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길의 시작점
결국 이타와 크리스티나를 따라 오비에도행 버스를 탔다. 이런 선택의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비야비시오사와 오비에도 중간에 숙소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한번 성당 땅바닥에서 침낭도 없이 자보니까 두 번은 피해야 한다는 생각이 컸다. 한번 겪어보니 정말 아찔한 경험이다.
버스를 타니 한 시간 만에 오비에도에 오더라. 엄청 굽이진 산길을 지나왔는데 이걸 내가 순례길로 넘었을 생각 하니 버스를 타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옛날 같으면 모든 길을 다 걸었을 테지만 지금은 나를 너무 갉아먹지 않은 선에서 걷는 편을 택하려 한다. 즐겁자고 떠난 순례길에서 아프고 힘들기만 하면 안 되니 말이다.
오비에도는 아스투리아지방의 수도다웠다. 도착하자마자 확실히 현대적인 분위기가 강했다. 그간 순례길을 걸으며 까맣게 탄 나는 도시의 북적거림이 낯간지럽더라.
숙소는 버스터미널과 기차역이 가까운 곳으로 자리 잡았다. 세 명이라 인당 20유로에 호텔에 머물 수 있었다. 성당 땅바닥에서 춥게 자던 동지들이었다. 불과 그 일이 3일 전이라는 게 더 놀라울 뿐이고.
다양한 종류의 치즈에 시드라 와인까지 맛있고 배불리 먹었다. 아스투리아 전통음식을 맛볼 수 있게 크리스티나가 맛집을 찾아준 덕분이다. 내게 이 맛을 꼭 소개해주고 싶었단다. 친구 아니었으면 내가 언제 이런 맛을 보겠나싶다. 스페인 친구들이랑 다니는 덕분에 내가 볼 수 있는 세상보다 더 넓게 볼 수 있으니 난 참 운이 좋다.
저녁엔 오비에도 성당에도 들어갔다. 순례자라 좋은 점은 크레덴시알만 있으면 입장료를 절반만 낸다는 것이다. 특히 오비에도 성당은 건물도 멋있고 내부에 진귀한 물건들이 많이 보관되어 있어 유명하다. 가톨릭 신자가 아니라 잘은 몰랐지만 오랜 세월 소중하게 정성스레 보존된 것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내일은 순례길의 시초인 프리미티보 길을 시작한다. 오비에도는 내게 또 다른 시작이다. 이 길을 몰랐는데 북쪽길을 걸으면서 다들 이 길을 추천해 줘서 나도 자연스레 오비에도에 오게 됐다.
산이 계속되는 힘든 길임을 여기저기서 전해 들으니까 슬쩍 긴장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오비에도에 온 가장 큰 이유는 머리로 생각했을 때 어떻게 하지?라고 생각하는 것을 몸으로 실행해서 그 벽을 깨고 싶어서다. 많은 고민을 내려놓고 그저 그 길을 따라가 보는 것이다. 그럼 그것이 나의 길이 되니까.
친구들은 이제 내일 집으로 돌아간다. 크리스티나는 성당 종소리와 양들 종소리를 배경으로 땅바닥에서 같이 잠들고, 가는 곳마다 인터넷을 찾아 헤매는 내 발음을 듣고 진토닉으로 이해한 웃픈 추억은 가끔씩 생각날 거라며 또 같이 웃었다. 걷는 템포까지 맞는 친구는 진짜 찾기 힘든데 만나서 같이 으쌰으쌰 걸을 수 있어 즐거운 3일이었다.
다시 혼자 길을 나선다. 하지만 걱정은 없다. 또 다른 친구들을 길에서 운명처럼 만날 테니. 다만 더이상 숙소 자리가 없어서 바닥에서만 자는 상황만은 없으면 좋겠다. 부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