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탄데르, 유토피아를 향해
어제 알베르게는 말 그대로 유토피아였다. 이상적인 생각과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신부님이 계셔서 치유받는 느낌이랄까. 실제로 일어나니 발이 훨씬 나아졌다. 산속 언덕에 위치한 곳이라 그런지 아침에는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에 깼다. 맨날 서울에선 모닝콜에 힘겹게 일어나던 날들이 스치듯 지나간다. 아침식사를 간단히 먹고 기부를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지만 받은 것에 비하면 적은 돈이다. 받은 환대를 기억하기 위해 신부님과 사진을 남겼다. 부엔까미노 앞에 서자고 제안해 주셔서 인상적이었다. 절뚝거리며 다니니 발은 괜찮냐고 더 있다가도 된다고 계속 말해주셨다. 산티아고까지 힘내라고 뜨거운 응원을 받았다.
오늘은 비가 하루종일 온다고 예보를 확인했는데도 판초우비를 입지 않았다. 비를 맞으면 맞을수록 갑갑하고 무거운 느낌이 싫더라. 그냥 바람막이 잠바를 걸치고 새로 산 비바지를 입었다. 과연 고가를 주고 산 새 고어텍스 등산화는 얼마나 비에 버틸 것인가.
아침 8시에 출발에서 쭉 도로를 따라 걸었다.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하며, 비도 오다가 말다가를 반복했다. 가랑비에는 확실히 신발이 방수가 잘 되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을 4시간 반쯤 걸어서야 항구에 도착했다.
소모는 생각보다 큰 마을이었다. 항구를 찾는데 꽤 오래 걸었다. “죽겠어요.”라는 말을 얼마나 읊조렸는지! 비를 쫄딱 맞으며 앉을 벤치 하나 없이 오랜 시간 걷기만 했으니. 산탄데르 가는 표를 끊고서야 한숨 돌렸다. 배가 12시 55분에나 온다고 해서 30분 여유를 얻었다. 바로 보이는 카페에 가서 카페라테 한 잔 하니 살 것 같았다.
카페에서 스페인 친구 환을 또 만났다. 우린 만날 때마다 간단한 인사를 자주 했다. 내가 스페인어를 할 줄 몰라서 깊은 대화는 못 해봤지만 인사만 해도 무척 반갑다. 영어를 할 줄 아는 페드로 덕분에 알게 됐는데, 내가 최고의 근성 순례자라고 말해줬단다. 발이 아파도 비가 와도 그저 걷는다고 인정해 준 것이다. 가끔 같은 순례자에게 이런 작은 인정을 받을 때마다 내가 가는 길이 틀리지 않구나 느낀다. 순례길의 길은 오직 하나다. 그냥 계속 가. (Just Keep Going.)
독일친구 카트리나는 운동화를 신어서 신발이 다 젖었다. 그녀는 비 오는 날을 처음 겪어봤으니 무척 당황스러운 하루였을 것이다. 숙소에 와서 신문지로 신발을 말리는데 새로운 신문지를 넣어도 계속 물이 나온다. 내가 산탄데르에서 묵자고 꼬셔서 흔쾌히 그녀도 합류했다. 비 오는데도 다들 대단한 게 다음 마을까지 또 걷는다. 아직 2시밖에 안 됐다고 보통 5-6시에나 알베르게 도착하니까 계속 간다고 하더라.
나는 순례길을 즐길 수 있을 때까지만 걷는 게 좋은 것 같다. 오늘은 걷다가 비가 너무 와서 예쁜 경치인데 맘껏 즐기지 못했다. 오히려 계속 어디가 끝일지만 바라다가 끝이 아니라 좌절했다. 비 오는 날엔 거리가 길지 않아도 발걸음이 평소보다 두 배는 무겁다.
어제 신부님 스페인어를 통역한 페루인 페드로를 길에서 만났다. 페드로는 페루보다 런던에 36년을 살아서 고향이 런던이다. 런던 물가가 비싸다고 했더니 자기는 로컬이라 저렴한 곳을 잘 알아서 괜찮단다. 앞으로 런던에 가면 페드로에게 연락할 것이다.
기부제 알베르게에 대한 생각을 나눴다. 알베르게가 유지되려면 기부제가 아닌 적정가격을 받아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다. 페드로는 한 40유로는 최소한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최소한의 기본가격을 내되, 기부제를 유지하려면 기부를 많이 하는 사람의 이름을 벽 어딘가 작게 새겨주는 등의 기부를 적극 유도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어쨌거나 신부님의 뜻대로 기부제로 운영되어 누구나 찾아올 수 있는 곳으로 유지되고 있다. 하지만 신부님은 85세가 되셨고, 현실의 벽은 너무 차가워서 재정적 어려 룸으로 언제 알베르게가 닫을지 모른다. 실제로 앞으로 가는 5유로짜리 알베르게가 모두 닫혀있더라. 유럽인들은 작년에 나온 가이드북을 많이 참고하는데, 거기 알베르게 정보가 1년밖에 안 지났는데도 많이 상황이 달라졌다. 그래서 친구들에게 헛걸음 방지를 위해 부엔까미노(Buen Camino)나 그론제(gronze) 온라인사이트를 이용하라고 권했다.
즐거운 토론으로 순례길이 조금은 덜 지루해졌다. 페드로가 아니었으면 난 길에 패대기, 그냥 좀 어디 주저앉아있었을지도? 페드로가 스페인어를 잘해서 사람들에게 여기저기 물어봐서 무사히 항구에 올 수 있었다. 그는 오늘이 순례 마지막날이었다. 그의 이번 순례는 빌바오에서 산탄데르까지이기 때문이다. 지난번엔 이룬에서 빌바오를 걸었다고 했다. 다음엔 산탄데르부터 차근차근 걸을 거라고 한다. 유럽에 살아서 순례길을 나눠 걸을 수 있어서 부럽다고 했다. 한국인은 먼 여정이라 한 번에 몽땅 걸어내야 하는 부담을 전했다. 내가 무사히 순례 길을 산티아고까지 걷길 응원해 줬다. 배에서 내릴 때 페이스북 있냐고 물었더니 조그만 금색 명함 스티커를 주더라. 그처럼 아주 귀엽지만 센스 있는 짧은 소개(이름 풀네임, 이메일주소)였다. 나도 하나 만들까 보다.
무사히 산탄데르 알베르게에 왔다. 침대가 50개라 잘 걱정은 안 했다. 역시나 순례자가 6명밖에 없다. 쾌적하게 평화롭게 모두들 이 층침대의 1층에 자리 잡았다. 오늘은 따뜻한 물이 폭포수처럼 콸콸 나와서 행복하게 샤워를 했다. 부엌은 물론 세탁기, 건조기, 빨래건조실도 있다. 15유로의 행복이다.
카트리나는 눈이 정말 초롱초롱하다. 나랑 동년배라 생각했는데, 애가 다섯이나 있는 43살이었다. 아무렴 어떠리. 외국에선 다 친구다. 첫째가 열일곱이라고 사진을 보여주는데 나보다 덩치가 크더라. 같이 저녁을 만들어먹자고 제안했다.
파스타와 샐러드재료를 사서 카트리나가 요리했다. 난 카트리나가 요리 집도하는 옆에서 조수역할을 했다. 맛있는 음식이 뚝딱 만들어지더라. 역시 다섯 아이를 키운 엄마의 속도는 다르달까. 많이 만들어서 봉사자(호스피탈로스)에게도 좀 드리고, 늦게 온 프랑스 순례자에게도 음식을 나눴다. 나누니 더 뿌듯한 저녁이다. 맛있어서 두 접시나 비웠다. 이번 순례길에서의 첫 부엌요리라 오늘을 잊지 못할 것 같다.
나는 여러 국적사람들과 함께 만든 순례길 요리를 참 좋아한다. 최소한의 재료로 특별한 맛을 낸달까. 이전 순례자가 남기고 간 재료도 곁들여서. 그래서 어딜 가도 이 맛은 낼 수 없다. 오직 순례길에서만 만날 수 있다. 오늘도 독일인과 한국인이 만든 이탈리아 파스타라며 웃었다.
어제 길에서 만난 폴란드친구들을 또 배에서 만났다. 안나는 현명하게 운동화는 젖더라도 발은 안 젖도록 비닐봉지를 양말을 신고 둘렀더라. 순례자의 지혜를 발견할 때면 이처럼 반갑다. 나는 방수되는 신발은 이 세상에 없는 것 같다고 네가 한 방법이 최고라고 칭찬했다. 안나와 친구들은 일정상 오늘 폴란드로 돌아간다고 아쉬워했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크라쿠프에 산다고 놀러 오란다. 순례길을 다 걷고 좋은 작가가 되어 다시 만나자고 약속했다.
폴란드 친구들 얘기를 카트리나에게도 했더니 자기도 폴란드 국경 쪽에 산다고 들리게 되면 자기 동네도 들리란다. 구글맵에 카타리나네 동네를 저장했다. 가게 되면 한식을 만들어주겠다고 했다. 다섯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다고 자기가 먹은 접시는 자기가 설거지하는 아이들이라고 한다. 가야 할 곳이 많아졌다.
같이 보낸 시간이 짧든 길든 이렇게 마음이 통하는 친구를 만나면 즐겁다. 언제 어떤 계기로 좋은 친구 사이가 될 수 있으니 어떻게 만나든 먼저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꼭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눠야 친구가 될 수 있지 않다. 그저 서로 반갑게 안부를 물을 수 있다면 그걸로도 충분하다. 그러니 스페인을 여행한다면 눈을 마주치고 먼저 “올라, 부에노스 띠아스!”라고 세상 해맑게 인사해 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