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라따뚜이

편하게 즐기는 꿈의 영화

by 땅콩빵

※ 작은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내가 한 때 마음속에 품었던 꿈의 도시는 파리였다. '예술의 도시'라는 점도 있었지만, 115분가량 하는 이 영화 속 파리를 보고 반한 탓이 컸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작은 쥐 레미는 유달리 예민한 코를 가진 덕에 요리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졌지만, 자신의 재능을 몰라주는 작은 시골 마을에 대가족과 살며 상한 음식물 판별기로만 살아간다. 그러다 일어난 우연한 사고 덕에 고향을 떠나오게 되고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도시가 바로 자신이 항상 동경하던 파리다. 자신이 있는 곳이 어딘지 몰라 다급하게 올라간 건물 꼭대기에서 보게 된 파리의 야경은 나까지 놀라게 했고 그 사이에 우뚝 솟아 빛나는 에펠탑은 정말 멋졌다. 작은 탄식을 내뱉는 레미와 더불어 뭉클한 마음에 눈물샘이 자극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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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미디어에서 꿈의 도시로 묘사되는 곳은 뉴욕이다. 하지만 <라따뚜이>는 뉴욕이 아닌 파리를 꿈의 도시로 묘사한다. 그래서 파리가 더 마음에 들어왔는지 모른다. 나만의 꿈의 도시인 것 같아서. 이 영화는 이야기 중간에 꼭 에펠탑을 비춰주곤 했다. 때문에 그 당시 나에게 에펠탑은 뉴욕 끝에 있는 자유의 여신상만큼 꿈을 상징하는 건축물이었다.


내가 이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레미가 꿈을 이뤘기 때문이다. 그런데 '꿈을 이루는 영화는 정말 많은데 유독 <라따뚜이>가 와 닿았던 이유는 뭘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이 글을 쓰게 된 계기로 생각해보았다. 그건 '아마 꿈을 이뤄가는 단계가 이색적이어서 그런 게 아닐까'라는 답이 나왔다. 보통의 영화는 실사화든, 애니메이션이든, 동물을 주인공으로 했든 상관없이 우리네 모습과 똑같은 모습으로 그린다. 돈이 없거나 환경이 안되거나 개인적인 이유나 능력의 한계와 같은 이유로 좌절하게 된다. 이러한 이유는 화면 너머에 있는 우리들 중 어느 누군가는 영화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만큼 현실적이다. 그 현실적인 장면은 어느 때는 공감을 하고 장애물이 되었던 것을 뛰어넘었을 때 용기를 얻을 수 있지만, 가끔은 자기 모습을 보기 싫기 마련이다. 거기에 영화 러닝 타임 안에 해결되어야 되기에 일사천리 해결되는 장애물을 보면 어쩐지 허탈하고 어이없기도 하다. 요즘 말로 '과몰입'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라따뚜이>에는 그런 게 없다. 레미는 쥐이고 난관에 부딪히고 해결되는 방식 모두 우리 삶의 궤도에서 벗어난 것들이다. 거기에 그 모습들은 모두 귀엽고 사랑스럽다. 그러한 부정적인 감정 과몰입 방지는 레미가 난관을 극복하고 결국 꿈을 이루었을 때 엄청난 감동을 느끼며 긍정적인 감정만 얻게 된다. 아마 주인공이 링귀니였다면 뻔한 영화가 되어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지 않았을까. (링귀니는 온갖 클리셰란 클리셰는 다 갖고 있다. 아마 다른 영화들은 이런 링귀니를 주인공으로 내세웠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영화 끝에 결국엔 요리사가 되는 게 아니라 롤러를 타고 서빙하는 장면은 꽤 인상적이었다.)

이게 내가 픽사를 좋아했던 이유다. 픽사는 항상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라 신선한 이야기를 들고 온다. 우리 모두 한 번쯤 해봤을 법한 생각을 색다른 이야기로 바꾸어낸다. 우리 근처에 있는 것들을 다시 보게 만든다. 이 사람들이 얼마나 세상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느끼게 된다.

비슷한 결로 디즈니 영화인 <공주와 개구리>도 좋아한다. 영화 초반에 폐허가 된 건물에서 꿈에 그리는 레스토랑을 노래하는 장면은 한 번씩 다시 볼만큼 좋아하는 장면이다. 프린세스 시리즈답게 이웃 나라 왕자를 만나 뾰로롱 해결되는 이야기지만, 나에겐 여자 주인공이 괜히 왕자의 일에 휘둘려 저 멀리 정글에 뚝 떨어졌다가 다시 가족 품으로 돌아와 레스토랑을 차리는 이야기가 더 부각돼서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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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을 느끼고 싶고 사랑스러움과 감동만 가득 얻는 행복한 이야기가 보고 싶을 때 <라따뚜이>를 찾는다. 거기엔 나만의 사랑스럽고 뭉클한 꿈의 공간인 라따뚜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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