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길 15일 차 : 다시 혼자

혼자도 즐거워

by 탱탱볼에세이

어제 만난 한국인 어머니들은 오비에도로 가셨다. 무릎에 인대통증이 심하셔서 계획을 아예 변경하셨다. 산티아고만 들렸다가 빠르게 한국으로 돌아가신다고 한다. 버스 배웅을 하고 순례길을 출발했다. 혼자 1시간 반 정도 거리를 걸었다. 걸음이 한결 나아졌다. 최근 3일 동안 조금만 걷고 푹 쉰 덕분이다. 비도 안 오고 걷는 풍경도 예뻤다. 걷는 고통이 없으니 그제야 풍경이 눈에 들어오더라.


아픔을 참고 걸을 때는 언제 숙소에 도착하는지만 생각했다. 매번 계획한 목표를 이루고, 목적지에 도착했으나 계속 피로가 누적되었다. 내 몸을 너무 혹사시키고 있는 게 아닌가. 몸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케이티를 만나고 나도 따라 너무 무리하지 않기 시작했다. 그동안 순례길에서 만난 친구들이 다들 많이 걸어서 따라간다고 숙소에서라도 만나고 싶어서 무리하게 걸었다. 그것이 나를 더 힘들게 만들었다. 점점 이상해지는 걸음걸이와 진물 나는 물집에 더 이상 못 걸으면 어쩌지 무서워졌다.


그래서 템포를 낮추고 다시 혼자가 됐다. 생각해 보니 전혀 서두를 필요가 없었다. 한 번에 너무 많은 것을 하려던 욕심을 비웠다. 지금 걷고 있는 이 길에 집중하련다. 순례길 이후의 계획은 잠시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내 몸을 아끼며 순례길을 즐기려 한다.


여유로운 일정 덕분에 체크인 시간 3시에 맞춰서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오늘 묵는 숙소는 저번에 머물렀던 구에 메스 알베르게랑 협력된 숙소더라. 이 숙소만의 상냥함이 느껴진다. 같이 숙소를 묵는 순례자들의 이름을 칠판에 적어줬다. 컵도 내가 쓰는 컵에 분필로 이름을 적었다. 빨래도 쌓이면 다 같이 돌려준다. 식사도 저녁도 주고 아침도 준다. 기부제다. 나무집 지붕에 있는 창문이 하늘을 향해 뚫려있다. 따뜻한 물도 잘 나온다.


어제는 관광객이 많은 마을이라 정신이 없었다. 여긴 작은 마을이라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더 뭘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없다. 숙소에서 샤워하고 영상을 편집하고 글을 쓴다. 혼자여서 가능한 일이다. 혼자여도 하고 싶은 일이 있고 충분히 즐겨서 다행이다. 혼자도 즐거워야 누군가와 함께 할 때 또 즐거움을 알겠지? 혼자기 때문에, 누구와든 함께가 될 수 있다.


그동안의 순례길 사진을 보는데 지난주, 지지난주 일인데 벌써 추억이 됐다. 짧고도 긴 시간 동안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아쉬운 건 항상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소중함을 안다는 것이다. 앞으로 걸으면서 또 어떤 인연을 만나게 될지 기대된다. 이 길을 같은 시기에 걷기 때문에 이 길에서만 만날 수 있는 소중한 인연들이다. 힘든 여정을 똑같이 걷는 사람들이라 더욱 각별하게 느껴진다. 만나는 인연들에 작은 인사라도 최선을 다해 건네어봐야지. 그런 사소한 인사들이 쌓여 자연스레 친구가 되고, 서로 좋은 영향을 주고받는 사이가 되는 이 길이 좋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순례길 13일 차: 기찻길 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