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 년 동안, 코로나라는 팬데믹 상황에서 자유로운 사업장이나 개인은 별로 없을 것이다. 우리 동네 작지 않은 헬스장이 하나 있는데 골프 연습장까지 갖추고 시설도 좋은 편이라서 평소 건강에 관심을 둔 동네 주민들이 열심히 다니는 곳이다. 나는 팬데믹 1년째에 여러 모로 안 좋아진 몸상태를 조금씩 회복하기 위해서 조심스럽게 그곳을 찾았다. 헬스장에 들어서자 겉으로 보기에도 건장한 몸에 자신감 있는 근육이 적당히 붙은 한 사나이가 나의 상담을 맡아 주었다. 여느 트레이너와 달라 보이는 건 없었고, 다만 인바디 측정 검사 결과와 내게 필요한 전반적인 운동 방향에 대해 설명할 때, 불필요한 전문 용어를 쓴다든지, 내 몸상태를 지나치게 부정적인 뉘앙스로 말하여 불안을 조성하지 않았다는 점, 일단 그것이 나를 편하게 해 주었다. 내 몸에 필요한 것과 내가 원하는 것 등을 종합하여 나는 드디어 운동 라이프를 시작하게 되었는데 나의 상담을 맡았던 그 트레이너가 이 헬스장에서 가장 바쁜 트레이너라는 사실을 얼마 가지 않아 알게 되었다. 아침에 가도, 점심에 가도, 저녁에 가도 그는 항상 수업을 하고 있었으며 심지어 주말에 가도 늘 수업을 하는 모습뿐이었다. 나는 궁금해졌다. 다른 트레이너들과 무엇이 다를까. 많은 회원들이 그와 트레이닝 하기를 원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그리하여 나는 슬금슬금 그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마치 취재원이나 기자가 된 시선으로 그를 자연스럽게 인터뷰하기 시작했다.
그의 학창 시절 전공은 컴퓨터관련 쪽이었으나 적성에 맞지 않았다. 군대 시절에도 전공 때문에 통신병 생활을 했지만 여전히 직업으로 삼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훈련기간에 있었던 일이다. 통신병은 훈련 전에 미리 통신선을 설치해두어야 했기에 선임이 좋은 위치를 찾으면 잽싸게 가서 눈에 띄지 않도록 설치해야 한다. 하지만 적당히 손에 잡힐만한 나무도 없고 높이는 자신의 키를 훌쩍 넘는 곳인 데다가 험한 덩굴 속이거나 올라갔어도 내려오기가 쉽지 않은 바위 같은 곳이면 정말 난감하지 않을 수 없다. 병사는 명령에 죽고 명령에 사는 몸, 무조건 올라가라면 올라가야 하고 내려오라면 내려와야 한다. 하지만 훈련하다 세상을 하직할 수는 없었다. 명령과 마음은 언제나 일치하는 것은 아니었기에 그는 도저히 불가항력의 그 순간마다 목숨을 내놓을 수는 없었기에 차라리 자신의 몸을 바꾸기로 하였다. 그래서 시작한 운동은 그의 몸을 변화시켰고 그 변화에 주변 병사들이 관심을 보이면서 그에게 운동 방법을 물어보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이 해 온 방법들을 알려주고 그들의 운동 과정을 살피며 조금씩 그들의 몸이 변화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들은 매우 만족스러워했고 남은 군대생활은 모두가 몸이 좋아지는 시간이 되었다. 이렇게 자신이 누군가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것, 그리고 그것이 상대방의 삶을 조금이나마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재미와 기쁨을 주는 일인지 예전엔 미처 몰랐으며 더 나아가 몸의 변화가 생각의 변화, 삶의 변화를 이끌 수도 있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제대를 얼마 남기지 않았을 때, 매우 매력적인 덩치의 신병 하나가 들어왔다. 자신은 1년 넘게 공을 들여 만든 몸인데 그 신병은 들어오자마자 완벽한 몸이라니… 알고 보니 그 신병의 전직이 헬스 트레이너였고 그야말로 전문가였던 것이다. 더 이상 번데기 앞에서 주름을 잡을 수는 없는 터, 갑자기 작아지려는 그의 마음을 붙잡은 것은 ‘나도 이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1년간 군대에서 자신이 병사들에게 한 일이 결국 헬스 트레이너의 일이었고 좀 더 전문성을 갖춘다면 제대 후 제대로 일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미치자 그는 그 신병에게서 주저 없이 헬스 트레이너가 되는 길을 배웠다. 그리고 20대 초반 무얼 하며 어떻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없이 지나갈 뻔했던 청춘의 한 지점에서 결국 인생의 깃발 하나를 들고 제대를 한 셈이 되었다. 그때가 지금으로부터 16년 전이다.
고향이 당진인 그는 제대 이후 집 근처 헬스장을 찾았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퍼스널 트레이닝은 연예인이나 스포츠 선수들이 하는 것이고 일반 개인들에게 그렇게 대중화되어 있지 않았다. 더군다나 서울도 아니고 지방은 더더욱 인식이 그러하였다. 그는 무조건 서울을 가야겠다는 생각에 집안 어르신들의 안정적인 대기업 취업 권유를 뿌리치고 마음이 시키는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 당시 컴퓨터 전공자는 많은 기업에서 필요로 했기에 어쩌면 대기업 취업은 쉬우면서도 안전한 길이었다. 하지만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했던가. 부모님은 경제적 기반이 아직 없는 아들을 위해 전세자금을 쥐여 주셨고 그는 그 돈을 가지고 서울행 버스에 올랐다. 이렇게 시작된 그의 서울 생활은 우선 집을 구하는 문제를 해결한 뒤, 군대에서 헬스 트레이너 출신 신병에게 배운대로 연습생 시절을 거쳐 드디어 헬스장에 트레이너로 취업을 했다. 그는 첫 회원님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모 스포츠 물품 생산 기업의 회장님이었는데 중요한 것은 그의 직책이 아니라 그가 실버회원이었다는 점이다. 자신이 젊은 전문가였지만 젊은 사람들을 위한 웨이트 트레이닝을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었으며 실버회원이라는 특성을 최대한 감안하여 그에게 필요한 운동이 무엇인지, 피해야 할 운동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했다. 이름하야 맞춤식 프로그램이 필요했던 것이다. 새내기 트레이너에게 실버회원을 위한 프로그램 짜기는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그는 성과 열을 다하여 그분의 몸이 좋아질 수 있도록 애썼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관련 책이나 영상물을 찾아보며 공부를 하게 되었고 가끔 세미나에도 참석하며 자신의 전문성을 키워갔다. 그리고 그 후로 하나 둘씩 늘어가는 회원들에게 그들마다의 필요뿐만 아니라 실제로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는 운동 프로그램을 제공하기 위해 계속 연구하였으며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그가 한 모든 활동들은 귀한 데이터가 되었다. 그렇게 헬스 트레이너로서의 일은 쉽지 않았지만 점차 회원들로부터 인정받기 시작했고 스스로 만족감도 높아지면서 모든 것이 순조롭게 잘 흘러갔다.
어느 정도 이쪽 일에 자신감이 생기고 경력이 쌓여가니 더 잘해보고 싶은 생각에 그는 친구와 동업하여 헬스장을 따로 운영하기에 이르렀다. 처음에는 잘 되는 듯 했다. 첫 사업이었기에 A부터 Z까지 모든 걸 알아야 했고 운영자로서 크고 작은 선택과 자주 맞닥뜨려야 했다. 트레이너의 일만 하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이미 모집된 회원들에게 트레이닝을 제공하기만 했던 것과 달리 헬스장 운영은 애초에 없던 회원을 만들어내야 했고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물리적인 환경에 대한 끊임없는 업그레이드의 필요성, 각종 운영방식에 관한 고민 등이 헬스장 운영자로서의 고충을 더해 주었다. 결국 헬스장 사업은 점점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고 동업한 친구와도 결별하게 되었고 사업을 접어야만 했을 때, 그의 앞에 남은 것은 5천여만 원의 빚이었다. 이 과정은 그에게 20대 후반에 탑승한 그의 인생열차가 30대 초반에 갑자기 멈춰 선 기분이었다. 그는 그렇게 한 동안 망연자실하여 앞날이 보이지 않았지만 이대로 하차할 수는 없었다. 다시 움직여야 했다. 어차피 처음 시작도 부모님이 쥐여준 돈으로 했고 내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이 시작하지 않았던가. 다시 다른 헬스장에 헬스 트레이너로 취업을 했고 차근차근 돈을 모았다. 그때 교통비를 아끼기 위해 직장까지 걸어 다녔는데 집과 직장 사이에 놓여 있었던 영동 대교를 매일 건너 다니며 비통한 심정과 낮아진 자존감, 미래에 대한 불확실함과 자신 앞에 놓인 커다란 짐을 수없이 강물 아래로 내던지곤 했다. 그리고 불행을 떠안은 젊은 청년에게 강물은 때로는 악마의 유혹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그 때 알았지만 다행히도 그는 그러지 않았다. 그렇게 영동대교와 함께 악착같이 3년을 버틴 그는 드디어 빚을 청산하게 되었고 그 시점에서 제로상태가 된 그는 스스로 터닝 포인트를 마련하였다. 젊은 나이에 일도 해봤고 돈도 벌어봤고 사업도 해봤고 망해보기도 했고 생의 끝자락까지도 왔다 갔다 하면서 그 모든 것을 결국 다 해결해내지 않았는가. 이제 나를 위해 돈을 써 보자 하여 미국 여행을 단행하였다. 여행을 통해 그동안의 삶을 돌아보니 사업 실패의 원인도 눈에 보였고 돈에 대한 생각도 정리가 되었으며 무엇보다 스스로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다시 나의 자리로 돌아가면 처음처럼 시작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고 헬스 트레이너로서 단순히 회원들의 몸 상태를 향상시켜주는 것만이 아니라 새로운 역할을 추가하여 업그레이드된 트레이너의 모습으로 일하는 청사진을 그리며 한국에 돌아왔다. 그 때 그의 나이 35세.
다시 헬스 트레이너로 취업을 하여 회원들을 대하니 예전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 들었다. 연령층을 막론하고 진심으로 회원님들 각자에 맞는 좋은 프로그램을 연구하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회원들마다 헬스와 병행하고 있는 운동이 다 달랐던지라 그로 인해 불편함을 호소하는 특정부위 또한 다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그들이 하고 있는 운동에서 좋은 기록과 결과를 위해 요구하는 몸의 상태나 강화시켜야하는 근육의 부위 또한 달랐던 것이다. 그는 거기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골프를 하고 있는 회원님은 단방향의 운동에서 야기될 수 있는 신체적 불균형이나 특정 부위 통증을 관리해주고 골프에서의 좋은 기록을 위해 발달시켜야 하는 근육에 도움이 되는 자세와 마사지를 집중적으로 제공해 주었으며 요가를 하고 있는 회원님은 무엇보다 유연성이 요구되었으므로 웨이트 트레이닝 이후에 충분히 스트레칭을 해 줌으로써 요가 동작을 더 수월하게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이런 식으로 수영을 하는 회원, 탁구를 하는 회원, 사이클을 하는 회원 등등 각 운동 특성에 맞는 운동방법을 모두 공부하다보니 각각의 운동이 어떤 근육을 발달시키고 손상시키는지 알게 되었다. 때로는 의학 정보까지 찾아가며 그렇게 스스로를 전문화시킨 것이다. 이것은 자연스레 회원들의 만족도를 높였고 결국 많은 회원들이 그를 찾게 되었다. 이렇게 전문적인 프로그램을 구성하고 적용할 수 있는 능력, 그리고 각 회원들에 대한 데이터를 수치화하고 다음 단계를 계획할 줄 아는 능력은 그의 큰 자산이 되었다.
또한 그는 매우 긍정적이고 밝은 사람이다. 많은 회원들이 모두 그로부터 긍정적 기운을 얻고 자신의 몸에 대한 자신감을 획득해 가며 그의 전문 지식과 프로그램 제공에 대한 절대적 신뢰를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운동을 전공한 사람들 특유의 그 상하관계에서 올 수 있는 훈련 문화, 조직 문화가 만들어낸 뻣뻣함 또는 딱딱함이 없고 딱 어른들이 좋아하는 그 ‘서글서글함', ‘싹싹함'이 몸에 배어 있다. 이것이야말로 연령층과 상관없이 모든 이들과 소통을 잘 할 수 있는 그의 장점이 아니겠는가. 그는 헬스 트레이너는 전문가이면서 서비스업 종사자라고 말한다. 눈이 마주치면 한 번이라도 더 웃어주고 인사를 친절히 하며 내 수업시간이 아니더라도 필요한 조언이나 조치는 서슴없이 해드리고 회원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부분은 없는지, 최근에 운동 관련해서 새로운 경험이나 이슈는 없는지 늘 관심을 갖고 대화를 시도하니 어느 회원이 마다할까. 이쯤 되면 왜 그가 매일매일 매시간대에 수업을 하고 있는지 완전하게 이해가 될 것이다. 나 또한 그를 찾아 트레이닝을 받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는 현재 경력 16년 차이다. 그러나 그는 지금도 수업 준비과정에서 많은 공부를 한다. 내가 현재 알고 있는 지식은 언제나 완벽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늘 알아보고 확인하고 회원님마다의 데이터를 가지고 프로그램을 짜고 있으며 그들의 변화를 눈으로 확인하고 자신이 이끌어주는 것에서 큰 기쁨을 느낀다고 한다. 그는 회원들의 근육 스트레스를 최소화하기 위해 스포츠 마사지를 자신이 직접 배워볼 뿐만 아니라 전국 어디 유명한 사람이 있다 하면 거기까지 가서 반드시 비용을 주고 받아 본다. 그래야만 기술과 실제 효과와의 상관관계를 확실히 몸으로 느낄 수 있고 회원들에게 자신이 어떤 조치를 취했을 때의 그 결과를 예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운동을 하는 일반 사람들을 뛰어넘어 재활이 필요한 회원의 경우 병원 치료와는 별도로 운동을 하며 개선될 수 있는 것을 찾아주기 위해 따로 재활 쪽 지식도 쌓는다. 코로나때문에 확연히 줄긴 하였지만 관련 세미나가 있으면 가급적 가서 자신이 놓치고 있는 것이 없는지, 동종 업계에서 새로운 기술이나 방법이 사용되는 것은 없는지, 그래서 자신이 벤치마킹할 것은 없는지 여전히 정보를 모으고 있다. 그렇게 계속 무언가를 배우는 일에 돈을 쓰게 되면 남는 것이 별로 없을 텐데 어떻게 돈을 모으느냐고 물어보았다. 그의 생각은 이러했다. - 돈은 꼭 필요한 것인데 우리가 항상 만들어내야 한다. 빌리든, 벌든, 늘리든 끊임없이 만들어내야 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돈을 만들어내려면 돈이 들어간다. 자신이 하는 일에 투자를 하지 않으면 성장할 수 없고 성장하지 못하면 도태되고 인정도 받을 수 없으니 자신의 몸값을 올릴 수도 없다. 돈을 들여서 자기 성장을 이루고 내가 원하는 미래를 준비하는 일이니 번 돈을 다시 쓰면서 돈을 벌어야 한다. - 그래서 그는 제로에서 다시 시작한 그때부터 돈을 어느 정도 벌었고 모았지만 아직 젊다고 생각하여 아끼기보다는 자신에게 투자하며 사는 것이 결국 자신이 원하는 미래의 삶에 가까이 가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현재는 다른 운동들은 대부분 자신이 직접 해보았지만 골프는 해보지 않은 운동이었기에 골프회원들의 고충이나 요구를 막연히 이론적으로만 공감하고 연구해왔던 것을 개선하려고 한단다. 자신이 직접 골프 스윙 동작을 해 보아야 어떤 부위, 혹은 어떤 근육을 발달시켜야 기록이 더 좋아질 수 있는지 확실히 알 수 있고 어떤 근육은 손상 위험이 있으니 골프 후 어떤 근력 운동이 도움이 되고 어떤 스트레칭이 효과적인지 몸으로 알 수 있다고 했다. 그는 현재 골프에 좀 더 집중해서 프로 선수까지는 아니어도 아마추어 선수 생활을 할 정도의 실력으로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래서 골프를 하는 회원들을 위한 특수 프로그램을 더욱 구체적이고 전문적인 내용으로 구성하고 더 나아가 골프 선수들 전담 퍼스널 트레이너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래서 그들의 기록 향상을 위한 전문 트레이닝 프로그램과 릴랙스 프로그램 그리고 재활 프로그램까지 모두 종합 관리가 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하고 그야말로 유능한 트레이너가 되고 싶다고 했다. 실제로 골퍼들을 위한 자세 교정이나 특별 프로그램에 쓰이는 장비들도 갖추었고 일반 퍼스널 트레이닝과는 차별화된 프로그램을 이미 시작했다. 역시나 골프회원들이 많은 곳이라 반응이 좋았다. 이제 그에게서 이 프로그램을 제공받은 회원들의 실제 골프 연습 기록들이 향상된다면 아마 더욱 인기가 높아지지 않을까 예상해 본다. 골프는 다른 운동에 비해 실버계층의 수요가 많은 운동 중 하나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 나이가 들어서도 회원들과 함께 오래 장수하는 트레이너로 살 수 있을 거란다. 이미 자신의 실버생활까지 큰 그림을 그리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그는 이 현명한 포부와 함께 자신의 트레이너 인생 전체를 돌아보고 자신에 대해 진지하게 반성할 수 있었던 인터뷰에 감사를 표하며 다음 수업을 위해 총총총 사라졌다.
이미 중년을 넘어선 나에게 열정 넘치고 긍정적이며 훌륭한 청년들의 삶을 여러 번 목격하는 행운을 가져다 준 이 인생에 감사한다. 다음 번 만나게 될 청년, 혹은 그 다음 청년, 계속될 이들의 인생을 조심스럽게 담아볼 예정이다. 언제나 나를 가르친 것은 '8할의 바람'이었다고 읇조리던 어느 시인의 말 대신, 50대의 나를 가르친 것은 언제나 '청춘들'이었다고 서슴없이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들의 인생을 관찰하고 이야기를 기록하고 생각을 정리하고 글로 탄생시키는 과정이 허락되는 한, 조용히, 천천히 그들의 이야기를 기록해 보기로 한다. 너무 많은 배움과 감동 그리고 반성을 준 그들에게 미리 감사함을 전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