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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툰자 Mar 29. 2023

나는 키위새

유하 시인의 <자동문 앞에서 > 시를 읽다가

           자동문 앞에서

                                                      유하


이제 어디를 가나 아리바바의 참깨

주문 없이도 저절로 열리는

자동문 세상이다

언제나 문 앞에 서기만 하면

디선가 전자감응장치의 음흉한 혀끝이

날름날름 우리 몸을  핥는다 순간

스르르 문이 열리고 스르르 우리들은 들어간다


스르르 문이 열리고 스르르 들어가고

스르르 열리고 스르르 나오고

그때마다 우리의 손은 조금씩 퇴화되어 간다


하늘을 멀뚱멀뚱 쳐다만 봐야 하는

날개 없는 키위새

머지않아 우리들은 두 손을 잃고 말 것이다


정작, 두 손으로 힘겹게 열어야 하는

그,

어떤, 문 앞에서는

키위키위 울고만 있을 것이다




시 <자동문 앞에서>를 읽다가 키위키위 울고만 있는 나를  발견했다. 주변 사람들과 기계에 의존하며 점점 할 줄 아는 것들을 잃어가는 나를,  빠르게 변화하는 디지털 문명 앞에서 쩔쩔매는 나를, 열기 힘든 마음의 문 앞에서  떨고 있는 나를.



              나는 키위새


어쭙잖은 일을 핑계로

남들이 해 주는 을 사 먹고

친정 엄마가 만든 찬을 받아먹고

주부 25년 차에 잘하는 요리 하나 없는데

할 줄 알았던 음식도 이제는 가물가물

'어떻게 했더라? 이게 아닌데... 검색해 봐야겠네.'


컴퓨터 앞에만 앉으면  아들을 부르

스마트폰으로 처리할 일이 생기면 남편을 찾고

아무도 없으면 내일로  미루던 날들


수없이 왔다 갔다 한 길도

지도 앱 없이는 불안하고

AI 언니가 시키는 대로 운전을 하네


나는 키위새

날개를 잃날지 못하는 새

키위키위 울고만 있네


나는 키위새

나의 조상들은 하늘을 날던 새

키위키위 노래하며 자유롭게 날던 새


나는  키위새

나뭇가지 위로 뛰어올라 볼까

뛰다 보면 다시 날개가 돋을지도 몰라

키위키위 노래하면 자유롭게 날 수 있을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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