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길 17일 차: 아침식사를 챙겨 먹는 습관

든든한 하루의 시작

by 탱탱볼에세이

아침식사를 든든하게 먹고 출발했다. 한국에선 전혀 아침을 챙겨 먹지 않았던 나다. 숙소 요금에 아침식사가 이미 포함된 경우는 무조건 먹는다. 오늘도 그런 경우였다. 아침을 먹고 출발하면, 걸을 때 확실히 활력이 돈다.


덕분에 어느새 아침식사를 먹는 습관이 생겼다. 숙소에서 아침식사를 추가할 수 있으면 추가한다. 어차피 카페에서 아침을 대충 챙겨 먹는 돈과 숙소에서 든든하게 먹는 비용이 별로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이왕이면 일어나자마자 바로 먹을 수 있는 숙소에서의 아침을 선호하는 편이다.


아침은 왕처럼 먹어야 한다고 누군가 그랬다. 실제로 숙소에서 아침을 먹으면 다채롭게 준비된다. 우선 바게트에 버터와 잼을 발라먹는다. 커피는 항상 따뜻한 카페라테로 주문한다. 사과나 오렌지주스까지 상큼하게 마셔준다. 가끔 찐 계란이 있으면 잘라서 쨈과 함께 토스트로 만들어 먹으면 맛있다. 요거트, 과일, 시리얼, 쿠키가 있을 때도 있다. 최대한 다 먹고 남은 건 간식으로 챙긴다. 이렇게 거한 아침을 한껏 먹으면 10km는 날아가는 느낌이다.


걷기 시작하면 금세 배에서 꾸룩꾸룩 소화되는 소리가 난다. 순례하기 전엔 소화가 오래 걸렸는데 활동량이 느니 소화도 빨라졌다. 걸을수록 하루하루 건강이 좋아지는 게 느껴진다. 물론 걸어서 다리가 조금 쑤신 것이 흠이라면 흠.


오늘은 걷자마자 바로 미국 애리조나에서 온 젠과 도나를 만났다. 2주 전에 잠깐 바에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눴던 사이다. 한 20분 이야기 나눴는데 이야기가 잘 통해서 페이스북과 왓츠앱 연락처를 공유했었다.


한두 번 연락하다가 서로 순례길 걷느라 지쳐서 어느새 연락이 끊기더라. 둘이 어디쯤 걷고 있는지 궁금했는데 우연히 다시 만났다. 이게 순례길의 매력이지. 역시 만날 사람들은 어떻게든 다시 만나게 되는 이곳.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 덕분에 오늘은 순례길이 심심하지 않았다. 사실 내 걸음걸이가 너무 느려서 그간 함께 걸을 친구가 없었다. 젠과 도나는 나보다 조금 빠르게 걷더라. 종일 같이 걸어보니 둘이 중간에 잘 안 멈추고 계속 걷는 편이라 내 템포를 유지하는데 오히려 큰 도움이 되었다.


거기다 별 것 아닌 대화도 영어로 이야기하면 생각하면서 말해야 해서 시간이 잘 갔다. 이야기 마구마구 나누다 보니 어느새 꽤 걸어있더라. 15km 미만으로 며칠 걸었더니 어느새 몸이 또 그 거리에 적응해 버렸는데 같이 걸은 친구들 덕분에 20km 넘게 무사히 올 수 있었다.


오늘 머무는 숙소는 15유로지만 아침식사가 따로 없다. 그래서 그런지 평가가 좋지 않다. 난 따뜻한 물 팡팡 나와서 좋더라. 아침식사까지 포함된 숙소에서 꽤 누리다 보면 숙소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진다. 하지만 여긴 순례길이다. 저렴한 가격에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면 실망이 큰 법.


최대한 일찍 일어나서 근처 바에서 간단히 또르띠야 먹고 카페라테를 마셔야지. 또르띠야는 감자랑 양파 넣고 넣은 계란부침개 맛이 왜 이리 좋은 건지. 비를 자주 맞아서 그런가 따뜻한 카페라테는 포근함은 얼마나 큰 지. 이상하게 순례길에서 먹어야 제 맛이 난다. 한국에선 이 맛이 아니다. 어쩔 수 없이 지금 많이 먹어두는 수밖에.


솔직히 순례길은 힘들지만 아침에 또르띠야 먹고 카페라테 마실 생각에 걸을 수 있다. 내게 순례길 최고의 동기부여는 맛있는 음식인가 보다. 열심히 걷고 맛있는 거 먹어야지. 맛있는 거 먹고 또 열심히 걸어야지. 그러다 보면 산티아고 아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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