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을 돌보는 연습, 평온을 배우다.
오늘은 유아기 내면아이에 대한 책을 읽었다.
이전의 갓난아기 내면아이 때보다 여운이 훨씬 컸다.
읽는 동안 몸이 먼저 반응했다.
숨이 약간 가빠지고, 어지러움이 올라왔다.
예전 같았으면 공황으로 번졌을지도 모르지만, 이번에는 그렇지 않았다.
미리 배치플라워를 복용하고 있었던 것도 있고,
무엇보다 '이 심상은 혼자 하지 않는 것이 좋다'던 내 멘토님 덕분이기도 했다.
(내면아이를 만나는 과정은 깊게 빠지면 많이 힘들어질 수 있어서
최소 Rescue remedy라도 꼭 먹으면서 진행한다.)
그 조언 덕분에 오늘은 집이 아닌 카페에서 책을 읽고 싶었기 때문이다.
음악, 사람들 이야기, 커피 머신 소리 같은 백색소음들이
나를 현실에 붙잡아주는 느낌이었다.
만약 평소처럼 혼자 집에서 읽고 심상화를 했다면..
아마도 훨씬 깊이 잠식됐을 것이다.
(내면아이 또는 IFS를 실행할 때 가능하면 전문가와 함께하는 것이 좋은 이유다.)
책 속의 안내를 따라 심상을 하다 보니,
모래놀이를 하는 어린 내가 보였다.
무엇이든 잡고 주무르고 싶어 하는 손,
그리고 정리정돈이 잘된 옷차림.
한참을 놀다가 고개를 들었을 때,
그 아이의 얼굴에는 순간적인 두려움이 스쳤다.
그때 나는 의식적으로 '성인의 나'를 아이의 시야 안에 두었다.
어느 방향에서든 놀다가 고개를 들면 '성인의 내'가 보이게끔.
아이의 눈에 '성인의 내'가 들어오는 순간,
그 두려움은 서서히 사라졌다.
작은 손이 '성인의 내'머리를 꼭 잡더니,
그제야 안심이 되는 듯 다시 모래놀이를 이어갔다.
그 장면에서 나는 확실히 느꼈다.
그 시절의 나는 단지 놀고 싶은 아이가 아니라,
'안전하게 존재할 수 있다는 확신'을 필요로 했던 아이였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심상 속에서 '작은 나'에게 말을 걸었다.
"괜찮아. 내가 옆에 있을게. 두려워하지 않아도 돼.
난 항상 네 곁에 있을 거야. 그러니까 네가 하고 싶은 걸 해도 괜찮아."
그 말은 단순히 자유를 허락하는 말이 아니라,
'너는 안전하다'는 존재의 메시지였다.
그때 문득 떠올랐다.
나는 이 말들을 평소에도 많이 하고 있었다.
내 반려동물들에게.
옥상 산책을 하는 상두에게, 두리번거리며 나를 찾던 아이들에게.
"괜찮아. 난 언제나 너네 옆에 있어."
항상 이 말을 반복해 왔다.
그게 단지 안심시키는 습관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사실은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이었다.
내가 어린 시절, 누구에게도 들을 수 없었던 말.
(이게 사실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나의 내면아이의 불안함이 시작되는 지점이니까)
그래서 나는 그 말을 대신 (반려동물들에게)건네며,
스스로에게 되돌려주고 있었던 것이다.
책을 읽으며 나는 깨달았다.
유아기의 내가 그 심상 속에서 '왜'
늘 고개를 들 때마다 '성인의 내'가 보이게끔 장면을 반복했는지.
그 시절의 나는 그런 존재를 필요로 했다.
무언가를 하다 불안이 올라오면,
고개를 들었을 때 반드시 시야 안에 보이는 사람.
그 존재만으로도 '괜찮다'는 확신을 주는 사람.
이제 그 역할을 '성인의 내'가 하고 있다.
성인의 내가, 작고 여린 어린 나에게.
그리고 지금의 나에게도.
오늘은 그 사실을 조금 더 명확히 알게 된 날이었다.
'괜찮아, 내가 항상 옆에 있어'라는 말은
타인에게 건네는 위로이자,
결국 내가 나에게 건네야 할 가장 단단한 확언이었다.
여러분은 어린 시절의 자신에게 어떤 말을 건네고 싶나요?
아니면, 지금의 자신에게 가장 필요한 한마디는 무엇인가요?
감정치유 전문가, 반려동물 행동 이해 전문가 / Bach Flower BFRP & 예비 BFTP 따블: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