지. 엄마의 한 마디에 나는 새로운 길을 알게 됐다.
새로운 길을 혼자 씩씩하게 가보며 자연스레 깨닫게 됐다. 남들이 다 가는 길 말고도 세상에는 다양한 길이 있음을 말이다. 내가 가는 길이 다들 가는 길은 아니지만, 틀리지 않다는 것도.
엄마에게 나의 길을 설명했다. 그리고 책을 출판하는 작가가 되면, 산티아고 순례길을 같이 걷자고 약속했다. 그러니 지금의 나의 상황에 더 이상 불안해하지 말라고 말했다. 엄마는 내 브런치 글이 올라오지 않는 날이면, 무슨 일 있나 걱정된다고 했다.
다시 하루에 한 편씩 글을 쓸 것이다. 글을 잘 써지든, 못 써지든 말이다. 그것만이 내가 나의 길을 걷고 있다고 꾸준히 말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