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은 기록이다.
이게 얼마만의 휴가인지.
가족행사 때문도 아니고, 누가 아파서도 아니고, 오로지 나를 위해 평일 휴가를 냈어요.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쉰다는 사실을 알면 분명 남편은 평일날 처리할 온갖 잡일을 부탁할 거예요.
아이들은 엄마와 같이 있겠다며 등원을 거부하겠죠.
휴가를 휴가가 아닌 것처럼 보내고 싶지 않아요.
평소와 다름없는, 출근길을 가장한 일탈길에 나섭니다.
발걸음이 설레네요~ 룰루랄라~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찾은 곳은 집 근처 생태공원.
자연과 자유를 느끼고 싶을 때마다 아이들과 찾는 곳이예요.
하지만 늘 아이들에게 시선을 뗄 수 없어 제대로 즐겨본 적이 없어요.
오늘은 이 곳의 공기와 바람과 햇빛을 맘~껏 누려보리라.
춥지도 덥지도 않은 적당한 날씨.
조금 더운가 싶은 찰나 알맞게 불어주는 산들바람.
오는 길 손에 든 아이스라떼의 여유로움.
이어폰 너머 들려오는, 너무도 익숙하고 반가운 1990년대, 2000년대 초 가요들.
오늘의 일탈은 모든 것이 완벽하네요.
요즘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는 아이콘 하나만 누르면 학창 시절 열광하며 들었던 세기말 감성의 노래들을 24시간 무작위로 들을 수 있어요.
일명 랜덤플레이!
어떤 노래가 나올지 알 수 없죠.
아직도 잊지 않고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로 몽땅 외워 따라 부를 수 있는 노래부터,
완벽한 가사 복기는 안돼도 '이런 노래가 있었지' 익숙한 듯 새로운 듯 감질나게 흥얼거리게 되는 노래,
'무슨 노래지?' 요즘 나온 새로운 노래라고 해도 의심하지 않을, 생소하기 그지없는 노래까지.
장르도 가수도 참 다양합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모든 노래가 반갑고, 그립고, 따뜻하다는 거예요.
오랜 옛 친구를 우연히 만난 것처럼.
한적한 벤치에 앉아 온전히 집중해서 듣는 '탑골노래'는 편안하고 아련합니다.
그 시대 분위기가 만들어내는 노래 자체의 독특한 매력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무엇보다 그 노래를 즐겨 듣던 시절의 나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일꺼예요.
기말고사 마지막 날, 친구들과 몰려 간 노래방에서 목청이 터질 듯 함께 불러대던 김현정의 '멍'과 소찬휘의 'Tears'.
누가 더 높이, 누가 더 크게 부르나 경쟁하듯 소리를 빽빽 질러대며, 그 자체가 우습고 재밌다고 깔깔댔었죠.
어설펐던 짝사랑을 첫사랑이었다고 마음대로 규정하고, 비극적 사랑 끝의 여주인공인 척 눈물짓던 그날 밤에는
유영석의 '7년간의 사랑'을 끝없이 반복해 들었다죠.
아이돌 1세대 오빠들의 격렬한 비트에 맞춰 율동 같은 댄스 연습에 땀 흘리고,
그 어설픈 춤에 환호하던 친구들의 모습에 어깨가 으쓱했던 수련회의 마지막 밤 그 무대,
대학 방송국에서 아침 방송을 준비하다가 잘못 올린 LP 레코드 바늘에 방송 사고 쳤다며 선배에게 흠씬 하게 혼나고,
방송제 영상 편집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수십 번 반복해 듣던 bgm이 나도 몰래 새뇌되던
그 시절이 떠오릅니다.
그때 그 친구들은 다 뭘 하고 살고 있을까요.
보고 싶네요.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유치하고 우습기만 한, 하지만 그만큼 순수했기에 떠올리면 미소가 절로 나는 나의 10대, 20대가 그 노래들과 함께했음을 새삼 깨닫습니다.
가사도 잘 안 들리고, 그 노래가 다 그 노래 같고, 가수들도 구분이 잘 안 되는 요즘 노래들.
(저도 나이가 먹은거겠죠? 예전 어른들이 저희 세대 노래를 들으며 똑같이 말씀하셨던 기억이...ㅋ)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아이 또한 그 노래들 속에 자신의 하루하루를 기록으로 담아내겠죠?
사진이나 동영상만으로는 온전히 담아낼 수 없는 그때 그 슬픔, 그 기쁨, 그 위로, 그 따뜻함...
그 시절 그 노래 위에 문신처럼 새겨진 추억들이 새록새록한 오늘은
더없이 완벽한 휴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