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푸치노

카푸치노

by 유현식

이른 새벽 출근길에 S치과병원을 지날 때마다 일곱 살 난 공진이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아부지”

“응?”

“커서, 치과의사되어 이만한 빌딩 사줄게요.”

충치 치료를 받고 나오며 공진이는 자신만만하게 힘주어 말했다.

수차례 반복되는 치료에 대한 고마움의 보답을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강요나 협박이 아닌 본인의 의지가 담긴 똘망똘망한 목소리가 20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

대학을 졸업하고 병원에 취직하여 집을 떠나 생활하는 딸, 아내 말을 빌리자면 버스로 10분이면 올 수 있는 거리인데도

‘군대에 갔던 오빠보다 얼굴 보기가 쉽지 않아 우리 딸도 군대 간 것 같다.’ 한다. 문득 보고 싶어 전화를 하거나 문자를 해도 답신받기가 힘들다.

‘근무 중이겠지?.’

‘바쁜가 봐!’

‘고단해서 잠자나?’

...

나름대로 이런저런 생각으로 생활을 추론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하지만 나이 탓인지 서운함과 그리움은 쉬 사그라지지 않는다.

얼마 전부터 일곱 살 난 공진이 손잡고 어린이집과 병원에 다니던 그 시절의 애틋한 감정을 섞어

“우리 딸 아까워서 어떻게 시집을 보내지?”라고 하면

아내는 ‘딸바보 나셨다며 놀려 댄다.’

어쩌다 집에 오면 그동안 있었던 병원 생활을 장편 드라마처럼 한바탕 펼쳐내고 침실로 들어가면 병원에 되돌아가는 그때까지 먹고 자고를 반복하며 꼼짝도 하지 않는다. 그래서 딸의 개인 생활이 어렴풋이 짐작된다.

“아버지는 어디서 일하우?”

“시내 대흥동.”

“가깝고 좋네. 힘들진 않아요?”

“전보단 좋아. 아픈 어깨도 많이 좋아졌구.”

“몸 조심해유.”

“그래, 그건 그렇구! 아침마다 S치과병원을 지나가는데..., 잊지 않았겠지?”

“뭘유?”일단 시침을 뗀다.

“니가 빌딩을 사준댔잖아.”

히히히 웃으며

“빌딩..., 힘들어요”

“얼마나 모았는데?”

....

“의사가 못 돼서..., 박봉인 간호사 월급으론...”

그때 그 약속은 인정하면서도 말끝을 흐린다.


이직 후 수개월간 반복되는 같은 길의 출근, S치과병원 네거리에서 가끔 빨간 불빛에 차를 멈춰 서서는 차창 너머 희미한 불빛 속 병원을 올려다보면 공진이가 좋아하는 달달한 카푸치노가 생각이 난다. 하얀 커피잔 위로 부풀어 오른 하얀 거품과 시나몬 향내에 취해서 출발 알리는 초록빛 신호가 바뀔 때까지 잠시나마 기억 속의 여행을 떠나곤 한다.

210211

아내가 만든 카푸치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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