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파리 체크인

전기자전거 타고 동네구경

by 탱탱볼에세이

눈 떠보니 파리 도착.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지난밤 야간버스를 타고 왔다. 아무래도 국경을 넘는 버스라 티켓 검사할 때 여권도 같이 보여줘야 했다. 절대 이미지파일은 안 되고 꼭 실물 여권이나 서류를 요구하더라. 이미지파일만 있어서 버스를 못 타는 사람이 생겼다.


옛날엔 이런 검사가 없었는데, 살벌한 분위기에 나도 덩달아 긴장됐다. 아니나 다를까 이탈리아에서 프랑스 국경 넘어갈 때 경찰이 버스에 들어와 한 명씩 여권과 비자검사를 했다. 서류만 가지고 여권이 없는 사람이 불려 나갔다. 다시 원래 자리로 못 돌아온 걸 보면 아마 국경을 넘지 못했으리라 짐작되어 안타까웠다.

무사히 국경을 넘어 파리에 도착했다. 야간버스를 타고 나라를 왔다 갔다 넘어 다닐 수 있다니 즐거운 일이다. 눈만 감았다 뜨면 나라가 바뀌고 언어가 바뀌니 얼마나 새로운가. 파리는 독일 자브리켄에서 살 때 자주 왔었다. 독일 자브리켄은 프랑스 접경지역이라 파리를 쉽게 올 수 있었다. 실제로 지역은 독일인데 베를린보다 파리가 더 가까운 거리라 파리가 더 친근했다.

유럽은 공유킥보드, 공유자전거 서비스가 활발하다. 얼마 전에 파리에서 설문조사를 했는데 전동킥보드를 퇴출시키는 여론이 많아 결국 퇴출시키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번 여름 이후면 파리에서 전동킥보드가 사라질지도 모르겠다. 짐이 많고 전동킥보드는 한국에서도 안 타봐서 상대적으로 안전한 전기자전거를 대여했다. 버스 터미널에서 숙소까지 걸어서 1시간 40분이 걸리는데 체크인 시간에 맞추려면 자전거라도 타야 했기 때문이다.

전기자전거 성능이 아주 좋았다. 페달만 밟으면 슝슝 앞으로 나갔다. 내 자가용보다 더 잘 나갈 정도로 파워가 대단했다. 오르막길도 걱정 없었다. 근데 그럴수록 더 긴장되더라. 길도 모르고 신호도 신경 쓰고 차와 사람이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파리는 자전거도로가 잘 정비되어 있었다. 그래서 어렵지 않게 도로만 따라다니면 되었다. 자전거를 잘 타는 프랑스인을 졸졸 따라가기도 했다. 대중교통보다 자전거 대여요금이 비싸다. 그래도 소매치기 걱정보다 주변 경치를 둘러볼 수 있는 여유와 낭만이 있었달까.


파리는 하루만 숙박해야 하는데도 요금이 엄청 비쌌다. 그나마 빨래 가능한 숙소 중에 제일 저렴한 곳을 선택했다. 이미 여러 번 와봐서 어디든 갈 수 있겠다는 생각에 위치를 보지 않고 골랐다. 생각보다 파리 외곽으로 숙소를 잡았더라. 숙소까지 가는 자전거대여비 생각하면 가까운 숙소를 잡는 비용과 동일해졌다.


하지만 덕분에 파리의 새로운 면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좋은 숙소를 잡았다면 에펠탑 주변의 중심부만 구경했을 것이다. 자전거 타면서 길거리 시장도 구경하고 이 동네는 처음 와봤다. 관광지가 아니라 사람 사는 동네라 아기자기한 맛이 있더라.


숙소가 완전 공동묘지 바로 앞이라 신기했다. 옛날에도 파리행 버스를 타기 위해 공동묘지 앞 버스정류장에 가야 했던 추억이 떠올랐다. 제일 저렴한 표 예약했다가 새벽에 외진 곳이라 갈 수 있는 방법이 택시밖에 없었다. 결국 저렴한 버스를 타려다가 택시비가 더 들었던 것이다. 나이를 조금 더 먹어도 똑같이 저렴한 걸 찾는 걸 보니 판단력을 더 길러야겠다.


숙소에 오니 호스트가 보여준 사진 그대로다. 이층 침대 하나, 싱글 침대 하나, 소파베드 하나. 이 층침대의 2층은 한 명이 자고 있었고, 남은 침대 중 호스트가 고르라고 했다. 제일 편안해 보이는 창가자리 싱글 침대를 잡았다. 근데 이미 거주하는 외국인 남성의 냄새가 나서 침실에 쉽게 들어갈 수 없었다. 우선 부엌 녘에 식탁에 앉아 짐을 정리했다.


침실 안쪽에 샤워실이 있어서 샤워하고 나왔다. 알고 보니 이층침대에 2명이 있었다. 남녀커플이 나란히 방에서 나온다. 너무 자연스러워서 특이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내가 불편했는지 금방 집을 나갔다.


집에서 혼자가 된 나. 오히려 좋아. 오늘의 임무인 빨래를 돌려본다. 아마 순례길을 시작하면 계속 손빨래를 해야 할 것이다. 이번이 마지막 세탁기 빨래일 가능성이 컸다. 2시간짜리로 돌린다.

빨래를 돌리며 여행경비를 정리했다. 매일 얼마나 돈을 썼는지 빠짐없이 기록한다. 기록하면 내가 어떤 부분에 보통 돈을 쓰고, 함부로 돈을 쓴 항목에 대해선 죄책감을 느낄 수 있다. 그래야 예상지출액을 예측할 수 있고, 앞으로의 과소비를 절제할 수 있는 현실적인 이유가 생긴다.


최근 며칠간 집 없이 버스로 이동해서 기록한 금액에 오차가 발견되었다. 어디서 잘못 기록했는지 찾는다. 잘못된 것을 끝까지 찾아서 바로 잡았을 때의 희열감이 상당하다. 동남아에서 한 달 풍족하게 살 돈을 유럽에서 아끼고 살았는데도 10일 만에 사용했더라.


동남아와 유럽 물가의 격차를 피부로 느끼는 중이다. 유로가 계속 하루가 다르게 환율이 오르고 있어, 죄책감이 심하다. 동남아에서 상대적으로 숙소도 한 달씩 잡고 한국보다 저렴한 물가에 안정적으로 살아와서 벌써 그 시절이 그립다. 여행경비가 부족한 것은 아니지만 이번 여행 이후에도 다음 여행을 준비하기 위해서 최대한 아끼고 싶다.

빨래를 널고 동네를 구경했다. 마트를 갔더니 내년 파리올림픽 인형이 있더라. 에펠탑을 배경으로 선수뿐 아니라 일반인까지 함께 참여하는 올림픽을 기획 중이라고 하니 기대가 된다. 길거리 그라피티를 보는데 파리 그라피티는 확실히 멋있다. 흉측한 그라피티를 보다가 예술적인 그라피티를 보니까 색달랐달까.

짐이 없으면 구경을 좀 할까 싶었는데 빨래가 잘 마르려나 걱정이 되었다. 혼자 있는 숙소도 아니고 하루만 머무는 곳이라 간단히 음식을 사서 바로 돌아왔다. 히터 앞에서 고기 굽듯이 양말을 말렸다.


유럽에선 여행을 한 도시에 머물렀던 동남아에서와는 다르게 계속 이동해보려 한다. 순례길을 시작하기 위해 내일 밤 또 버스를 탈 예정이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파울로 코엘료 <순례자>의 한 구절을 공유한다.


산이 높다는 걸 알기 위해
산에 올라가는 건 아닙니다.
배는 항구에 있을 때 가장 안전하지만,
배는 항구에 머물기 위해
만들어진 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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