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인들의 최애휴양지
아테네에서 5시간 버스 타고 레프카다에 도착했다. 버스 타고 올 수 있는 몇 안 되는 섬이다. 몇 달 전부터 에어비앤비로 한 달에 400유로 현금으로 내고 살기로 조율했고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왔다.
확실히 내가 기대한 그리스의 자연이 여기에 있다. 흉측한 그라피티도, 더럽고 찌든 냄새도, 암울한 표정의 그리스인도 여긴 전혀 없다. 푸릇푸릇한 산과 바다가 끝없이 펼쳐져 있을 뿐이다.
아테네 있는 동안 버려진 도시 분위기에 짓눌려 항상 긴장 상태에 있었는데 벗어나니 편안함을 느꼈다. 숙소 위치도 버스터미널 근처 시내 중심이라 잘 잡았다고 안심했다.
기쁨과 안도도 잠시. 대화해 보니 주인이 멘털이슈로 에어비앤비 더 이상 안 한단다. 최대 5일이나 일주일까지만 있을 수 있고, 하루 30유로에 살라고 해서 멘털이 붕괴되었다. 그 얘기를 듣자마자 여기를 뜨고 싶어졌다. 그때부터 이것저것 궁리하느라 글을 쓸 겨를이 없지만 그래도 하루에 글 하나를 꼭 쓰자는 건 나와의 약속이니 짧게라도 남겨본다. 인터넷도 안 되는 숙소ㅠㅠ
복잡해진 마음에도 배가 고팠다. 짐이라도 줄여보고자 외출하지 않고 베트남에서 챙겨 온 라면을 끓였다. 나 라면 많다고 라면 먹고 싶으면 주인 것도 끓여줄까 했는데 밥 먹었대서 내 것만 끓였다. 냄새가 맛있어 보였는지 아님 내가 눈앞에서 맛있게 먹었는지 뒤늦게 호기심을 갖더라. 그래서 내 라면 다 먹고 하나 끓여줬다. 맵지만 맛있다고 다 먹었더라. 심지어 국물에 치즈도 빠뜨리는 응용력도 보여줌. 한국에서도 그렇게 먹는다고 알려줬다. 그게 바로 치즈라면이라고. 한국의 라면맛을 머나먼 그리스 섬 아저씨에게도 전할 수 있어서 뿌듯했다.
샤워하려면 주인한테 따뜻한 물 틀어달라고 해야 돼서 굉장히 난감했다. 거기다 틀고 15분 기다려야 따뜻한 물이 나온단다. 이걸 몰라서 거의 찬 물에 씻었다. 돈 내고 주인 눈치 봐야 되는 에어비앤비의 단칸방 살이 1일 차. 처음으로 네고 성공한 줄 알았는데 와보니 허탕이라 난감한 하루였다. 얼른 이 늪에서 도망가야지. 무사히 새로운 집을 찾아서 정착할 수 있기를. 종교는 없지만 기도해 본다.
(추신: 아침에 아테네에서 처음으로 그릭요거트 먹고 이 세상에 태어나길 잘했다고 생각함. 꿀, 요거트, 견과류의 조합이 환상적이고 경이로운 맛이다. 위험한 지역에 있는 요거트집인데 목숨 걸고 가길 잘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