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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툰자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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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툰자 Dec 27. 2022

새벽에 깨우는 남자

평범한 하루를 특별하게



"일어나 봐. 지금 잘 때가 아니야."

"어.... 몇 시야? 왜?"

"밖에 눈 엄청 쌓였어. 남들 밟기 전에 우리가  먼저 밟아 보자."


연애 기간 6개월. 장교로 장기 군복무 중이었던 그가 훈련 중이면 주말에도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여행은커녕 데이트도 자주 못 했다. 남들은 연애 중에 하는 일들을 우리는 결혼하고 즐겼다. 놀이동산 데이트도 결혼하고  6개월 후 내 생일에 처음 해봤다. 어지럽고 무서운 놀이기구 안에서 실컷  끌어안았다. 에버랜드 오르막길에서 남편이 등을 내밀었는데 아마 남친이었다면 업히지 않았을 거다. 부모님의 통제는 없었으나  자발적 유교걸이었다.


결혼하고 10년이 되기 전에는 함박눈 오는 밤에 나를 깨웠다. 추운 겨울밤의  나들이는, 특히 한참 자다가 깨서 나가는 일은  낭만보다 귀찮음이 앞서서 꾸역꾸역 옷을 챙겨 입으면서도 투덜거렸는데. 막상 설국 안으로 들어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 탄성이 절로 나왔다. 아무도 없는 새벽, 포드득뽀드득 반주에 맞춰  하얀 눈빛과 노란 달빛 아래서 걸으면 세상의 주인인양  황홀했다. 그런 달달한 밤에는 연애하는 기분이었다.


결혼한 지 10년 만에 둘째가 태어나고  평범하지만 특별한 새벽 데이트는 사라졌다. 아기 때문이기도 하고 군산으로 이사와 새벽에 출근하는 남편은 그럴 여유가 없었다. 한밤중에 일어나 칭얼거리는 아기에게 우유를 먹이고  토닥거려 재우느라 나는 깨어 있어도 남편은 눈이 내리는지 쌓이는지도 모르고 코를 드르렁거렸다. 그때는 정말 발로  차고 싶었는데  칭얼대던 아기가 남편보다 더 커버려서 그런가 요즘은 코 골며 자는 남편을 보면 콧속이 하다.


지난 토요일 저녁, 군산에는 폭설이 내렸다. 낭만적인 데이트 따위는 없고 눈길 미끄럽겠다는 걱정을 하고 있던 차에  전화를 받았다. 우리가  대전에 살 때 아주 친하게 지냈던 사람, 한때는 가족처럼 지냈던 사람이 죽었다는 소식이었다. 10여 년 전, 우리가 대전을 떠나온 후에 여동생은 그 사람과 헤어졌다.


착한 사람들을 흔히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고 하는데 그 사람이 그랬다. 거절 못해서 손해 보는 사람. 도와달라고 하면 달려오는 사람. 맞벌이한다고 아들을 여동생에게 맡겼는데 제부는  자기 아들처럼 예뻐하고 나들이라도 가면 늘 품에 안고 다녔다. 우리 첫째는 이모를 엄마처럼, 이모부를 아빠처럼 따랐다. 남편은 손위지만 제부보다 나이가 어려서  둘이 편하게 말도 놓고 친구처럼 지냈다. 친형보다 그 사람을  더 좋아하고 의지했다.


대장암 말기에 간까지 전이되었다는 소식을 조카에게 듣고 마음이 너무 아팠지만 찾아갈 엄두는 못 냈다. 마음의 빚이 있어서 한 번은 만나러 가야지 했는데 코로나를 핑계로 차일피일 미뤘다. 너무 늦어버렸지만 마지막 가는 길에서라도 함께 하고 싶은데 폭설이 가로막았다. 하염없이 눈물만 쏟아졌다.


다행히 다음날 아침에는 눈이 그치고 해가 나와서 서둘러 대전으로 갔다. 경기도에서 내려온 아들과  입관식에 들어가   마지막 인사를 했다. 암으로 고통스럽기보다 고독으로 더 아팠을 것이다. 이제 고통 없는 세상에서 더 이상 외롭지 않을 거라고 남은 사람들은 부끄러운 위안을 삼았다.


한 달 만에 만난 아들과 그냥 헤어지기는 아쉬웠다. 떠나보낸 뒤에야 깨닫는 사람의 소중함. 죽음이 뒤통수를 때린 듯 정신이 번쩍 들며 떠오른 문장 '내일로 미루지 마라'. 그래서 경기도 화성까지 아들을 데려다 주기로 했다. 차에 타자마자 아들은 곯아떨어졌고 대화도 없이 두 시간을 달려 화성에 도착했지만 함께 한 시간이라 의미 있었다. 주말이라 고속도로 상황을 고려하면 서둘러 차를 돌려야 했지만 숙소에 들어가 혼자 밥 먹을 아들 생각을 하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여기까지 왔는데 밥 한 끼 같이 먹자. 차가 아무리 막혀도 오늘 안에는 도착하겠지."


삼겹살을 구워 아들 앞에 자꾸 쌓아 놓았다. 공깃밥도 덜어서 아들 밥그릇에 얹어 주고. 맛있게 먹는 모습만 봐도 배부르다는 말을 실감했다. 어려서는  입이 짧아 늘 깨작대던 녀석이 된장찌개에 쓱쓱 밥을 비벼서 삼겹살까지 얹어 입에 넣었다.그 모습이 낯설기도 하고, 혼자 얼마나 못 먹고 지냈나 울컥하기도 하고, 어른 다 됐다는 생각도 들었다.


다시 군산으로 돌아오는 길, 남편이  물었다.


"오늘  무슨 생각 제일 많이 했어?"

"건강과 가족의 소중함......"

"나는 아등바등 살지 말자야. 우리 그냥 재미있게 살자."


그로부터 5일 뒤, 금요일 새벽에 남편이 또 깨웠다.


"눈 엄청 내렸어. 나 오늘 출근 못 해. 나가서 눈이나 실컷 밟자."

"진짜?"


눈이 엄청 내렸다는 사실에 놀란 게 아니다. 출근 안 한다는 그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내가 서른여덟에 둘째를  낳은 날에도 출근을 했다가 그 뒤로 을이 된 남자다. 새벽 4시면 출근하는 사람이 6시가 지나도록 침대에 있는 걸 보니 거짓말은 아니었다. 갑과 을은 일어나 주섬주섬 을 껴입고 나갔다.




렛 잇 고~~~ 렛 잇 고~~~

어디선가 울라프가 나타날 것 같은 겨울 왕국이었다. 조용한 이른 아침, 둘이서 오붓하게 걸어야지 했는데 눈이 장난  아니었다. 지하주차장 입구는 경비아저씨들이 눈을 치우느라 소란했다. 캄캄한 새벽부터 치우기 시작했는데 계속 쏟아지는 눈 때문에 쓸어도 쓸어도 티가 안 난다고  답답해하셨다. 우리는 팔짱을 끼는 대신 삽을 들었다.



계획한 대로 되지 않을 때가 많다. 그래서 당황하고 실망하지만 때로 계획이 어긋나서 더 재미있을 때도 있다. 모처럼 아침부터 삽질로 땀 흘리고 청국장 보글보글 끓여 뜨거운 밥을 해 먹었더니  평범하지만 특별한 날 같았다. 행복은 참 단순하다. 눈이 온다고, 눈을 치웠다고, 가족이 맛있게 먹는 것만 봐도.


아등바등 살지 말자던 남자는 오전 열 시쯤 되자 기어이  출근을 했다. 계획도 행복도 한 순간에 뒤집어지는 경우가 있다. 둘째는 휴교를 알리는 메시지에  감동했고, 나는 생각지도 않았던 아들의 점심 메뉴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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