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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툰자 Jun 16. 2023

귀티 나는 사람

피부과에서

SNS에서 귀티 나는 사람의 조건 첫째가 맑은 피부라고 했다. 부티는 소유한 물건으로  티를  는 거라면 피부는  그 사람 자체이기에  타고난 거, 자연스럽게 티가 나는 거. 동생은 엄마의  꿀피부 DNA를 물려받아  세안도 안 하고 잠든 다음 날에도 뾰루지 하나 안 났는데 나는 달랐다. 아빠의 DNA를 더 많이 타고나 까무잡잡하고 건성과 지성을 겸비한 복합성 피부랄까 사춘기에 시작된 예민하고 복잡한 피부 양상이 40년째 이어지고 있다. 특히 마스크로 얼굴을 반쯤 가린 뒤  3년은  로션도, 선크림도 제대로 바르지 않고 방치한 상황.  마스크 전면 해제를 앞두고 그제야 마음이  급해졌다. 지금부터라도 제대로 관리하면 깨끗한 피부를 가질 수 있겠지. 그 불가능에 가까운 목표, 귀티 나는 사람 되기에 도전하기로 했다.


집에서 가까운 피부과의원  세 곳에 가서 상담을 하고 비교한 후 레이저  치료를 할 생각이었다. 첫 번째, 두 번째 병원에서는 상담조차 불친절했다. 백화점에 갈 때처럼 피부과에 갈 때도 외모에 신경 쓰고 부티 나게 하고 가야 친절한 서비스를 받는 건가 하는 생각에 몹시 씁쓸했다.


세 번째 방문한  병원의 상담 실장은 상냥했다. 치료비가 다른 병원보다 비쌌지만 그곳에서 하기로 결정했다. 가격보다 중요한 게 내 감정이었나. 늘 이성보다 감정이 앞서는 게 문제다.


처음 치료하는 날, 마취크림을 바르고 침대에 누워  대기하고 있는데 레이저 치료를 끝내고 돌아온 한 여성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아~~ 나 죽겠네. 아이 씨 너무 아파, 왜 아프다고  안 했어."

"조금 시간이 지나면 진정돼요."

"상담 실장 불러와요. 실장이 안 아프다고 했다니까. 어머나! 우리 언니  시술 들어갔어요?  나이도 많은데  큰일 났네. 우리 언니 레이저 치료 중단하라고 해욧!"


간호사와  실장은 호들갑스럽게 소란을 피우는  손님 앞에서 조용하고 차분하게 대응했다.  그 사람은 거기에 더 화가 났는지  소리를  높였다. 치료는 의사가 했는데 간호사와 상담실장이  혼나고  사과하는  상황. 그녀의  태도는 관리실에 누워 있는 모든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의사에게도 왜 이렇게 아프게 했냐고 따졌을까 궁금했다. 그녀의 갈라지는 목소리와 거친 말투에서는 귀티가 나지  않았다.


"나 너무 아프다고. 정말 이거 소송감이야. 내가 다 늙어서 이렇게 아픈 걸 왜 하냐고."


그녀소송까지 들먹이자 나는 레이저 시술을 받기도 전에 바짝 긴장이 됐다. '마취 크림도 발랐는데  괜찮겠지'  불안을 누르려고 했지만 '그녀일부러 쇼를 하는 건 아닐 텐데 얼마나 아프면 저럴까' 같은. 환자 입장에서 공감하기 시작하자 걱정이 스멀스멀 기어 나왔다.


"툰자님, 치료실로 이동하실게요."


간호사를 따라 들어간 레이저 치료실  침대 위에는 생뚱맞게 베개만 한  곰인형이 놓여 있었다. 간호사는 침대에 편하게 누워 인형을 껴안으라고 했다. 시키는 대로 했지만 전혀 편하지 않았다. 도대체 얼마나 통증이 심하길래 인형까지 준비한 거야. 시작도 하기 전에 온몸이 경직되고 말았다. 결론은  소송 들먹였던 여자 합세해  일을 추진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산부인과에서 출산할 때처럼 온몸에 힘이 들어가  곰돌이가 으스러지도록 꽉 껴안았다. 털이 있었다면 다 뽑았을지도 모른다. 얼굴 전체가 불에 타는 느낌. '그만! 그만! 멈춰'를 마음속으로 수없이 외쳤다.


치료를 마치고 관리실로 이동하는데 다리가 후들거렸다. 너무  아프다고, 못 참겠다고 소란을 피워야  하나  고민하며 침대에 누웠다.  이상하게  옆침대에  누워 있는 그녀가 조용했다. 잠시 후  나지막한 목소리로 그녀가 상담 실장에게 하는 말이 들렸다.


"진짜 아까는 죽을 것처럼 아팠다니까. 정말이야. 소송 걸 정도였다고. 나보다 우리 언니가 더 걱정됐는데. 이상하게 언니는 하나도 안 아프다네 호호호."


화끈거렸던 피부를 찬 수건으로 진정시켜 주자 한결 편해진 그녀가  소란을 피운 게 창피했는지 부드러운 목소리와 웃음으로 얼버무렸다. 나도 소란을 피우는 대신 여러 차례 냉타월  교체를  요청했다. 겁이 많아도 너무 많아서  예뻐지기 위해 얼굴에 칼을 대는 고통을 겪을 수는 없었다. 다만 깨끗한 피부를  원했는데  살이 타는 고통을 감수해야 하다니. 쉬운 건 없다. 앞으로 10회 더 레이저 치료가 남았다. 얼마나 더 살과 마음을 태워야 하나. 과연 그 고통이 지나면 귀티가 나기는 할? 깨끗한 피부를 갖기 전에 귀티 나는 말투와 태도부터  배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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