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페리로 국가 이동하기
지난밤 그리스 이구메니차에서 이탈리아 바리 행 페리에 탔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타있었다. 페리가 유럽을 넓게 돌아서 내가 타는 건 극히 일부분이구나를 그때 알았다. 특히 학생들 그룹이 상당히 컸다. 아무래도 할인을 받을 수 있어서 단체로 오는 듯하다. 페리에 따로 객실을 예약하지는 않았다. 페리 탑승가격의 2배이기 때문이다.
머리만 닿으면 어디든 잘 자기 때문에 돈을 아낄 수 있었다. 페리에 타니, 푹신푹신한 소파자리가 많이 준비되어 있었다. 잠자리가 부족하거나 불편해서 못 자는 일은 특별히 없다. 다만 불이 계속 켜져 있어서, 밝은 불빛 때문에 잠을 못 드는 사람이라면 안대를 준비하는 것이 좋겠다.
콘센트를 꽂을 수 있는 곳을 찾아 자리를 잡았다. 자는 동안, 핸드폰을 충전시켜야 어디든지 갈 수 있다. 이탈리아에 내려서 아무것도 모르는데 핸드폰 배터리까지 없다면 정말 아찔하다.
페리를 타고도 준비하는 데 오래 걸리는지, 한 시간이나 늦게 출발했다. 그래도 뭐 나는 잘 탔으니 상관없었다. 페리에서는 와이파이가 무료일 줄 알았다. 그럴 리가. 비행기처럼 인터넷 요금제를 판매하고 있었다. 다행히 유럽 쓰리심을 한국에서 미리 구매해서 국경을 이동해도 아무 걱정 없이 인터넷을 쓸 수 있다.
쪽잠을 자고 눈을 뜨니 이탈리아였다. 일어나자마자 세수하고 양치했다. 샤워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개운했다. 어차피 바리에 도착하면 숙소가 있으니 옷만 갈아입었다. 집 있는 2일 동안 열심히 씻어야지.
바리에 도착한 시간은 아침 9시. 그리스보다 이탈리아가 1시간 늦다. 그래서 어제 1시간 늦게 출발해도 제시간에 도착했나 보다. 슬슬 터미널에서 걸어가면 10분 만에 시내에 접근할 수 있었다.
아테네에서 그라피티를 많이 보다가 와서 그런지 중세중세한 건물들이 많이 보여서 눈이 돌아갔다. 그래 내가 기대한 유럽이 바로 이거잖아. 나 이탈리아 왜 이제야 온 걸까. 진작 와볼걸.
알고 보니 내가 도착한 바리가 이탈리아 남부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로 손꼽힌다고 한다. 성벽이 보여서 올라갔더니 성벽 위에서 바라본 바다가 더 멋있었다. 지도를 켜지 않고 발길 닿는 대로 가본다.
조금 더 걸어가니 유명한 성 니콜라스 유해가 묻힌 성 니콜라스 성당이 나왔다. 성당에 들어가서 잠시 기도했다. 여행은 무계획이지만 어떤 경험이든 잘 소화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잠시 시간이 멈춘 듯했다. 성당 밖을 나서려고 뒤를 돌아봤는데, 신부님께 누가 고해성사를 하고 있더라. 고해성사하는 거 드라마나 영화에서만 봤었는데, 실제로는 처음 봐서 신기했다.
아기자기한 몇백 년의 돼 보이는 돌건물들이 작은 동네를 형성하고 있었다. 빨래를 발코니에 널어둔 것이 반가웠다. 스치는 바람에 빨래의 뽀송뽀송한 냄새가 제법 향긋했다. 걷다 보니 과일도 팔고, 기념품도 팔고 소도시 풍경이 반가웠다. 어떤 빵집은 관광객들이 줄 서서 기다리더라. 맛집인가 싶어서 내일 방문을 기약해 본다.
10분쯤 걸어 나오면, 현대적인 거리가 펼쳐진다. 유명 브랜드들이 즐비하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데, 모두 걸어서 다닐 수 있어서 편안하다. 카페에 들어가 에스프레소 한 잔, 카페라떼 한 잔, 크로와상 한 개를 주문했다. 에스프레소가 쓰지 않고 맛이 진해서 이탈리아에 온 것이 실감이 났다. 한 모금 마시고 설탕을 타니 또 다른 풍미가 올라와한 잔만 마시기 아쉽더라. 이탈리아에 있는 동안 매일 에스프레소 마셔야지.
에어비앤비 숙소를 2박 예약했다. 빨래도 하고, 요리도 할 수 있고 무엇보다 내 개인 방이 있어 편하다. 물론 화장실은 공유해야 하지만. 오후 5시에나 체크인을 할 수 있어서 시간이 어중 띄었다. 근데 개인카페에서 시간을 죽 치고 있긴 뭐해서 맥도널드에 갔다. 역시 이럴 땐 다국적기업이 정말 든든하다.
맥도널드는 소풍 온 초등학생 그룹으로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선생님들도 정신없는 아이들을 자제시키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다.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못 알아듣는데, 딱 한마디 알아들었다. "피아노. 피아노." 애들아 진정해 이런 뜻으로 알아들었는데, 이탈리아어로 천천히라는 의미라고 한다. 이렇게 정신없는 상황 덕분에 이탈리아어를 하나 배웠다.
맥도널드에서 감자튀김 위에 베이컨조각을 얹고 체다치즈를 더한 메뉴를 팔고 있더라. 궁금해서 사 먹어봤다. 한국돈으로 6천 원 돈인데 술안주였다. 맛있긴 한데 비싸다는 느낌이 강했다. 사실 아까 먹은 커피 2잔에 빵 하나 값이랑 똑같다.
콘센트 꽂을 수 있는 자리에 앉아서 다음 여행지를 어디로 갈지 구상했다. 일단 busradar라는 사이트에서 야간버스로 이동할 수 있는 곳을 찾았다. 로마가 제일 만만했다. 그래서 로마행 버스표를 구매했다. 이탈리아에는 ita버스라고 트랜이탈리아라는 이탈리아 철도회사에서 운행하는 버스가 일반적이다. 많은 노선 덕분에 저렴한 가격에 도시 이동이 가능하다.
그럼 로마에서 숙박을 하면 얼마인지 찾아봤다. 평점이 좋지 않은 숙소들이 하루에 5만 원이 넘더라. 그래서 또 야간버스로 이동할 수 있는 도시들을 물색했다. 근데 가장 저렴한 가격은 며칠 지나고서야 있어서 로마에서 숙박을 해야 했다.
한 시간 넘게 많은 검색 끝에 로마에서 당일치기 후 바로 이동할 수 있는 도시를 찾았고 다시 버스표를 끊었다. 이제는 그 도시에서 숙소를 구한다. 숙소가 마땅히 없으면 또 야간이동할 만한 도시를 찾는다. 이렇게 유럽 전역을 눈만 감았다가 뜨면 왔다 갔다 할 수 있다.
그렇게 혼자 경우의 수를 따져보다가 체크인 시간이 되었다. 맥도널드에서 숙소까지 20분 정도 걸어왔는데, 정원이 잘 되어 있더라. 숙소는 중앙역 근처라 좋았다. 중앙역 근처에 오니까 낡은 건물들에 그라피티가 많이 되어있고, 노숙자도 누워있고, 새똥도 많아서 당황했다. 근데 그리스랑 똑같이 황폐한 느낌이 왜 안 드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사람들의 얼굴표정이 때문이 아닐까. 이탈리아는 다들 얼굴이 밝다.
숙소는 돈 쓴 만큼 좋았다. 방이 3개라 사람도 3명인데 운 좋게 다 여자끼리 지내게 됐다. 아르헨티나에서 오신 엄마뻘 아주머니, 캘리포니아에서 온 내 또래 제니다. 아르헨티나 아주머니는 스페인어랑 이탈리아어밖에 못하시고, 제니는 이탈리아를 조금 할 줄 알았다. 우린 구글번역기를 켜고 이탈리아어를 영어로, 영어를 이탈리아어로 번역해서 소통했다. 그래도 산티아고 순례길 걸을 때 한 달 동안 스페인어 단어를 조금 익혀둔 것이 대화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더라.
아주머니는 이틀 전에 바리에 왔는데, 토요일이라 열쇠 찾는 걸 도움을 못 받아서 집에 못 들어오셨다고 한다. 밤이라 우편함에 열쇠 찾는 건 어렵지. 메시지 보내도 답장이 없어서 애먹으셨다고. 근처 비싼 호텔에서 주무셨다고 하셨다. 안타까웠다. 숙박업을 하면서 휴일을 지키다니. 에어비앤비가 어려운 점이 이런 부분인 것 같다. 열쇠 못 찾은 건 자기 잘못이라 환불도 못 받으셨다고 한다. 정말 한국에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다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아주머니는 피곤한 주말을 보내서 내일은 좀 쉬신단다.
다들 처음 지내는 숙소라 어려운 점이 많다. 호스트가 나름 설명해 주고 갔지만. 열쇠로 문 여는 것부터 부엌 인덕션 켜는 법, 세탁기 돌리는 것까지. 사소한 것 하나하나가 어렵다.
콘센트 꽂는 형태가 이탈리아는 다르더라. 따로 변압기를 안 챙겨 왔는데 당황했다. 그래도 제니의 도움을 받아서 숙소에 콘센트 헤드가 있는 걸 찾아서 핸드폰은 충전할 수 있게 됐다. (아까 맥도널드에서는 콘센트 잘 꽂아져서 전혀 예상 못했다. 급하게 충전이 필요하면 맥도널드로 가야겠다. ) 이렇게 서로가 서로를 돕는다.
어제 하루 숙소 없이 지냈을 뿐인데, 숙소가 생기니 정말 소중하다. 같이 지내는 사람들도 좋아서 다행이다. 다들 시간의 조급함이 없는 여유로운 여행 일정이라, 같이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며칠이지만 묵혀두었던 빨래를 깨끗하게 해내니 또 여행을 떠날 기운이 난다. 함부르크에 사는 정민언니가 연락이 와서 언제든 와서 한 달 살고 가도 된다고 말해줬다. 고마웠다. 아무것도 정해놓지 않은 유럽여행이지만 퍽 든든해졌다.
주말부턴 또 숙소도 없고 가야 할 곳도 아직 정하지 못해서 불안하다. 하지만 정해진 게 없으니 또 뭐든 내가 선택하는 대로 어디든 갈 수 있다. 내일은 또 어떤 일이 일어날까 기대감으로 아침에 눈을 뜰 수 있는 지금의 여행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