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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수 Aug 10. 2022

익숙한 공간에서 습관이 생기고, 습관은 시간을 제조한다

습관에 관한 세 번째 이야기

공간은 습관 형성에 매우 중요한 요소다. 뇌는 “낯설음”에 반응하며 낯선 공간에서는 주의를 기울이고 에너지를 쓴다. 하지만 익숙한 공간이라면 관심을 두지 않는다. 애써 에너지를 쓰지도 않는다. 뇌는 긴장을 풀고 우리의 행동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특정 공간에서 반복해서 수행했던 활동들을 나는 애쓰지 않고도 수월하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습관의 형성에 환경이 중요하다. 환경에는 물리적 공간, 사람, 감정 등이 있고 이 중 물리적 공간이 가장 중요한 조건이다.   


또한 내가 만든 다양한 습관은 나에게 시간을 선물한다. 누구에게나 주어진 24시간이 아니라, 나만 느끼고 경험하는 24시간을 초과하는 시간이다. 돈 많은 사람, 멋진 외모를 가진 사람, 명예를 가진 사람 부럽지 않다. 나는 내가 가장 가치 있다고 느끼는 ‘시간’을 더 많이 가진 사람이다.




( 모든 활동은 공간에서 이루어진다 )


우리의 활동은 모두 특정 공간에서 이루어진다. 따라서 어떤 행동을 습관으로 만들고 싶다면 우선 공간에 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집에서 이루어지는 활동에 대해 생각해 보자. <자기만의 방>에서 버지니아 울프는 자물쇠가 달린 방이 필요하다고 했는데, 공간에 대한 나의 궁극적인 목표도 ‘나만의 방’이다. 하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다면 많은 대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내가 관심을 가지는 공간은 ‘슈필라움’이다. ‘슈필라움’이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나만의 놀이 공간을 뜻하는 말로, 타인에게 방해받지 않고 휴식을 취하고 심리적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주체적인 공간을 일컫는다. 독일어 '놀이(슈필·spiel)'와 '공간(라움·raum)'의 합성어다. 김정운 교수는 <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을 통해 말한다. “아무리 보잘것없이 작은 공간이라도 내가 정말 즐겁고 행복한 공간, 하루 종일 혼자 있어도 전혀 지겹지 않은 공간, 온갖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꿈꿀 수 있는 그런 공간이야말로 진정한 내 '슈필라움'이다.” 나는 끊임없이 즐거운 놀이가 습관처럼 반복될 수 있는 나만의 ‘슈필라움’을 끊임없이 추구한다.




( 공간 제조, 자기만의 방을 만들다 )


지금 내 삶에 정착되어 있는 습관을 만드는 과정은 나만의 공간을 만드는 과정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 집은 현재 방이 4개다. 1년 전만 해도 엄마가 아이들을 돌봐주셨기에 엄마방이 있어고, 딸방, 아들방 그리고 안방이 있었다. 나의 독립된 공간은 없었다. 거실에서 책을 읽으려고 하면 방해받을 수밖에 없다. ‘이제는 정말 나만의 공간을 갖고 싶다’라고 생각을 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회사 동료와 이야기를 하다가 나의 최근 고민들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베란다를 내 공간으로 만들고 싶은데, 겨울에는 춥고 여름에는 더울 것 같다며, 그리고 전세라 집의 구조를 바꿀 수도 없다는 하소연이었다. 동료는 생각을 바꿔보라고 조언했다. 굳이 독립된 방이 아니어도 되지 않냐고. 거실이 넓은 편이니 한쪽에 책상을 하나 두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책 읽고 사색할 수 있는 공간은 마련할 수 있다며.


‘유레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그때 그 말은 정말 신박했다. 방이 아니라 거실을 활용할 것! 우리 집은 거실이 넓다. 거실만 확장이 되다 보니, 거실 양쪽에서 베란다로 통하는 문들이 있었고, 그 문들을 통해서 베란다를 드나든다. 사실 죽은 공간이나 마찬가지였다. 베란다 들어갈 때만 지나다니는 공간. 과감히 한쪽 베란다 문을 봉쇄했다. 그리고 그 구역에 독서실 책상을 구입해 넣었다. 완벽했다! 이전에 죽어있던 공간이 완벽하게 나의 독립된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책상 상단에는 스탠드까지 풀옵션으로 달았다. ‘ㄱ’ 자 독서실 책상을 실을 바라보게 배치했더니 입구 있는 ‘ㄷ’ 자 형태의 공간이 생겼다.


아이들이 태어난 이래로 나만의 공간이 처음으로 만들어졌다. 그리고 여기서 나의 습관들이 하나 둘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따뜻한 물 한잔을 들고 반잔을 마신 뒤, 나머지 잔을 내 책상 위에 올려둔다. 조금씩 마시기 위함이다. 책상 옆 거실 매트에서 간단한 스트레칭과 스쿼트를 한다. 그리고 내 책상에 앉아 오롯이 새벽 독서와 글쓰기를 진행한다. 다른 가족들은 모두 각자의 방에서 아직 꿈나라에 있기 때문에, 거실 공간을 온통 나의 공간이고, 그중에서도 이 책상이 차지한 한 블럭이 온통 내 세계가 된다.


어설프지만 이렇게 ‘나만의 공간’를 만든 것은 좋은 계기가 되었다. 이후 필요하다면 적극적이고 과감하게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냈다. 거실의 내 공간은 새벽에는 유용하지만 낮에는 활용도가 떨어졌다. 그래서 이번에는 넓은 안방을 이용해보자 생각했다. 오래되고 공간을 많이 차지하고 있던 서랍장을 버렸다. 그리고 그 공간에 다시 새로운 독서실 책상을 들였다.(침고로 독서실 책상은 십만 원대에서도 구입할 수 있다) 안방에는 벽면 모서리를 온전히 이용할 수 있기에 ‘ㄱ’ 자가 아닌 그냥 와이드 한 형태의 독서실 책상을 장만했다. 효과는 좋았다. 낮에도 온전히 나만의 공간으로 머무를 수 있었다.


퇴사를 하고 엄마가 고향으로 내려가시게 되면서 빈 방 하나가 생겼다. 이제는 온전한 “나만의 방”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설렜다. 마흔 중반에 드디어 나는 “나만의 방”을 갖게 되었다. 800mm와 600mm 너비의 5단 책장을 이어 1400mm의 책장을 벽에 두고, 책장의 가운데 칸과 같은 높이의 높낮이 조절 와이드 책상을 들였다. 3인 페브릭 소파를 한쪽 벽에 두고, 아소방 소음방지 매트를 컴팩트하게 바닥에 깔고 한쪽 벽면에 전신 와이드 거울을 들였다. 사색을 할 수 있는 공간, 공부할 수 있는 공간, 책 읽는 공간, 거기에다 운동할 수 있는 공간까지 겸하는 방이다. 얼마 전에는 슈퍼싱글 매트리스와 침구를 들였다. 이제는 잠까지 여기서 혼자 잔다. 완벽한 “나만의 방”이 만들어졌다.


여기서 나는 정말 많은 시간을 보낸다. 새벽에 일어나자마자 화장실을 다녀오고 인바디를 재고 오늘을 맞는 내 몸의 상태를 확인한다. 주방에서 따뜻한 물은 한잔 들고 들어오는 순간부터 완벽한 나의 하루가 시작된다. 따뜻한 물 한잔으로 몸을 깨우고 브라탑으로 상의를 갈아입는다. 전신 거울 앞에서 10분간 아침 스트레칭을 하고 상황에 따라 스쿼트를 하거나 레그레이즈를 하는 등 살짝 땀이 나는 운동을 추가로 해준다. 그리고 천장 등을 꺼버리고 책상 스탠드를 켠 채 책상에서 나만의 새벽 활동에 오롯이 몰입한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필사를 하고, 블로그를 한다. 새벽 독서가 집중이 잘 되기에 새벽에는 좀 난해하거나 심오한 책을 주로 읽는다. 니체나 카뮈의 작품들은 주로 새벽시간에 읽었다. 책들은 쉽지 않다. 하지만 한 문장 한 문장 따라가다 보면 나는 의 내면 속으로 깊숙이 빨려 들어간다. 감각의 촉수들이 하나하나 살아나는 느낌을 받는다. 문장을 통해 쾌감을 느낀다.


서서히 새벽이 밝아온다. “나만의 방”에서 책이나 글쓰기에 몰입한 상태에서 맞이하는 새벽은 힐링이다. 오늘 하루도 정말 알차게 시작했다는 뿌듯함을 느낀다. 오늘 하루가 벌써부터 충만하다. 누군가는 이제 잠을 깨어 눈을 비비며 뒤척이고 일어나는 시간이지만, 나는 벌써 충만한 하루를 보내고 있는 중이다.


나의 새벽 루틴 그리고 하루의 중요한 습관 활동들은 여기 이곳, “나만의 방”에서 이루어진다.



 

( 공간을 찾아가다 )


집에 온전히 내 공간이 없을 때, 혹은 변화를 주고 싶을 때면 나도 밖에서 “나만의 공간”을 추구한다. 초반에는 집 앞 ‘커피랑 도서관’을 애용했다. 일찍 퇴근하는 경우에는 2시간가량 머물렀다가 집으로 들어왔다. 2시간 동안 많은 것을 할 수 있다. 주로 책을 읽거나 생각을 정리했다. 회사에서 늦게 퇴근해서 집에 오나, 일찍 퇴근해서 2시간 북카페에서 머무르고 오나, 가족들은 크게 개의치 않았다. 그렇게 밖에서 “나만의 공간”을 적극적으로 찾아다녔다.


집에서 나만의 공간을 찾든, 외부에서 머무를 공간을 찾던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집 근처 ‘책 읽기 좋은 카페’ 혹은 ‘노트북 하기 좋은 카페’를 검색해서 한 군데씩 방문해 본다. 요즘은 워나 카페들이 많아서 이런 곳을 찾는 게 어렵지 않다. 그렇게 나만의 공간을 제공해 줄 카페 목록이 하나둘씩 늘어갔다.


뭐니 뭐니 해도 나의 최후의 보루는 구립도서관이다. 내가 주로 애용하는 곳은 광진 정보도서관이다. 광진구에 살 때부터 다니던 곳인데, 강변북로와 접해 있어 차로 다니는 나로서는 접근이 무척 용이하다. 확 트인 공간에 한강을 바라보며 하루 종일 책을 읽거나 생각을 정리할 수 있다.


지금 생각하는 새로운 공간은 이동수단이다. 출퇴근 길에 지하철에서도 책을 읽고 다니곤 했는데, 사람이 많고 북적거려도 집중이 정말 잘 되는 공간(?)이다. 혼자서 튀면서 떠드는 사람만 없으면 완벽한 백색소음을 가진 곳이 지하철이다. 이 개념을 확장해서 비행기나 기차를 생각해 보면 어떨까. 그리고 이동한다.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에, 기차를 타고 강릉이나 부산을 다녀오는 혼자만의 여행을 생각 중이다. 이는 “나만의 공간”의 확대다. 나는 이동수단이 주는 공간과 낯선 여행지의 공간이 어우러져서 하나의 큰 “나만의 공간”이 된다. 그리고 그 공간에서 나는 평소의 활동들은 계속한다. 책을 읽고, 사색을 하고, 글을 쓴다.  




( 개인마다 서로 다른 시계가 존재한다 )


모든 사람에게 하루는 24시간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는 속도는 개인마다 다르고, 주어진 시간의 양도 모두 다르다. 시간의 속도는 상대적이다.


가을 숲에서 눈을 감고 귀를 쫑긋 세우고 풀벌레 우는 소리를 온몸으로 들어보라. 그 사이 시간은 재깍재깍, 풀벌레 우는 소리에 맞춰 천천히 흘러간다. 1초, 2초, 3초. 최근에 인기 있는 예능 프로그램을 보다 보면 1시간, 2시간은 정말 훌쩍 흘러간다. 내가 예능을 보면서 쏜살같이 흐르는 시간을 경험하고 있을 때, 누군가는 숲 속에서 1분 1초를 자연을 느끼며 느린 시간을 경험할 수도 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2시간 동안 운동과 독서를 한 후 7시부터 출근 준비하는 김 과장과 7시에 일어나자마자 욕실로 직행하여 출근 준비하는 장 과장. 이들에게 주어진 하루의 길이는 명백히 차이가 있다. 김 과장은 하루가 충분히 길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장 과장은 책 읽을 시간이 없을 정도로 하루가 짧다라고 생각한다.


모든 시간은 상대적이다. 개인마다 서로 다른 속도와 양으로 동작하는 시계를 가진다. 나의 시계는 어떻게 흘러가는가. 내가 바로 내 시계의 동작을 설계하는 주체이다. 하루 1시간을 무의미한 시간으로 흘려보내는가, 충만한 시간으로 만드는지는 나의 습관에 달려있다.




(시간 제조, 나에게 허락된 시간의 한도를 늘리다)


“그 시기에 나는 옥수수가 밤새 자라듯 성장했다…. 그런 시간들은 내 삶에서 공제되는 시간이 아니라 오히려 나에게 평소 허락되는 한도를 훨씬 초과하는 시간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월든>의 문구이다. 생각과 활동이 습관이 될 때, 우리는 평소에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의 한도를 초과하는 시간을 경험할 수 있다.


회사에서 적은 인력으로 그 어렵다는 ‘차세대 프로젝트’를 담당하고 주도했던 나는 바로 ‘나에게 평소 허락되는 한도를 훨씬 초과하는 시간’을 경험했다. 한창 바쁠 때 <월든>의 이 문구가 가슴에 꽂혔다. 그때의 내 삶이 그랬다. 상식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아웃풋의 한계를 넘어서 더 많은 아웃풋을 내면서 ‘한도를 훨씬 초과하는 시간’을 경험한 것이다. 아웃풋은 사고의 아웃풋일 수 있고, 작업 결과일 수 있다. 소로의 경우는 ‘사고’의 한계를 넘었던 게 아닐까. 나의 경우는 ‘생각’의 한계 그리고 ‘작업’의 한계 모두가 해당되었다.


프로젝트를 하는 동안 회사에서 나는 새로운 인격체가 되었다. 사무실이라는 익숙한 공간 안에서 반복된 생각과 활동은 새로운 나를 탄생시켰다. 이전의 내가 아니었.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깊어진다. 그 생각들을 놓칠세라 끊임없이 수첩에 기록한다. 중간중간 회의나 미팅으로 생각의 흐름을 방해하는 일정이 생겨도, 수첩만 들쳐보면 다시 나는 기존의 사고 속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지금 상황에서 필요한 프로세스는 무엇일지 화장실 가는 동안에도 고민을 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기본 전제를 되새기고 또 되새긴다. “진정성”과 “투명성’, 그리고 “신속한 의사결정".  프로젝트의 진정성과 투명성이 유지되고 있는지,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어떤 활동이 필요한지, 앞으로 있을 수많은 의사결정 들 중 지금 미리 준비해 둘 사안들이 있는지 끊임없이 생각하고 기록하고 제안하고 행동했다. 나에게 명시적으로 맡겨진 ‘XX업무’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프로젝트라는 큰 숲이라고 생각했다. 프로젝트를 전체적으로 점검하고 필요한 게 있으면 과감히 제안하고 추진했다. 출근하기 위해 집을 나서는 순간에 회사 모드로 스위치가 켜지고 지하철을 타고 사무실에 도착하는 1시간 남짓은 그날의 업무에 대해 그리고 프로젝트 전체 진행상황을 조망해 보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퇴근길은 오늘 하루 부족한 부분이 없었는지, 내일 챙겨야 할 일이 있다면 빨간펜으로 밑줄 쫙 그어두었다. 몇 년에 걸쳐 이런 생활을 하고 있었으니, 위의 <월든>의 문구를 보고 가슴이 쿵쾅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한도를 초과하는 시간”이라..


그렇게 1시간, 1분, 1초로 시간을 세분화해서 몰입하며 일하는 습관을 들이면서 사고의 한계를 넘는, 작업량의 한계를 넘는 짜릿한 경험을 하게 된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의 상대적인 양을 늘릴 수 있게 됐다. 게다가 ‘시간의 우선순위' 개념을 알고부터는 더욱 낭비되는 시간을 줄일 수 있었다.


로라 벤더캠은 말한다. "시간 관리의 비결이 자투리 시간을 아껴 숨 막히게 쓰는 데 있는 게 아니라 바로 자신의 우선순위를 잘 관리하는 데 있다는 것이다.... 당신의 우선순위를 정해보자. 모든 것을 다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이들이고 진짜 중요하고 가치 있는 것에 초점을 맞출 때, 시간은 당신을 위해 존재할 것이다. 그리고 그 시간 속에서 당신이 원하는 삶을 충분히 만들어 나갈 수 있다."


우선순위를 생각한다. 시간이 많이 소요되고 적게 소요되느냐의 순위가 아닌, 나에게 무엇인 중요한지 우선순위를 가지고 시간을 할당한다. 이러한 습관을 통해 지금 내 생에 가장 바쁜 회사생활을 보내고 있으면서도, 책도 읽고, 블로그를 하기도 하며, 가끔 강연을 들으러 다니기도 한다. 


'주어진 한도를 초과하는 시간'은 습관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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