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독일 바이오엔테크와 미국 화이자가 코로나19 백신 3상 임상시험에서 90% 이상의 예방효과를 확인했다고 밝히면서 백신 개발 기대감이 커졌다. 세계보건기구(WHO)의 이달 초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세계에서 3상에 들어간 백신 후보는 10종이고 그 중 4종이 중국 회사인 시노백, 시노팜, 칸시노가 만든 것이다. 거대 다국적 제약회사들보다는 덜 알려져 있지만 중국 기업의 백신 임상시험에 참가하는 나라들이 늘고 있다. 세계 감염자가 5500만명에 육박하고 사망자가 130만명이 넘는 상황에서, 백신 물량을 선점하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감염병 백신을 전문적으로 개발하는 시노백(Sinovac·科興中維)은 베이징에서 1999년 창립됐다. A형간염 백신 힐라이브, A·B형간염 복합백신 빌라이브, 인플루엔자 백신 안플루, H5N1·H1N1 조류독감 백신 팬플루 등을 상용화했고 일본뇌염 백신과 범용 인플루엔자 백신 등을 개발 중이다. 올들어서는 코로나19 백신을 만들어내는 데에 전력하고 있다. 1·2상을 통합해 4월에 ‘코로나백(CoronaVac)’이라 붙인 백신의 임상시험을 한 뒤 1만여명을 대상으로 3상을 진행하고 있다. 3상에 참여한 나라는 브라질, 칠레, 인도네시아, 필리핀, 터키, 방글라데시 등이다.
최근 3상 참가자 한 명이 자살하자 지난 10일 브라질 의료규제 담당기관인 안비사는 실험을 임시 중단시켰다. 그러나 백신과 관련이 없는 것으로 보고 12일 실험을 재개했다. 브라질에서 시노백의 최대 장애물은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이다. 중국을 적대시해온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시노백의 신뢰도가 낮다고 공격하기도 했다. 하지만 브라질은 중국산이라는 이유로 백신 접종을 미룰 처지가 아니다. 감염자가 600만명을 향해 가고 있고 사망자는 16만명이 넘는다.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최근 “안비사가 승인한 백신이라면 어디서 만들었든 구매하겠다”며 한발 물러섰다.
인도네시아에서는 국영 제약회사 바이오파마가 시노백과 함께 웨스트자바에서 1620명에게 3상을 진행 중이다. 시노백은 내년까지 1억2500만회 접종분을 생산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전했다. 인도네시아는 또 다른 중국 회사 시노팜, 칸시노와도 백신 개발과 생산 협력을 논의해왔다. 두 회사 모두 3상이 끝나면 인도네시아에 각각 1500만~2000만명 접종분을 공급하겠다고 약속했다.
시노팜(중국의약집단)은 중국의 국영 제약·생명과학 회사로 직원이 15만명에 이른다. 웹사이트에 따르면 지난해 의약품 판매액은 20억달러였다. 코로나19 발원지이자 중국 바이러스·감염병 연구의 중심인 우한과 베이징에 연구소와 생산시설을 두고 있다. 우한연구소 백신은 8월에 1·2상을 마쳤고 베이징연구소 백신은 10월에 1·2상을 끝낸 뒤 의학전문지 랜싯에 결과를 공개했다. 안전 문제는 없었고, 고령자 대상 실험에서 항체 형성 효과가 입증됐다고 했다.
우한과 베이징에서 개발된 시노팜의 백신들은 중국·모로코와 아랍에미리트연합(UAE)에서 7월부터 3만여명을 대상으로 3상에 들어갔으며 바레인, 브라질, 페루, 아르헨티나, 이집트, 세르비아 등으로 범위를 넓혔다. 중국과 바레인, 인도네시아, UAE에서는 긴급사용승인도 받았다. 시노팜 측은 지난 11일 성명에서 3상 결과가 예상보다 더 낙관적인 것으로 추정된다고 발표했다.
중국에서는 이미 코로나19 치료에 투입된 의료진과 외교관, 외국으로 파견되는 국영석유회사 CNPC와 화웨이 직원 등에게 시노팜 백신이 접종됐다. 류징전(劉敬楨) 시노팜 회장은 지난 7일 “지금까지 10만명 이상이 접종받았으며 부작용은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고 발표했다. 글로벌타임스에 따르면 접종받은 이들 가운데 5만6000명이 해외로 나갔고 그 가운데 코로나19 감염자는 없었다. 시노팜은 올 연말까지 1억회 접종분, 내년까지 10억회분을 생산할 계획이다.
톈진에 본사를 둔 칸시노(康希諾生物)는 2009년 세워진 회사다. 지난해 3월 홍콩 증시에 상장됐고 올 8월에는 ‘중국판 나스닥’으로 불리는 상하이증시 기술주 시장 스타마켓에 이름을 올려 투자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캐나다국립연구협의회(NRC) 등과 함께 에볼라 백신을 만들다가 올들어서는 코로나19 백신 연구에 뛰어들었다.
군을 등에 업은 칸시노의 무기는 속도다. 인민해방군 생물방역 전문가 천웨이(陳薇) 소장이 이끄는 군사과학원 베이징생명공학연구소와 백신 공동연구를 시작했고, 3월에 우한에서 1상을 시작하면서 경쟁자들을 한 걸음 앞질렀다. 4월에 2상에 들어갔고 석 달 뒤에는 랜싯에 중화항체와 면역T세포 생성 성과를 담은 시험결과를 보고했다. 칸시노 백신은 6월에 중앙군사위원회로부터 군사용 접종 허가를 받았으며 8월에는 특허를 등록했다.
9월부터는 6~17세 아동·청소년과 56세 이상 고령자 대상 2단계 2상에 돌입했다. 같은 시기 시작한 3상 가운데 성인 500명 대상의 소규모 실험은 이달 말 끝난다. 멕시코에서 1만5000명을 상대로 지난 4일부터 3상이 시작됐고 이어 사우디아라비아, 러시아, 파키스탄 등에서 5000~4만명 규모로 진행될 예정이다. 칸시노 측은 내년까지 1억~2억회 접종분을 생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중국 회사들과 미국 화이자, 모더나 등이 백신 경쟁의 선두에 서 있지만 중요한 것은 안전성과 효과다. 한발 앞서 나간 화이자는 구체적인 결과를 밝히지 않은 채 90% 예방률이라는 성과만 제시했다. 모더나는 7월에 1상 시험의 긍정적인 결과를 발표하며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으나 정작 지금껏 백신과 약품을 상용화한 적은 없는 회사다. 아스트라제네카와 바이오엔테크, 모더나, 화이자 등 9개 제약사는 3상에서 유효한 결과를 거둘 때까지는 백신을 승인받지 않겠다며 지난 9월 안전서약을 했다.
반면 중국 회사들은 개발 경험이 많은 편이고 임상 규모도 크지만 결과를 기다리기 전에 자국 내 접종부터 확대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역점사업인 일대일로 계획에 맞춰 기술진 등 인력을 파견하느라 접종을 늘리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